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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rlie Choi Oct 12. 2019

[미국을 그리다] Paul Kim 교수님을 뵙다.

Meet by Stanford Univ.

스탠포드 대학교의 역사

동부에 아이비리그 대학으로 뛰어난 명문 대학들이 있다면, 서부에도 그에 필적하는 명문 대학들이 있다.

바로 동부 명문대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캘리포니아주의 명문 사립대학, '스탠포드대학교(Stanford University)'이다.

1891년에 개교한 스탠포드대학교(Stanford University)는 릴런드 스탠포드(Leland Stanford) 캘리포니아 출신 연방 상원의원과 그의 아내 제인(Jane Stanford) 여사가 설립한 학교이다.

현재 7천 명이 넘는 학부생과 9천 명에 달하는 대학원생이 재학 중인 초대형 종합대학이며, 동부 아이비리그 대학들에 비해 설립 역사는 짧지만, ‘금세기 가장 성공한 대학’으로 일컬어질 만큼 급속한 발전을 이룬 연구중심형 사립대학이다.


스탠포드 대학교를 좋아하는 개인으로써 소위 말해 '뽕'이라는 걸 채워 보자면, 먼저 스탠퍼드대학교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를 말하는 것이 먼저 일 것 같다. 

스탠퍼드대학교는 매년 미국 대학교들의 평가서를 발표하는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US news and World Report)지의 2019년 대학 랭킹에서 7위에 오른 대학이다.

세계 대학 순위를 평가하는 권위 있는 ‘THE (Times Higher Education)' 2019년 자료에서는 3위에 올랐다.

특히 ‘Times Higher Education’ 자료에서는 영국의 옥스퍼드대학교, 케임브리지대학에 이어 3위에 오르면서, 미국 대학 중에서는 MIT나 하버드 등을 제치고 가장 우수한 대학교로 뽑히는 기염을 토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해안선을 따라 남쪽으로 약 50km 떨어져 있는 스탠포드 시는 지금도 주민이 1만 4천 명 정도에 불과한 조용한 마을이다. 하지만 낮에 활동하는 인구는 3만 5천 명이 넘는 생동감 넘치는 곳으로, 오늘날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가장 뛰어난 첨단 기술회사들이 집결해있는 기술 혁신 산업단지인 ‘실리콘밸리(Silicon Valley)’에 자리 잡고 있다. 스탠포드 캠퍼스는 대학교 설립자인 릴런드 스탠포드 씨가 운영하던 거대한 말 목장이었던 자리였기 때문에, 별명으로 ‘The Farm’, 즉 농장이라고 불린다. 8천 200ac에 달하는 광활한 자연보호지역에 자리 잡고 있고, 서쪽으로는 태평양까지 펼쳐져 있다. 처음 이곳을 탐험한 스페인 원정대는 30m가 넘는 거대한 야생의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이 지역을 일컬어 거대한 나무라는 뜻을 가진 ‘팔로알토(Palo Alto)’라고 명명했다는 역사적 기록도 전해지고 있다.


스탠포드 대학교 캠퍼스를 거닐다.

올해 1월 난생처음 스탠포드 대학교를 방문했던 때에 아쉬움이 분명히 남아 있었다.

언젠가 다시 실리콘밸리를 와서 "스탠포드 대학교 학생들처럼 자유롭게 자전거를 타며 학교를 돌아다녀야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반년 만에 다시 이루었다.


여전히 스탠포드 대학교는 평화롭고 조용하며 아름다웠다. 

수업을 참여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면서 돌아다니는 학생들부터 교내 카페에 앉아 여유를 즐기는 석, 박사 그리고 주변 거주민들까지 학교가 학생들을 위한 장소이긴 하나 공개된 하나의 공원 같은 곳으로 만들어지면서 주민들의 산책로가 되는 하나의 거대한 캠퍼스이자, 관광지가 되었다. 그렇게 되면서 스탠포드 시는 부수적인 이익을 많이 보고 있다는 것이 눈으로 보일 정도이다.

