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배에 선명하게 남은 꿰맨 자국들. 내 배가 도화지 같았다. ‘참.. 세상 좋아졌구나. 배를 찢어서 고치고 또 꿰매고..’ 좋아진 세상에 대한 감사는 고사하고 지저분한 배가 꼴도 보기 싫었다. 이 흉터 따위가 뭐라고 목숨을 건진 주제에 신세한탄이나 하고 있다니. 알면서도 화가 났다. 그 화는 내 마음 깊이, 아주 깊이 가라앉아만 있었다. 나오지도 못하고 꼭꼭 숨어있었다. 이것은 곧 우울이라는 막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어쩜 이건 수순일지 모른다. 피할 수 없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같은 수술 후 스트레스 장애. 모든 수술 환자들은 공감할 것이다. 수술 후가 더 힘들다는 사실을. 그러나 주변은 그걸 짐작하기 힘들다. 당연한 것이다. 스스로 받아들이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했다. 앞으로 위 없는 여자로 살아야 함을 아는데도, 인지하지는 못했다. 그러니 그간 고생한 내 위(stomach)를 보내며 충분한 애도를 못했는지도.
도화지 같은 배를 보며 이제 떠나간 위에 대한 애도를 하는데 문자가 왔다. 단체문자였다. 지인의 친정아버지 부고 소식이었다. 아이로 인해 사귄 사이였으나, 그녀도 나도 친구인 것처럼 둘이 만나며 심적으로 꽤 가까운 사이였다. 가야 하는 사이였다. 내가 갈 수 있을까? 수술한 몸으로 가도 되는 것일까? 괜히 재수 없는 여자가 가는 것은 아닐까? 마음이 한껏 쪼그라진 나는 카톡으로 조의금만 보냈다.
시간이 지나도 찜찜함이 가시지 않았다. 누가 봐도 난 아파 보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마 그녀도 알 것이다. 내가 안 갈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런데 조의금만 보내고 안 간다? 오해하기 좋은 순간이었다.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똥고집은 버려야 할 것 같아, 부친상으로 힘들 그녀에게 최대한 담담하게 문자로 알렸다.
몇 주간, 또 신체가 정신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체력이 바닥났다. 더 문제는, 정신이 더 빨리 방전되는 것이었다. 알고는 있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을. 난 안간힘을 다해 버텼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정신을 잇고 있을 때, 구세주 같은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그녀는 내게 밥을 사준다며 삼계탕 집에 데리고 갔다. 식탁에 앉고 음식이 나오자, 그녀가 아주머니께 깍두기, 김치, 양파, 고추, 쌈장, 소금 등을 싹 다 치워줄 것을 요구했다.
“아니, 왜?”
“언니! 위암환자가 이런 거 먹으면 안 돼요. 고기는 단백질이니까 꼭꼭 씹어먹고 죽만 천천히 먹어요. “
“아니, 내가 환자이지, 자기가 환자야? 그냥 맛있게 먹어. 네가 맛있게 먹어야 내가 대리만족하지. “
“아니에요. 언니. 나도 내 건강 생각하는 거예요. ”
단칼에 거절하는 그녀.
설마..
정말 설마.. 했다.
음식을 먹는 내내 머릿속에서 음악이 들렸다. 끊이지 않고 들리는 선율은 잔잔했으며 설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녀의 말.
“음~ 계속 먹으니까 담백하고 맛있는데요? 원래 음식 자체에도 나트륨이 있대요.”
아~~~ 이게 뭐지?
신발 없이 걷는 아이 옆에서 같이 신발을 벗고 걸어주는 친구.
빛나지 않는 자리에서도 묵묵히 함께 걸어주는 친구.
상대의 부족을 채워주기보다, 그 부족함을 함께 감내해 주려는 배려.
이러한 배려가 투박한 그녀의 표현에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감동이었다.
누군가를 위해 나의 불편을 감당할 수 있는 마음.
그 마음을 가진 그녀가 찬란하게 보였다.
