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날현 May 01. 2024

(13) 베개를 적셔야 낫는 병


2018년쯤이었을까?

육체가 정신을 지배했던 시절..

내 몸도, 육아도, 가정경제도, 모든 게 다 꼬여있었다..

공황장애.. 우울증.. 조울증..

정신과에 치료가 절실했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병원을 찾을 수 있을 만큼의 에너지도 남아있지 않았었다.

아마 병원에 갔다면 세 개 이상의 진단명이 나왔으리라…


내겐 초등학교 입학식 때 만난 친구가 있다.

추운 봄날씨에 콧물을 훌쩍이며 수줍어하며 만났던..

그 친구와 난 같은 반도 아니었다. 3학년 때 까지도..

그리고 그해 겨울 난 서울에서 ㅇㅇ으로 이사를 갔다.

난 어려서 몰랐지만 집안 형편이 안 좋아졌다는 걸 자라면서 알게 되었다.

그렇게 이사를 갔는데도 난 그 친구와 전화(집전화)나 편지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연락을 하며 그리워하다가 그 어린아이들은 집으로 초대를 하면서

마침내 만남을 약속했다.

그때의 만남을 시작으로 우린 꾸준히 그리고 띄엄띄엄 연락을 이어가다

드디어 대학교 때 다시 재회하게 되었다.


이 친구와 내가 불혹을 넘기며 가장 많이 한 말은

“ㅇㅇ아! 우린 그때 뭐가 그렇게 좋았을까? 기억나? 강남역 한복판에서 아니 심지어 횡단보도를 건너면서도 깔깔거리며 웃었던 거?”

“맞아! 그땐 얼굴만 봐도 웃었던 거 같아~ 뭐가 그리 맨날 즐거웠을까?”

하며 회상에 젖곤 했었다.


이 친구와 난 아직도 베스트 프렌드이다.

이 나이에 심지어 초등학교 때 친구가 베프로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기쁨이자 프라이드이다.

나의 리즈 시절을 함께하며 희로애락을 같이 했던 친구!


그러나 이 친구와 나는 약간의 괴리감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이 친구의 부모님은 대졸이시고 난 아니었고..

이 친구는 중고등학교를 엄마 승용차로 등하교했었고 난 아니었고..

이 친구의 아버지는 대기업 임원으로 명예퇴직을 하신 분이고 난 아니었고..

음.. 나를 비하하는 건 아니지만 어린 시절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물론 우린 어려서 몰랐지만..


이랬던 친구가 너무나 예쁘게 잘 자라주었고

나와 마음까지 잘 맞는 멋진 숙녀가 되어 있었다.

우린 남자친구를 함께 만나기도 하며 기쁨을 나누기도,

헤어짐의 슬픔을 함께 나누기도 했다.^^

쇼핑도 함께 술도 함께 하며 이팔청춘 이십 대를 함께 했었다.


그러다 서른이 될 때쯤 친구가 돌연 임용고시 시험준비를 한다고 해서

한동안 만날 수가 없었다.

그리고 3년 후! 그 친구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합격했다고! 지금 대기발령 중이라고!

들어보니 1년에 한 번 있는 시험을

첫 번째도 두 번째도 붙었는데

두 번다 면접에서 떨어져서,

세 번째는 전국 수석을 했다고!

와~~~~~ 난 정말 소름 끼치리만큼 너무 자랑스러웠다.

마치 나의 수석인 것 마냥~


이제는 이 친구가 ‘베프’의 자부심 그 이상이었다.

어딜 가든 나의 일인 마냥 자랑하고 싶었고

내 마음속에서도 뿌듯한 친구이다.

그러다 이 친구와 난 같은 해에 결혼을 하게 되었고,

이 친구는 분당에서 나는 일산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는 물리적 거리는 멀었지만 반찬은 뭐 해 먹는지

남편하고 싸울 때는 어떻게 하는지 시댁욕도 서로 하며

스트레스도 풀고 고민도 함께 나누는 일로

한 시간 이상씩을 통화하곤 했었다.


그러다 나의 고민이 깊어지고 우울증이 찾아왔을 때쯤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그냥 그런 대화만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걸려온 친구 전화에서 “왜 이렇게 힘이 없어?”라는 말에

아주 느리고 아주 힘없는 말투로 나의 가슴에 쌓여있던 진심이 터지기 시작했다.

” 나 아무 의욕이 없어…

나 내가 아닌 거 같아…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나…

이렇게 살아서 난 어떻게 되는 걸까?…“

곧 죽음을 앞두고 유언을 남기는 사람들의 목소리쯤으로 들렸으리라.

그때 내가 내 입으로 죽고 싶다는 말을 했는지의 유무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고작 이렇게 몇 마디만 했을 뿐인데

내 친구는 나에게 불같이 화내기 시작했다.

“너! 20대 때의 너는 다 어디 갔냐고.

그 열정적이고 항상 자신감에 차 있던 너는 다 어디 갔냐고.

내가 왜 임용고시를 본 줄 아냐고. 너 때문이라고.

너만 보면 항상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고 자극됐었다고.

넌 나한테 항상 귀감이 되는 친구였다고.

내 친구들 중에 너를 모르는 애는 없다고.

내가 하도 얘기해서ㅠ.

너 이거 안 어울린다고.

너답게 살라고.

당차고 자신감 넘치는 커리어 우먼으로 다시 돌아오라고. “

한 시간 넘게 화를 냈던 거 같다. 그리고…


그날밤 잠을 자는데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이 친구가 해준 한마디 한마디가 생각나면서

나의 어린 시절이 오버랩되기 시작했다.

눈물이 흘렀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한 한 시간쯤 그냥 흐르는 눈물을 방치했다.

마치 수도꼭지를 틀어 놓은 것처럼 흘러

베개를 다 적셨다.

그러고는 아주 잠깐.. 잠깐동안 오열했다.


다음날 늦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개운했다.

햇살이 예쁘다는 말도 안 되는 낯간지러운 생각이 들었다.

문자가 왔다. 딸은 엄마의 자존감을 물려받는다는 논문 내용이었다.

동영상도 함께 첨부되었다.

그리고 전화도 왔다.

”정신 차리라고. 두 딸을 생각하라고.

넌 딸을 잘 키울 수 있는 최고의 엄마라고.

너의 두 딸은 너의 자존감을 그대로 물려받아

자존감 높은 아이로 잘 성장할 거라고. ”


“혜연아! 난 가끔 이때의 아찔 했던 기억을 하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

너무너무 고맙고… 사랑해~!

나의 자랑스러운 ‘내 친구 혜연아’!~“


[다음 편에 계속..]


사진: 핀터레스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