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임이 가능한 이유가 뭘까?
아마도..
처음 하는 육아의 스트레스를
어디에도 공유하지 못하고,
출산 후 여자로서 대접받지 못하는 스트레스를
여기라도 가면.. 풀리지 않을까?
또는
부족한 어미로 인하여
혹여, 나만 모르는 내용이 있을까?
그래서 내 아이가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을까?
이런 마음에서 비롯하여
공통분모를 찾게 된다.
같은 어린이집 혹은 유치원,
같은 동네, 문화센터, 학원이나 학교 등에서..
예전에도 브런치 모임이 있었을까?
있었다.
그러나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라
그건 팔자 좋은 엄마들이 가능하기는 했을 것이다.
평범한 엄마들은
길에서 혹은 골목골목에서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딱히 하는 거라고는
모여서 하는 잠깐의 수다가 유일한 낛이었으리라.
예나 지금이나
브런치모임의 시작은 이러하다.
처음 하는 엄마 역할을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게 맞을까?
혹시 더 좋은 게 있는데 나만 모르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한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래~
불안!
사람들이 가장 견디기 힘들어하는 불안.
불안은 그 크기와 종류가 모두 다르지만
우리는 대부분 불안을 가지고 산다.
불안은 우리에게
때로는 긴장감을
때로는 피로감을
때로는 스트레스를 주며
때로는 적당한 텐션으로 유익함을 가져다주지만,
뭐든지 그러하듯..
선을 넘으면 아주 위험한 놈이다.
그래도 인간은 불안전한 존재이기에
언제나 이 불안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 불안을 조금이라도
혹은 잠깐이라도 놓아보고자..
자신의 친구도 아닌, 아이 친구 엄마들과
한 자리에 모인다.
브런치란 이름으로~ 따듯한 느낌으로~
그러나 모임을 마치고 돌아와서
남는 것은?
그 ‘후폭풍’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나도 모르게 흥분한 나를 발견한 적이 있는가?
나비효과처럼 나의 작은 흔들림의 시작이
브런치 모임에서의 ‘카더라’는 아니었는지..
브런치 모임이 가장 위태한 나이는
5세부터 8세이며 이때가 가장 활발하다.
이 나이 기준은 엄마들 나이가 아니고
아이 나이 기준이 된다.
이 나이때가 가장 활발한 또 다른 이유는
엄마로서 처음 갖는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
순수한 초심.
이 시기가 지나면
괜한 곳에 에너지 낭비를 하는 것이
소모적인 일임을 스스로 뼈절이게 느끼게 된다.
그러나 아이 나이 기준으로 만나면
공감대 형성이 빛의 속도보다 빠르기 때문에
짧은 기간에 절친보다 친해지는 경우도 있다.
어느 문제집이 좋다더라~
뉘 집 아이는 한글을 정말 빨리 떼서
벌써 책을 읽는다더라~
그랬더니 애가 선행이 빠르다더라~
선행을 안 하면 학교 수업을 못 따라간다더라~
구구단은 입학 전에 해야 한다더라~
학교에서도 의례 배우고 왔겠거니 한다더라~
영어 AR 4점대는 읽어야 한다더라~
어느 학원이 기초를 탄탄히 잡아준다더라~
그 애는 엄마 아빠 둘 다 의사라더라~
그 엄마는 셔틀버스 기사도 해고시킨다더라~
그 집 아이는 학원을 대치로 다닌다더라~
어느 집 아이는 밥을 잘 안 먹어서 한약을 먹인다더라~
마치 나에게만 이야기 해주는 것같고
이것이 평균 같지만
나이보다 1년 정도만 지나면
누구나 자동으로 알아 진다.
(그래서 보통 2학년부터 모임은 점차 줄어든다)
또 다른 버전은..
‘그 엄마 봤어? 너무 예쁘더라~’
‘그 엄마가 예뻐? 코 너무 높여서 티 나던데?’
‘그래도 자기관리 잘하잖아. 난 부럽던데..’
‘A가 영어를 그렇게 잘한다며?
레벨에 맞는 반이 없어서 대치로 라이딩한데.’
‘근데 영재교육원에서 쫓겨났다며?
엄마들이 그 엄마 마주칠까 봐 무서워한데.’
