의과대학 입학 후 6년, 그리고 +a 의 시간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의과대학에 입학하면 어떤 일들이 기다리는가(2)
: 해부학 실습
의과대학에 입학하면 어떤 일들이 기다리는가 (1) 에 이어집니다
해부학은 공부하는 모든 상황이 스트레스이다. 물리적, 시간적 스트레스 상황의 연속이다. 이는 해부학 실습 때문이다. 해부학은 교과서를 보고 공부하고, 구조를 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 신체에서 해부학적 구조물을 보고 판단하고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해부학을 배우는 이유는, 내과적으로는, 사람의 몸 밖에서 해부학적 구조물을 간접적으로 판단하여 접근해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고, 외과적으로는, 수술 시 구조물을 통해 다른 구조물을 판단하고, 이를 제거하거나 치료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교과서적으로도 해부학을 공부하고, 내용을 외우고 있어야 하며, 실제로 봤을 때에도 무엇인지 판단하고 알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해부학 실습에 카데바 실습은 필수적이다. 카데바 실습은 숭고한 마음으로 카데바 (사망 후 시신, 기증자분들이 의학 교육을 위해 감사하게 기증해주신다)를 직접 보며 해부하고, 공부하는 과정이다. (이 글에 카데바 실습이 힘들고 고된 것이라는 내용을 주로 작성할 것이지만, 해부학 실습을 위해 기증해주신 카데바, 기증자분들의 따뜻한 마음에는 항상 감사하고 경외하고 있다. 또한 모든 해부학 실습 이전에는 기증자분들에게 감사함과 존중을 담아 기도를 올리고, 그들의 숭고한 마음을 받들고 의학 공부에 전념하여 감사함을 표하겠다는 선서를 진행한다. 나 또한 기도를 드리고 선서를 했던 과정을 모두 기억하며, 나의 첫 카데바 기증자분에 대한 감사함, 그떄의 기억을 아직까지도 간직하고 있으며, 평생 감사할 것이다.)
왜 해부학 실습이 악명이 높고 힘든 과정으로 유명할까?
위에서 언급했듯, 물리적인 장벽이 매우 크다. 카데바는 사후 시신의 상태 유지를 위해서 포르말린이라는 용액에 고정한다. 고정 과정은 시신이 부패되지 않고, 최대한 기존 상태를 비슷하게 유지하게 위해서 진행하는 것으로, 독성이 매우 큰 용액에 고정한다. 포르말린에 고정된 시신은 부패하지 않는다. 하지만 포르말린은 독성이 매우 커 피부와 호흡기, 안구를 비롯한 점막에 매우 큰 자극을 주게 된다. 연구에 따르면 장시간 포르말린에 노출된 경우 사망률이나 질병 발생률이 증가한다고 한다. 포르말린에 고정된 카데바를 마주하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매우 유독한 것임을 알 수 있는 냄새가 코를 콕 찌르고, 눈과 피부에서 따끔하는 통증이 느껴진다. 피부나 호흡기, 점막 등이 예민한 경우에는 눈물샘이 자극되어 눈물이 계속 나오고, 콧물이 줄줄 흐르기도 한다. 피부는 최대한 노출되지 않도록 해부 가운을 입고 라텍스 장갑을 끼지만, 포르말린과 인체의 지방질로 인해서 장갑의 접촉 부분은 녹아내린다. 감사하게 기증 받은 카데바인 걸 알고 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얼마 안된 학생들 입장에서 시신을 마주하며 오는 시각적 충격 또한 존재한다.
간단히 이야기해서, 시신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 평생 맡아본 적 없는 자극적이고 유해한 냄새, 냄새로 인해 자극된 비강에서 흐르는 콧물, 따끔 따끔한 눈에서 나오는 눈물, 접촉한 피부에서 느껴지는 자극, 손 끝에서 녹아내리는 장갑 등으로 인해서 크나큰 물리적 스트레스가 다가온다.
이러한 물리적 스트레스가 끝인가? 절대 아니다.
해부학 실습은 시작과 동시에 시간과의 싸움이다. 시간과의 싸움이 되는 이유는 간략하게 두 가지 정도로 간추릴 수 있는데, 첫 번째는 학사 일정과 시험 일정이다. 학사 일정은 무한하지 않고, 시험을 위해 공부할 수 있는 시간도 정해져 있다. 따라서 학생들은 정해진 시간 (몇 일에서 수주) 내에 카데바 한 구를 모두 해부하고 공부해야 하며, 해부하는 과정도 학생들이 모두 진행해야 한다. 두 번째는 시신 고정 상태이다. 포르말린에 고정된 시신을 꺼내 해부를 시작하면, 아무리 포르말린에 잘 고정되어 있어도 상태가 유지되지 않는다. 부패까지는 아니어도 시신이 건조되고 상태가 안좋아진다. 조교님, 교수님께서 실습 시간 이후에 포르말린을 보충하거나 시신이 공기와 최소한으로 접촉하도록 조치를 취하지만, 상태를 그대로 유지할 수는 없다. 따라서 카데바 실습은 몇 달 동안 충분한 시간을 가지면서 천천히 진행하기 어렵다. 짧으면 시험 준비를 몇 일 동안 끝내야 하며, 길게는 몇 주, 한 두달 정도를 해부와 공부를 같이 진행해야 한다.
