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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현 Apr 29. 2024

(12) 전기화상.. 이게.. 실화라고??


누군가 얘기해 줬다.

원래 동트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두운 거라고..

좋은 일이 있으려고 그러는 거라고..

이제 좋은 일만 있을 거라고..

나도 그럴 줄 알았다.


둘째가 외할머니 손을 떠나

돌을 맞이하며 드디어 엄마 품으로 돌아왔다.

나는 삶을 살고자 이 악물고 노력했고

또 어른들 말씀처럼

인생은 호사다마라고 생각했었다.


수술한 지 2년쯤 지났는데도

음식물 흡수가 되지 않아

빈혈은 심했고

여전히 고생하고 있었지만

덤핑증상이 좀 완화되면서

화장실 가는 횟수도 줄었다.

첫째가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우리 가족도 가까운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3세 5세 딸들과 가족여행을 다녀온 아침이었다.

아침 비행기로 돌아와 며칠간 타국 음식이 안 맞아

잘 먹지 못한 아이들에게 한국식 아침을 주고자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여느 때와 같이 딸들은 아침하고 있는 내 근처에서

주변을 뱅뱅 돌며 이것저것 하며 놀고 있었다.

그러다 둘째의 “아~악~~! “하고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난 놀라서 둘째에게 가보니 아이가 손가락을 잡고 있었다.

왜 그래? 하고 보니 바닥에 젓가락이 떨어져 있었고 손가락 몇 개가 이상했다.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아이를 안고 화장실로 데려가

아이의 손에 차가운 물이 흐르게 했다.

그제야 잘 보이는 속살….. 아니 뼈…. 머리가 하얘졌다.

얼른 정신을 차리고 119를 불렀고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전기 화상!

아주 예전에 엄마들로부터

젓가락을 콘센트에 꼽아 전기화상을 방지하기 위해

플라스틱 젓가락을 쓴다는 말을 들었었던 거 같다.

그래서 그때 생각했었다.

너무 걱정들 하신다고.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경우라고.

별 걱정 다하신다고.

이런 몇 만 분의 일에 해당하는 희소성 있는 일이

나의 경우가 될 거라는 건 정말 상상도 못 했었다.

심지어 첫째 때는 막아놓지도 않았던 콘센트를

막아놨는데도 불구하고 아이가 그것을 뽑고 거기에 젓가락을 넣어 본 것이다.

그것도 뒷부분이 플라스틱이고 앞부분이 금속재질인 젓가락의 앞부분을 잡고.


119에 탄 아이도 나도 울지 않았다.

아이가 놀랬을까 봐.. 아이를 안정시키느라..

아이가 어떻게 될까 봐 아이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병원에 도착하고 수속을 하고 상황을 설명하고..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정말 천만다행이라고. 전기화상이라고..

다행히 전기가 빠져나간 거 같다고..

전기가 안 빠져나간 경우

심하게는 뇌에.. 아니면 신체 일부 절단의 경우도 있다고..

일단 손가락 화상이 심하니 저희 병원 어린이 화상 수술 가능한 교수님이 계신지 알아봐 주시겠다고.. “


그제서야 나는 정말 목놓아 울었다.

흐르는 눈물로 앞이 보이지가 않았다.

소리를 지르고 몸을 대굴대굴 굴리고 싶었다.

아니 어쩌면 했을지도 모르겠다.

기억나지 않는다.

정말 끔찍했다.

너무 끔찍해서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주먹으로 내 머리를 몇 번이고 내리쳤던 기억이 난다.

마음이 정말 미쳐버릴 것 같고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친정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엄마는 나보다 더 오열하셨다.

내 형제들도 왜 아이를 안 봤냐는 원성 섞인 목소리가 눈물에 목이 막힌 듯 조그맣게 들려왔다.

한두 시간도 지나지 않아 가족들이 모두 도착했다.


둘째는 태어날 때부터 심방중격결손으로 세브란스에서 치료 중이었다.

우리는 협진하여 수술이 가능한 신촌 세브란스로 옮겨 수술을 받기로 했다.


수술날.

아이는 수액 주사를 맞으면서도 울지 않았다.

씩씩한 아이를 보고 간호사 선생님들도 의아해했다.

난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정말 미안해. 엄마가 정말 미안해..”

눈물이 미친 듯이 쏟아져 나와 말을 잇지 못했다.

아이가 놀랄까 봐 난 다시 추스르고 들어가

입술을 깨물었다.

아이 앞에서 의연한 척하며 뽀로로 노래를 불러주고..

마이쮸를 사주겠다고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하며..

그렇게 수술실을 들여보냈다.


수술실에 들여보내고 나의 뇌는 멍한 압축의 상태가 되었다.

하늘이 나를.. 왜?.. 내가 뭘 잘못했길래.. 자꾸 나한테.. 왜?.. 도대체 왜?


인생이.. 말 그대로 첩첩산중이었다.

그렇게..

뜨거운 여름.. 뜨거운 눈물로..

뜨거운 깨달음을..

정말이지 뜨겁게 느껴봤다..


[다음 편에 계속…]


사진출처 : 내 사진첩

  (메인사진: 돌을 맞아 집으로 돌아온 둘째,

   중간사진: 사고 당시와 치료과정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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