‘우리 ㅇㅇ도 그 정도만이라도 했음 좋겠다. ’
‘걔는 애가 너무 불쌍해.
엄마가 11시까지 시킨데.‘
’B엄마 애 스케줄 매 시간 단위로 짜 놓은 거 봤어?
그 애는 책을 몇 만권 읽었데. 그게 가능한 거야? ‘
‘그래서 SR이 6점대 나오나? 와~ 대단하다. ’
이런 얘기들 속에서
다른 나라 이야기를 듣듯 한 엄마들의 반응은
‘우리 애는 평범해요.
저는 그렇게 까지는 바라지도 않아요.
무섭네요.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제가 너무 아이한테 신경을 못 썼나 봐요.’이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이 모든 ‘카더라’ 이야기에
나의 아이를 대입시키기 시작한다.
자신도 모르게..
그리고 ‘카더라’ 엄마들에 빙의되기 시작한다.
자신도 모르게..
내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 뒤쳐질까 봐
바로 학원을 등록하기도 하고
엄마가 직접 공부를 시키기도 한다.
그 과정에 하기 싫은 아이와의 마찰은 불가피하고
또 엄마의 의지는 ‘카더라’를 들은 지 얼마 안 되어
잘 꺾이지 않는다.
물론 오래가지는 않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생각해 보라~
짧은 시간이지만
아이들은 얼마나 헷갈리고 혼돈스러울까?
갑자기 바뀐 엄마
갑자기 채근하며 화내는 엄마
갑자기 뭔가를 강요하는 몰아붙이는 엄마
그 이유를 모른 채..
아이들은 그냥 받아야 한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 무의식 중 일부는 이러한 형식이 아니었을까?
일관되지 않은 엄마의 태도..
그럼
이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란 말인가?
남의 말에 잘 팔랑거리는 나의 귀가 문제란 말인가?
이렇게 자기 비하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이건 내 잘못이 아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누구나 비교를 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인다.
그럴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우린 이 무의식을 의식화하지 않으면
무의식의 방향
즉, 니체가 말하듯 운명대로 살아지는 것이다.
난 그런 의지가 강하지 않은데
원래 성격이 그러한데
어떻게 하느냐고 하는 이들도 있다.
그럼 필자가 권하는
아래의 방법을 읽어보시라~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닐 때쯤
일찍 결혼한 친구에게 상담을 한 적이 있다.
엄마들 브런치 모임이 너무 불편하고 싫다고.
내가 사람을 잘 못 사귀고 내성적이라
내 아이 친구를 못 만들어 주는 것 같다는 걱정을
토로한 적이 있다.
친구는 그런 내게 자신의 핸드폰을 내밀며 말하길
’ 유빈이가 전교회장이야.
그런데 내 핸드폰에 엄마들 번호 하나도 없어.
학교를 딱 한번 간 적이 있는데
그때 교장 선생님이 말씀하시더라.
제발 정보교류한다고 엄마들끼리 모임 하시지 말라고.
그 안에서 정보교류 안 되는 거 알고 계시지 않냐고.
그 안에서 모든 다툼의 시발이 생긴다고.
그 시간에 자기 계발들 하시는 게 낫지 않겠냐고.’
앗차! 했던 순간이다.
그 긴 세월 엄마들을 보시며 느꼈던
교장선생님은 오죽하면 이렇게 말씀하셨을까..
느껴졌다.
그래서 필자는
브런치 모임을 자제하는 방법을 권한다.
인간이 어떻게 바른 생각과 바른 결정만을 할 수 있을까?
그럴 기회를 줄이는 건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기회를 줄이는 것이다.
그건 곧
아이가 혼란스러울 수 있는 기회를 줄이는 것과
같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자기 계발을 하라는
만나보지도 못한 어느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다.
엄마의 발전은 내 아이뿐 아니라
가정의 안정과 발전이며
나아가 사회의 발전이며
가장 중요한 ‘나의 안정’이다.
불안!
때로 적당함은 필요하지만..
늘 달고 살 필요는 없다.
그 불안을
내 안에서 놓을 줄, 쉬게 할 줄 알아야 한다.
불안을 다스리는 법을 깨우쳐 나가는 건
‘나’를 알아가는 과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