스탠포드 대학교의 메인 건물부터 뒤편에 있는 예배당, 공학관, 교육대학원 건물까지 걸어가는 시간 동안 "행복이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동경하는 학교의 캠퍼스를 걷고, 곧 만나게 될 Paul Kim 교수님과의 인터뷰를 기대하고 있는 이 기분.

말로 표현을 하는 것이 정말 어려웠다. 


Paul Kim 교수님을 만나 뵙기 전

Paul Kim 교수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몇 년 전의 방송 프로그램에서 알게 되었다.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어본다면 과거 나의 초, 중, 고등학교 학생 때의 나의 학교에 느낀 갈증과 많이 닮아있었다. 나는 초~고등학교 1학년까지 굉장히 공부를 못 하던, 아니 안 하는 학생이었다. 공부가 왜 중요한지 몰랐고 하나를 배우더라도 왜 배워야 하는지 이해를 해야만 공부를 했던 한 사람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개념에 대한 이해를 해야만 쉽게 공부가 눈에 들어왔었다. 


나와 비슷한 나이 때의 학생들은 생활기록부에 성적에 <수, 우, 미, 양, 가>라는 등급표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양가집 규수'라는 별명이 있었다. 전체 성적표에 나오는 등급이 전부 양, 가뿐이었기 때문이다.


교수님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개천에서 용이 났다'라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전교 꼴찌학생이 세계적인 명문대학교 스탠포드 대학교 교육대학원의 부학장이 되기까지. 이 얼마나 희망적인 이야기인가.


교수님을 만나 뵙기 10분 전.


처음 교수님의 이메일로 메시지를 보내던 때가 생각이 난다. 교수님께 아주 긴 메일을 보냈다. 

처음 메일을 보낼 때 교수님은 만나 뵈었으면 하는 날에 아프리카에 있을 예정이라고 하셨었다. 

혹시 모르니 미국 오는 날에 연락을 한번 더 달라고 하셨고, 미국에 도착한 8월 17일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메일을 보냈다.

그렇게 보낸 메일은 바로 2시간 뒤에 답장이 왔다.


굉장히 심플한 답변을 주셨다. 

"넵 도착하시면 연락 한번 다시 주십시요"

정말 심플한 답변을 받아 본적이 오랜만이라서 굉장히 재미있었다. 



워낙 유명하신 분이고, 세계적인 명문대학교 부학장님이시기에 엄청난 기대를 해서 그런 것일까?

사실 폴 킴 교수님도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한 분의 교수님일 뿐이었는데..


그렇게 교수님을 만나 뵐 약속을 잡았고, 

Stanford Green Library 앞 CAFE에서 뵙기로 했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너무나도 설렜었다. 

나에게 굉장히 큰 인사이트와 감동을 준 한분이었기에, 기대되는 시간이었다.


Stanford Green Library 앞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며 교수님을 맞을 준비를 했다.


스탠포드 교육대학원 부학장 Paul Kim 교수님

드디어 2019. 08. 21 AM 10:00 교수님을 뵈었다.

굉장히 덩치가 있으실 줄 알았는데, 생각했던 체구보다는 작은 체구를 가지셨었다.

항상 웃는 얼굴을 가지신 교수님은 마중 나와 있는 나를 반갑게 맞아 주셨다.

나에게 큰 희망과 영감을 준 교수님을 직접 실물을 뵌다는 것에 살짝 눈물이 핑 돌았다.


교수님과 우리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외에 다른 개인적인 질문도 함께 즐거운 한 시간을 보냈다.


MBA 석사에 대한 궁금증, 한국 교육이 어떻게 변화를 해야 하는지, 그리고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말씀까지 많은 질문과 교수님의 의견이 오가는 자리였다.


석사와 취업 사이에서 고민 중입니다.