그 대상이 나였다는 것도 한없이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또다시 배웠다.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감동’이라는 걸.
이 감동은 잔잔하게 시작되어 나를 뜨겁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래~ 세상을 바꾸는 건, 바로 이런 작은 날갯짓이었어~’
자꾸 숨는 나를, 자꾸 지하 세계에서 안 나오려고 애쓰는 나를, 건져 올린 건 나의 말이었다. ‘드러냄’, ‘인정’ 다시 말해 ‘암밍아웃’이었는지도 모른다. 아픈고 힘든걸 주변에 알리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진정한 위로를 받는 단 한순간만 있더라도 그것은 충분한 것이었다. 우울증 환자에게 단 한 사람 오로지 자신을 이해해 주는 단 한 사람만이 간절한 것처럼, 그녀는 내게 한 번의 온기로 나를 단번에 녹여주었다.
일어나야만 했다. 다시 날아오르고 싶어졌다. 그러나 위가 없어지고 나니, 오래되고 연비가 안 좋은 똥차가 되어 있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어도 흡수가 잘 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빨리 먹으면 곧바로 소장을 지나 화장실로 가야 했으며 천천히 먹어도 남들과 같은 영양 흡수는 기대할 수가 없었다. 유일한 방법은 조금씩, 자주, 천천히 먹는 것이다. 이게 뭐가 문제가 되랴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천천히 먹어야 하는 사람에게 하루 종일 먹어야 하는 부담감은 상당하다. 음식을 준비하는 시간, 음식을 천천히 먹는 시간을 지나면 열심히 소화를 시키고 또 다음 음식을 준비하고 또 먹고 또 먹고를 반복했다.
이쯤 되면 먹는 것은 곤욕이다. 소화도 잘 안되는데 계속 먹는 것은 턱관절도 아프고 씹는 것도 지겹다. 그러나 포기하기에는 무섭다. 너무 무섭다. 또다시 바비인형보다 말라비틀어진 몸을..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살을 빼려는 노력과 살을 찌우려는 노력. 이 두 가지 모두를 해 본 사람으로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살을 찌우려는 노력이 더 힘들고 어려웠다고. 감정적으로도 훨~씬 비참했다고.
아무리 에너지를 채워 넣어도 먹은 것은 살로 가지 않았다. 많은 양을 먹을 수도 없을뿐더러 방법은 하나였다. 에너지를 아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웬만해서는 움직이지 않았다. 남들이 게으르다 할지라도 살이 빠져 흐물거리는 피부를 보는 것보다 무섭진 않았다. 최대한 에너지를 아낀다는 핑계로 나는 집에 은둔하며, 아이들에게 등교는 물론 학원도 혼자 오가게 했다.
어느 날은 무거운 가방을 메고 1km를 넘게 걸어 다니는 막내가 안쓰러워 집 앞에 나갔다. 아이들 하원시간이라 오가는 엄마들이 더러 보였다. 몇 년 전부터 알고 지낸 동네 엄마가 나를 반기며 인사를 한다. “언니! 너무 오랜만이에요. 요즘 너무 안 보여서 안 그래도 연락해 볼까 했어요. 그런데.. 언니, 현이 혼자 ㅇㅇ학원가요? ㅇㅇ학원을 걸어서?” 나는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응. 내가 바빠서.. 우리 현이가 혼자 갈 수 있다고 하더라고. “라고 대답하며 다시 웃어 보였다. ”언니~ 아무리 그래도 초등학교 2학년이 이 무거운 가방을 메고 그 먼 거리를? 나, 엊그제 현이 혼자 가는 거 보고 정말 깜짝 놀랐잖아요. 이 정도면 아동학대예요. 이러다 언니, 누가 보면 신고당하는 거 아니에요?”라고 웃으며 말한다.
