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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와강 May 31. 2024

러시안룰렛

영화 《디어 헌터》


며칠 전 최은영의 소설 〈씬짜오, 씬짜오〉를 읽었다. 예전에 읽은 작품이지만 이번에 다시 읽어보니 느낌이 또 다르다. 소설이란 참 미묘하다. 읽었던 작품이라도 다시 읽으면 또다른 묘미가 있다. 예전엔 그냥 스쳐갔던 대사가 새롭게 눈에 박힐 때가 있고, 아름다운 묘사에 새삼 마음을 빼앗기기도 한다. 이 매력 때문에 내가 소설을 전공했는지도 모르겠다.      


〈씬짜오, 씬짜오〉는 베트남 전쟁의 상처를 안고 있는 베트남과 한국, 두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품은 최은영 작가 특유의 단정하고 섬세한 문체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맺어지고 또 어떻게 부서지는지, 그 추이를 각각의 입장을 배려하며 추적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누가 떠나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     


독일이라는 이국 땅에서 친밀하게 지내던 베트남 가족과 한국인 가족이 ‘베트남 전쟁’에 대한 인식 차이와 지울 수 없는 전쟁의 상처 때문에 관계의 파탄을 맞는 이야기. 전쟁이란 당시는 물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흔적을 지우지 못하고, 개인의 심중에 깊게 각인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휴전국이고, 지금도 이 지구상에서는 전쟁이 한창이다. 대체 전쟁은 누구를 위해, 왜 하는 건지,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기도 싫다.      


소설 때문인지 베트남 전쟁을 다룬 영화 한 편이 떠올랐다. 《플래툰》, 《지옥의 묵시록》 등 전쟁을 다룬 수많은 명작들이 있지만, 나의 원픽은 단연 《디어 헌터 The Deer Hunter》(1978)다. 마이클 치미노가 감독하고, 로버트 드 니로(마이클 역)과 크리스토퍼 월켄(닉 역), 메릴 스트립(린다 역), 존 사비지(스티븐 역)가 출연했다. 1979년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음향효과상 등 아카데미상 5개 부문을 수상한 전쟁영화. 2022년 재개봉했다.      


《디어 헌터》는 미국 펜실바니아의 작은 마을에 살던 세 친구들의 베트남전쟁 참전 전후의 삶을 그린 영화다. 180분이 넘는 대작인데, 실제 전투장면은 그다지 많지 않다. 영화는 전쟁이 개인과 공동체의 삶을 어떻게 파괴했는지, 죽은자와 살아남은 자 모두에게 어떤 상처를 남겼는지 증거하고 있다.      



전쟁에서 죽은자와 살아남은 자의 차이는 ‘러시안룰렛’처럼 단지 ‘요행’일 뿐이다. 누군가는 우연히 살아남았고, 다른 누군가는 우연히 죽었다. 그래서인지 작품의 모티브로 쓰인 ‘러시안룰렛’은 볼 때마다 잔인하고 참혹하다. 무작위로 돌아가는 룰렛판처럼, 순식간에 나도 모르게 결정되는 이승과 저승. 목숨의 무작위성. 더 이상 내가 어쩌지 못하는 내 목숨.      


영화는 결혼식으로 시작해 장례식으로 끝난다. 결혼식을 올리자마자 참전해 포로로 잡혔다가 탈출하는 과정에서 다리를 잃은 스티븐, 전쟁의 공포와 참상을 견디지 못해 정신을 놓고 방황하다 러시안룰렛으로 죽은 닉, 두 친구의 부상과 죽음을 코앞에서 목격한 마이클. 이 청춘들을 어찌할 것인가.      



결혼식 날 밤, 사슴 사냥에 진심인 마이클은 사냥 떠나기 전 닉에게 말한다.      


나는 산에서 내 삶이 끝난다 해도 괜찮아. 하지만 명심해.

뭘?

한 방! 두 방은 안 돼.

그게 그렇게 중요해?

중요해. 사슴은 한 방에 보내줘야 해.     


이 ‘한 방’이란 말은 러시안룰렛과 오버랩되면서 묘한 여운을 남긴다. 결국 총구가 머리에 닿는 그 끔찍하고도 서늘한 기억을 털어버리지 못한 닉은 그 ‘한 방’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며 폐인이 되어 간다. “하나같이 다르게 서 있는 나무들”이 좋다던 닉은 나무가 빽빽한 정글의 나라 베트남에서 결국 길을 잃고 정신을 놓는다.      



전쟁 전, 퇴근과 동시에 어울려 춤추고 맥주 마시고 장난치고 사슴 사냥 다니던 친구들. 이들뿐 아니라 마을 전체가 공동체의 끈끈한 유대를 간직하고 있어 보는 사람까지 따뜻하게 만들었는데, 그 평화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청년들이 귀환하며 깨지고 만다. 사슴 사냥을 다녀온 늦은 밤, 잔뜩 취한 채 들른 바에서 한 친구가 피아노를 치자, 모든 사람들이 갑자기 그 소리에 집중하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덩달아 피곤 뒤에 오는 고요한 평화를 만끽한다. 그러나 바로 뒤, 피아노소리가 끊기고 요란한 헬기소리를 앞세워 베트남의 정글을 보여줄 때, 관객은 그때부터 앞으로 펼쳐질 이들의 불안한 운명에 긴장한다.  


베트남에서 돌아온 후 마이클은 다시 사슴 사냥을 간다. 마이클은 저 앞에 우뚝 서 있는 사슴을 쏘았지만 맞추지 못한다. 늘 명사수답게 원샷 원킬하던 그. 마이클은 사슴을 보면서 씁쓸하게 “오케이”라고 말한다. 사슴은 '한 방'에 보내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으니 사슴, 넌 살아남았다는 말인가. 아니면 사슴이든 사람이든 더이상 죽이지 않았으니 다행이란 말인가. 


마이클은 다시 온 산이 떠나가도록 큰소리로 외친다. “오케~~~이~~” 무엇이 괜찮다는 건가. 자신 또한 그 냉혹한 러시안룰렛을 통과해 살아남아서 괜찮다는 건가. 이제는 뭐가 어찌 됐든 상관없다는 건가. 이 영화에서 가장 가슴아픈, 전혀 괜찮지 않은 “오.케.이.” 결국 마이클은 다시 베트남으로 가 닉을 만나고 죽은 닉의 시신을 고향으로 데리고 온다.      



무섭다. 전쟁이 무섭다. 전쟁으로 망가진 인간의 삶이 무섭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영화는 결혼식에서 시작해 장례식으로 끝난다. 어쩌면 우리 인생도 이렇지 않을까. 결.혼.과.죽.음.사.이.에.는.전.쟁. 러시안룰렛처럼 불확실한 하루하루를 살얼음판을 걷듯 아둥바둥 사는 것. 때론 우연한 ‘한 방’에 모든 것이 결정되어 돌이킬 수 없게 되더라도, 아침마다 일어나 전장의 한복판으로 달려나갈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최은영의 소설처럼 전쟁으로 인해 관계는 깨지고, 삶이 부서지고,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았는데, 이제는 누가 떠난 쪽이고, 누가 남져진 쪽인지 영영 알 수 없게 되었다.  ♣          



* 사진 출처 : Daum 영화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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