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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와강 Jun 21. 2024

우정도 사랑도 노력해야

영화 《언터처블 1%의 우정》


난 요즘 취미로 캘리그라피를 배우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 동네 주민센터에 가서 배우는데 상당히 재미있다. 사실 내가 캘리그라피를 배우는 이유는 서각을 하기 위해서다. 서각은 나무에 글씨나 그림을 새겨넣는 예술이다. 3년 정도 서각을 배웠다. 조각도를 사용하다 보니 어깨와 손목에 무리가 가 요즘은 쉬고 있다. 쉬는 김에 내가 쓴 글씨로 서각을 하고 싶어 서예를 배우게 됐고, 시간이 안 맞아 서예를 할 수 없게 되자 캘리그라피까지 흘러오게 된 거다.      


최근 캘리그라피 담당 선생님이 바뀌었다. 선생님 환영회 겸 간단한 다과회를 열었는데, 그때 수강생들의 자기소개시간이 있었다. 그때 선생님의 내건 자기소개의 조건은 나이 말하지 않기, 취미 중심으로 말하기였다. 십여 명의 수강생들이 돌아가며 이야기하던 중, 한 분이 서예가 취미고 몇 년 간 서예를 배우고 있다, 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난 그분께 관심이 생겼다. 나와 비슷한 취미를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 그분은 내게 특별한 사람이 된 것이다. 오래 만나다 보면 어쩌면 그분과 나는, 나이나 살아온 이력에 상관없이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는 자기소개를 할 때 주로 자신의 명함을 내보인다. 공적인 만남이라면 명함 하나면 충분, 더 이상 알려고도, 알 필요도 없다. 그러나 사적인 자리에서도, 나는 이러저러한 곳에서 어떤 직책을 갖고 있는 누구누구다. 좀더 길게 얘기하면 바로 나이가 나오고, 이어 고향은 어디고 어느 학교를 졸업했고, 결혼과 아이 유무를 밝힌다. 더 이상 할말이 없다. 그게 ‘나’의 전부다. 상대가 알고 싶어하는 것도 그게 전부일까.    

  

결국 사적이든 공적이든 혈연, 학연, 지연, 직장이 타인과 나를 규정하는 프레임이 되었다. 명함이 없거나 없어진 사람들은 자신의 쓸모를 찾지 못한 채 박탈감을 느끼고, 그러면 과거에 집착하게 된다. “내가 누군줄 알아?”, “내가 말야, 왕년에 말야~”라는 꼰대스러운 스토리가 그래서 생겨난다.      


이렇게 되면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지극히 형식적이 되어 버린다. 놀이터에서 노는 예닐곱 살 아이들만 봐도 그렇다. 아이들끼리의 첫 질문은 “너 몇 살이니?”다. 자신과 나이가 같으면 친구, 아니면 형이나 동생으로 빠르게 서열을 정리한다. 나이가 같으면 친구인가? 하긴 나이가 같다는 건 같은 문화를 향유하고, 유사한 경험을 하기 쉬워 친밀감이 형성될 수 있다. 하지만  나이만으로 친구 관계를 결정하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다. 십여 년의 나이 차이가 나도 생각과 마음이 맞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이가 같아도 도저히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있다. 그저 개인차일 뿐이다.      


《언터처블 1%의 우정》(2012)은 우리 상식으로는 도저히 친구가 될 수 없는 두 사람의 우정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올리비에르 나카체, 에릭 톨레다노가 감독하고, 프랑수아 클뤼제, 오마르 사이가 주연을 맡았다. 유럽과 일본의 많은 영화제에서 작품상과 남우주연상을 받은 프랑스 작품이다. 프랑스에서만 전체 인구의 3분의 1인 2천만 명 가까이 봤다니 가히 기록적인 수치다.     