카데바를 해부 실습하고 공부한다는 것은, 반복적이고 노동집약적인 해부 과정이 수반된다. 카데바는 사람의 시신 상태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 피부, 피부 아래의 지방층, 그리고 그 아래 근육을 비롯한 해부학적 구조물이 존재한다. 카데바를 통해 실습하기 위해서는 이 피부와 피하 지방을 제거하여 아래 구조물에 접근해야 한다. 피부와 피하 지방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해부학적 구조물이 손상되면 안 된다. 구조물이 손상되는 경우, 해당 구조물 뿐 아니라 다른 구조물을 찾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a라는 신경이 끊겨 손상되는 경우에, a 신경을 통해 찾을 수 있는 b 신경과 c 근육을 찾기 어려워지거나 찾는 것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 이렇게 피부와 피하지방을 제거하는 과정은 시간이 가장 많이 소모되지만 배울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학생들은 해부학 실습을 하면서 공부를 하고 구조물을 외워야 한다. 시간이 압도적으로 부족하다. 그렇기 때문에 피부와 지방을 제거하고 싶은 학생은 아무도 없다. 공부로 얻는 것 없이 자신의 시간만 쓰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갈등이 발생한다. 이 또한 학생들에게는 스트레스 상황이다. 공부하고 싶은 마음과, 조원들을 위해서 희생하고 싶은 착한 마음, 그리고 이기적인 조원들을 바라볼 때 다가오는 스트레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해부학 실습은 재미있고 흥미롭다. 카데바에서 새롭게 찾아내는 구조물 하나 하나가 흥미롭고 공부에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카데바 양은 한정되어 있다. 해부학 실습을 위해서 본인의 카데바를 기증하는 기증자분들은 드물다. 나 또한 카데바 실습을 모두 알고 난 후 내가 나의 시신을 기증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하기도 했다. 따라서 많은 학생들이 카데바 한 구에 모여 실습에 임한다. 국내 의과대학 상황마다 다르고, 의과대학에 속한 병원의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카데바 한 구에 적게는 대여섯명, 많게는 20명 이상이 붙어 조를 이루고 실습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카데바의 구조물을 자세히 천천히 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 카데바가 별로 없고, 인원이 많은 지방 의과대학에서 이러한 현상은 극심하다. 시간을 나누어 실습을 따로 진행하는 의과대학도 존재한다.
해부 실습은 직접 해부를 하고 경험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이를 간접적으로 공부하고 직접 해부할 기회가 없다면, 사진이나 교과서를 보고 공부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카데바 한 구에 많은 학생들이 딸릴 수록, 직접 실습할 수 있는 기회는 한정적이다. 이 또한 학생들의 실습을 방해하는 큰 요소이다. (만약 앞으로 의과대학 정원이 늘어나면 이 현상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늘어나는 카데바 수요를 어떻게 감당할 지 참으로 궁금하다.)
카데바 실습이 몇 주에 걸쳐서 모두 마무리 된다면, 학생들이 거쳐야 할 마지막 관문이 존재한다. 땡시이다.
땡시는 땡 하는 종소리와 시험이 합쳐져서 생긴 합성어이다. 땡 하는 종소리에 맞추어 학생들이 카데바 구조물을 확인하고 정답을 기입하는 방식이다. 땡 하는 종소리는 짧게는 20-30초, 길게는 40-50초에 한번 씩 울리며, 카데바마다 구조물에 실 또는 종이가 붙어 있어 학생들이 구조물이 무엇인지 판단해야 한다. 학생들은 시험지를 들고 (백지일 때도 많다) 자신의 번호에 해당하는 문제에 서서 시험을 시작한다. 땡 하는 소리에 첫 문제를 확인하고 답을 기입한다. 다시 30초 후 땡 하는 소리에 옆 문제로 이동한다. 땡 하는 소리 직후에 나는 옷 소리와 발 소리는 경쾌하면서도 무겁다. 사사사삭 하는 발소리 이후 학생들은 급하게 문제를 확인하고 다시 답을 기입한다. 이를 약 20-50번 반복하면 시험이 끝난다.
땡시는 반응 속도, 순간 판단력, 지식, 암기력, 위기 대응 능력 등이 모두 필요한 시험이다. 진득하게 고민하면 알 문제들을 순간 판단하는 것은 어렵고, 당황이라도 한다면 알고 있던 내용도 쓰기 어려워진다. 중간에 한 문제가 꼬이면 다음 문제들에도 영향이 가고, 답을 밀려 쓰거나 잘못 쓴다면 다른 문제들을 쭉 밀려쓰게 된다. (시험지에서 문제를 다시 확인할 수 없고, 다시 이전 문제가 달려 있는 카데바로 돌아갈 수도 없다.) 땡시의 30초가 10초, 5초로 느껴지는 것은 결코 거짓말이 아니다.
이러한 모든 일련의 과정이 끝나면 해부학이 마무리된다. 해부 학기가 끝나면 고등학생 같던 의과대학생들의 얼굴이 1-2년씩 폭삭 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참으로 고생이 많았다. 필자의 경우 해부학 시험을 총 3번 치렀는데, 첫 번째 시험은 평균 이하의 결과가 나왔다. 결과를 보고 매우 당황하고 슬퍼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죽도록 공부하고 밥먹고 공부하고 화장실 갔다 공부하고 (심지어 변기에 앉아서도 공부했었다) 공부밖에 안 했는데, 왜 이런 결과를 마주해야 하나, 의과대학에 잘못 온 것은 아닌가 고민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공부 방식에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여, 두 번째와 세 번째 시험은 높은 성적을 받아 A+로 잘 마무리 했다. 정말 열심히 달렸고,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지만, 다시 하라면 절대 다시 못할 것 같은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