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일할 때 음악을 듣는다. 노동요는 대개 클래식. 운전할 때도 음악을 듣는다. 그때는 주로 K-pop. 음악의 힘은 대단하다. 특히 대중음악은 3분 안에 듣는 이를 완전히 다른 시공간으로 데려간다. 요즘 K-pop은 잘 모른다. 그러나 예전엔, 그야말로 라떼의 K-pop은 서정적인 선율에 스토리 위주였다. 언제 무슨 노래를 들어도 마치 내 이야기인 듯 곱씹었고, 가사 한 마디 한마디가시처럼 일기처럼 편지처럼, 쓰고 아프고 따뜻했다.
노래엔 사람과 시간을 불러내는 마법이 있다. 어떤 노래는 어느 한 시절을, 또 어떤 노래는 특정인을 호출한다. 내 안에 아직 있었는지조차 몰랐던 사람들, 그 사람들과 함께 보낸 시간들, 그 시공간에 배인 그날의 냄새, 온도, 습도까지 줄줄이 다 소환된다. 타임슬립을 가능하게 하는 매직, 이게 바로 음악의 매력이다.
오늘은 음악의 매력을 가득 담은 영화 한 편 소개할까 한다. 영화 《러덜리스 Rudderless》(2015). 윌리엄 H.머시가 감독하고, 빌리 크루덥(샘 역)과 안톤 옐친(쿠엔틴 역)이 출연한 미국영화다. 시작부터 음악이 흐르더니 마지막까지 영화 전편에 음악이 깔린다. 아니 음악이 주연이다. 스토리는 그 음악을 빛내기 위해 깔린 격.
그래, 드디어 지금이
우리가 헤어질 시간
이번만은 정말로 마지막이길
약속할게
화면이 켜지자마자 들리는 노랫소리. 시작을 알리는 노래치고는 가사가 무겁다. 광고기획자였던 샘은 아들 조쉬와 만나기로 한 날 아들에게 바람을 맞는다. 바로 그날 아들이 다니던 대학에서 총격사건이 벌어지고 아들은 사망, 아버지 샘의 일상은 무너져 버린다. 2년 후 수염이 가득한 샘은 호수에 요트를 정박해 놓고 살고 있다. 아무도 모르게 숨어 살며 낮엔 페인트칠하는 일을 하고, 저녁엔 클럽에 가 맥주를 마시는 게 루틴.
어느날 이혼한 전처가 집을 팔기 위해선 샘의 서명이 필요하다며 찾아왔다. 집에 있던 물건들까지 싣고 와서 내려놓는데, 대부분 기타와 CD, 사진들. 음악은 샘과 조쉬만 좋아했으니 당신이 알아서 하라며. 그 안엔 아들이 만든, 만들다 만 노래들이 가득하다. 악보와 가사가 적힌 노트들. 그날부터 샘은 일할 때마다 아들이 만들고 녹음한 아들의 노래를 듣는다. 노래를 들으며 죽은 아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아내려고 노력한다.
어느날 저녁, 무명의 뮤지션들에게 무대 기회를 주는 음악 바 ‘트릴’에서 맥주를 마시던 샘은 무대에서 기타를 치며 조쉬가 만든 노래를 부른다. 그 노래에 반한 쿠엔틴, 아침저녁 샘을 따라다닌다. 그 노래가 자꾸 맴돈다며 자신이 화음을 넣을 테니 같이 부르자고 말이다.
결국 쿠엔틴의 설득에 넘어간 샘은 그와 같이 노래를 한다. 신이 난쿠엔틴은 친구들을 불러모아 밴드를 만들고, “러덜리스”리는 팀 이름을 짓고, 관객들의 호응이 좋아 여기저기서 공연요청이 온다. 그러나!
사연이 없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말할 수 있는 사연이 있고, 말할 수 없는 사연도 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샘의 속사정을 알게 된 쿠엔틴. 공연은 취소되고, 샘은 아들 학교에 찾아가 총격사건 추모비 앞에 앉아 오열한다. 강력한 반전이 있어 이 부분은 스킵.
극중 밴드 이름이자 영화 제목인 ‘러덜리스 rudderless’는 ‘키가 없는’, ‘지도자가 없는’, ‘방향성이 없는’이란 뜻이다. 호수에 정박한 채 어디론가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샘의 요트, 과거 삶의 흔적을 모두 지운 채 칩거하며 머물러 있는 샘의 일상, 21년째 막살고 있다는 쿠엔틴, 왜 그렇게 세상을 등지고 떠나야 했는지 알 수 없는 샘의 아들 조쉬. 모두의 스토리가 중첩된 제목이 아닌가 싶다.
막살지 말고 계속 나아가.
네겐 그 노래나 내가 필요없어.
계속 나아가.
곡들도 쓰고 음악을 만들란 말야.
나 때문에 포기하지 마.
포기하는 자는 이길 수 없어.
아들과 비슷한 나이에, 아들처럼 음악을 좋아해서인지, “내가 모르던 조쉬를 만난 기분”을 느끼게 해준 쿠엔틴. 샘이 쿠엔틴에게 한 마지막 충고다. 영화의 마지막, 떠나기 전 다시 ‘트릴’ 바 무대에 선 샘. 자신의 아들 조쉬가 누구인지 소개하며 조쉬가 만든 노래를 부른다.
세상은 너 없이 돌아가라지
어딘가에서 이 노랠 듣고 있다면
같이 불러다오
눈을 감고 열을 세어봐
어쩌면 사랑만이 답일지 몰라
너의 노랠 부를 길을 찾을 테니
같이 불러다오.
노래를 끝낸 샘은 쓸쓸히 무대를 떠나고 깜깜한 무대엔 마이크만 남았다. 음악을 활자로 표현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 문장력의 한계를 느낀다. 단조롭고 슬픈 기타 선율에 얹힌 노래들. 기교없는 담담한 목소리에 얹힌 삶과 죽음의 서사. 왜 죽였는지, 왜 죽었는지 끝내 이유를 알 수 없는 안타까운 목숨들.
샘이 부른 노랫말처럼 “사.랑.만.이. 답.”일까. 사랑했다면, 사랑받았다면 달라졌을까. 생각이 많아지고 마음이 무거워지는 결말. 영화의 주역인 음악을 뚫고 나온 샘과 조쉬의 스토리가 자꾸 머릿속을 맴돈다. 샘은 앞으로 나아갈 삶의 키를 찾았을까, 그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