Paul Kim 교수님  : 별로 고민할 필요는 없어요. 깍두기를 먼저 먹을지, 김치를 먼저 먹을지 하는 차이라고 생각해요. 대학원을 가서 공부를 하고 그다음 기업을 가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고 반대로 기업에 가서 경험을 쌓고 공부를 하는 것도 있고 다 상관이 없다고 봐요. 그런데도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 듣고 말하고 쓰고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이 문법적으로 잘 쓴다고 해서 영어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판단을 잘해서 적절한 말을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상대방의 심정이나 상황을 잘 이해해서 말할 수 있다. 이런 것은 상당히 고난도의 능력이에요. 그래서 언어 그 부분이 상당히 중요한데,

그런 부분 때문에 컴퓨터 프로그래머 사이에서 승진의 여부가 갈리는 것이거든요.

예를 들어서 프로그래밍에 대해서 똑같은 실력을 가지고 있어요. 커뮤니케이션을 누가 더 잘하느냐에 따라서 승진의 여부와 자신의 실력의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런 부분에 중점적으로 역량을 키워서 국제무대로 나가면 좋을 것.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스탠포드를 졸업했다고 가정을 했을 때, 세상이 달라지고 인생이 달라진다는 확실한 보장은 없어요. 

스탠포드라는 곳을 새로운 세상으로의 Door를 열었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굳이 석사를 위해 스탠포드를 갈 필요는 없어요.

빌 게이츠나 잡스가 대학을 제대로 나오지 않은 것을 보면.... 음.. 뭐 다 상관없다.

뭐 학교가 좋기 때문에 최고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한 것 같아요.


2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자신이 무엇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나요?

Paul Kim 교수님 曰 : 커뮤니케이션을 더 노력했을 것 같아요. 더 잘 쓰고 더 말 잘하고..

사실 독서만 한다고 해서 글을 잘 쓰는 것이 아니고, 말을 잘하는 것은 아니에요.

말을 잘하고 싶다면, 말을 많이 해야 하고 글을 잘 쓰고 싶다면 글을 많이 써야 해요.

그런 것처럼 뭐든지 집중하고 많이 하면 제대로 잘하게 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저의 과거를 생각해보면 아쉬운 점도 참 많아요. 아쉬운 점이 많지만,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없잖아요?

만족할 부분은 만족하고 살아가야죠. ^^


마지막으로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한마디.

Paul Kim 교수님 曰 : 응원 메시지? 음.... 어떤 위치, 어떤 상황에 있던지 다 상관없다.

왜냐하면 '젊기 때문에' 뭐든지 할 수 있다. 앞으로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서, 지금 20대라면 앞으로 80년이 결정될 텐데, 지금 시간을 귀중하게 생각하고 그냥 보내지 말아라.

'아무 생각 없이 보내지 말아라' 분명히 무언가를 배우고 있다는 느낌으로 나아가라. 그것이 작던 크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던 없든 간에 지금 나는 무언가를 배우고 있다. 나는 멈추지 않고 있다 라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끔 항상 뭔가를 배우고 시도하고 그 시간을 보내라라는 충고를 해주고 싶어요.  


Paul Kim 교수님과의 만남을 뒤로하며

교수님과의 만남은 개인적으로 정말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교수님께서는 바쁜 시간 와중에 멀리서 온 우리들을 위해 귀중한 시간을 내어주셨다.

돌아가시는 뒷모습을 보면서 내 눈에선 이유 모를 눈물이 흘러나왔다.

사실 우리 청년들에게 해주는 응원 메시지를 말씀해주실 때부터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평범한 아니 평범했을 응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힘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정신없는 2주간의 일정을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내가 직접 만남을 요청했던 Paul Kim 교수님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보냈다.

역시 교수님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차이가 분명하게 나는 분이셨다.

직접 만나 뵈었을 때는 정말 말씀이 많으시고 싱글벙글한 '호빵맨'이 생각나는 친근한 이미지를 가지고 계셨다. 그런데 오프라인에서는 너무나도 시크하셨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교수님께서 해주신 응원의 메시지와 미국에서 만난 다른 사람들 그리고 내가 해석한 경험들로 앞으로의 목표를 설정할 수 있게 되었다.

동경해오던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꼭 일을 하겠다 라는 목표. 

더 정확게는 꼭 실리콘밸리의 기업에서 일을... 언젠가 창업을 하고 싶다는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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