순간, 놀란 나는 큰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물론 그녀의 뉘앙스는 현이를 예뻐하고 걱정하는 마음이었다. 다시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자기야. 제발 신고하지 말아 줘~ 자기만 비밀로 해주면 될 것 같아.”라고 말하고.. 웃으며 안녕을 하고, 뒤돌아서자마자 얼굴의 근육들이 쏟아져 내려왔다. 곧바로 내려앉는 근육들을 느끼자, 씁쓸했다. 억지로 올려붙였던 눈 주변 근육들이 파득파득 뛰고 있었다.
누가 봐도 멀쩡해 보이는 내 외모가 문제일까? 괜한 자격지심에 심장이 혼자 요동치는 것일까? 아니다. 나의 최선은 아니었다. 어쩌면 정말 이것이 아동학대일까? 아이가 커서, 어릴 적 혼자 외롭고 힘들게 학원을 오간 시간을 불행하게 기억하는 것은 아닐까?
사실, 난 아이가 학원에 가있는 시간에 쉬고 싶었다. 결국 난 보육을 맡긴 꼴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엄마로서 아이에게 꼭 줘야 할 것을 생각해 보았다. 돈은 아니었다. 물려줄 재산도 없을뿐더러 그런 삶이 아이에게 마냥 좋을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안다.
자식을 키우는 목적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독립이다. 수많은 육아서에 나오는 내용들은 모두 독립을 위한 방법이다. 이보다 더 맞는 목적은 없을 것이다. 두 번의 암수술을 해보니, 언제 떠날지 모르는 나에게는 특히 더 그랬다. 만일 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 두 아이에게 반드시 꼭 해줘야 하고, 해줄 수 있는 부분을 생각해 보았다. 길지 않은 시간 끝에 찾아낸 건 ‘아들러’였다. 예전 아들러 책에서 그가 말했던 자립심과 자존감(용기)을 읽으며 유레카를 외친 적이 있다. 그래~ 맞다! 바로 독립을 가능케 하는 직업과 배우자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충분한 자존감. 이 두 가지만 주고 떠날 수 있다면, 정말 편히 눈감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독립을 가능케 하는 직업을 갖게 하고 의존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자존감을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일까? 내가 생각한 최고의 방법은 ‘경험’이다. 그러나 짧은 시간의 경험은 효과적이지 않고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그래! 맞다! 책! 유레카~~~ 책이었다! 책을 읽으며 생각할 수 있는 능력과 책에 빠져 역할에 몰입되어 보는 경험, 또 그로 인해 간접적 치유까지 해 보았을 때, 자신의 인생의 끈도 더 탄탄해지리라. 그리고 만에 하나, 내가 없어졌을 때, 책을 보면서도 엄마를 떠올릴 수 있기를..
아이 학원을 끊었다. 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오면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게 했다. 그리고는 원래 읽던 책보다 양을 늘려 쌓아 놓기 시작했다. 난 누워서 빈둥빈둥 책을 읽었다. 아이들과 같이 누워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또 나의 책을 봤다. 바닥에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책을 치우지 않았고 발로 밀치고 바닥에 누워서 책을 봤다. 아이가 말을 시켜도 난 내 책에 집중했다. “잠깐만! 요 부분만 읽고..” 이렇게 몇 번을 반복하니, 아이는 자기 책을 읽으며 기다릴 줄 안다. 나는 내 책을, 아이들은 아이들 책을 읽는 시간은 참 따듯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환경이었다. 비싸고 의리의리한 주택이 아닌 아주 작은 환경. 책 읽는 엄마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비록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이것뿐이라도, 현재의 내 상태와 위치에서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나를 위로한다. 설사.. 이것이 좋은 결과를 만들지 못할지라도 내 아이의 행복에는 선한 영향을 미치리라 간절히 바라며.
그리고 아이들에게 내가 예전에 쓴 글 중 몇 개를 선별하여 읽게 하기도 했다. “엄마가 쓴 글이야. 어때?”라고 물었을 때, 아이들 눈에 이슬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뭘 안다고 우는 걸까? 엄마의 글에서 진심을 느꼈던 걸까.. 막연한 사랑을 느꼈기를, 감히 기대해 본다.
P.S.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너무~
나의 순녀!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