영화의 스토리는 간단하다. 상위 1%의 백만장자 필립은 패러글라이딩하다 사고를 당해 전신마비가 되었고, 24시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신세가 된다. 그러나 괴팍한 성격 탓에 간병인들은 일주일을 채 버티지 못하고 도망간다. 그에 비해 드리스는 하위 1%에 속하는 가난한 흑인. 빈민가에서 정부 생활 보조금을 받으며 근근히 살아간다. 생활 보조금을 받으려면 구직활동을 하고 있다는 증명서를 제출해야 하고, 그 이유로 간병인에 지원한 드리스. 그러나 그의 꾸밈없는 솔직한 모습에 호기심을 느낀 필립은 그를 간병인으로 뽑는다. 그렇게 시작된 둘의 우정.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필립이 드리스를 간병도우미로 집안에 들였다는 말을 들은 친구는 필립에게 조언을 한다.      


- 법무부에 연락해서 알아봤어. 갱단의 보스까지는 아니지만 전과 기록이 있더군. 강도죄로 6개월 복역했어. 무엇보다도 환자 돌보는 일에 대해서는 아무 지식이 없잖나? 저런 애들은 물불 가리는 게 없다고.

바로 그게 맘에 들어. 내가 장애인이란 걸 모르는 것 같거든. 나한테 전화기까지 건네줘. 날 보통 사람처럼 대한다니까. 저 친구 체력 좋고 팔다리 멀쩡하고 머리도 제법 돌아가고 내 처지를 생각하면 저 친구 과거 따위 중요할까?     



필립이 드리스를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 장애인을 동정이나 연민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장애를 가진 보통사람으로 대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당당하게 말하는 솔직함과 아이 같은 순수함까지 갖춘 드리스. 깊은 밤, 필립이 약 부작용으로 ‘그릴 위에 던져진 고깃덩어리’처럼 헛통증으로 헉헉댈 때 드리스는 필립을 휠체어에 태우고 파리 시내를 산책한다. 필립으로서는 정말 오랜만의 밤 산책. 힘들어하는 필립에게 드리스는 담배를 권한다. 좀 나아질 거라면서.      



드리스는 필립을 데리고 병원에 갈 때 장애인용 커다란 승합차 대신 세단에 태운다. 사람을 짐처럼 저런 차에 태울 수 없다는 게 드리스의 논리. 그때부터 드리스는 필립을 데리고 나가 눈싸움을 하고, 수시로 농담을 던지고, 면도해 주다 말고 필립의 수염으로 장난을 치는가 하면, 필립을 자동차에 태우고 광란의 질주를 한다. 여느 친구 사이처럼 끝없이 내기를 하며. 필립이 전신마비 장애인이고, 돌봄의 대상이라고만 생각했다면 불가능한 일들이다.      



필립의 아내는 불치병으로 이미 죽었고, 그녀를 따라 죽고 싶어도 죽음조차 혼자 할 수 없는 필립. 그런 필립에게 드리스는 필립이 6개월간 펜팔로만 인연을 맺어온 여자친구를 직접 만나게 해준다. 필립은 드리스가 집안 문제로 힘들어하자 자신의 손발인,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존재인 드리스를 두말없이 보내준다. 집안문제를 해결한 후 드리스는 결국 다시 필립 곁으로 돌아온다.      



영화의 마지막엔 이 작품 실제 인물들의 후일담이 간단하게 소개된다. 그들은 각자 결혼하여 잘살고 있고, “필립과 드리스는 여전히 친한 친구 사이다.”라는 말.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가 이렇게 유쾌할 수가 있나, 이렇게 기분좋은 해피앤딩일 수 있나 싶다.         


영화 《언터처블 1%의 우정》은 친구 또는 우정에 대해 곰곰 생각하게 만든다. 친구와 포도주는 오래될수록 좋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포도주도 깊은 동굴 속 오크통이 아니라면 온도와 습도를 맞추며 꾸준히 관리해 주어야 좋은 와인이 된다. 친구와 연인도, 가족도 마찬가지다. 오래될수록 서로를 존중하며 예의를 지키는 게 필요하다. 어떤 관계든 오래되면, 가깝다는 이유로 홀대하고 무례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새롭게 친구를 사귀든 오랜 친구 관계를 유지하든, 사랑이든 우정이든,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           



* 사진 출처 : Daum 영화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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