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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와강 Oct 18. 2024

꿈꾸는 바보들을 위하여

영화 《라라랜드》

며칠 전 지인과 온라인 마켓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었다. 난 두 개의 온라인 마켓을 이용하는데, 그곳 장바구니에 담아놓은 물건들이 늘 7,80개씩이라는 얘기를 하자 지인이 깜짝 놀랐다. 사실 더 많이 이용하는 한 곳에서는 툭하면  “장바구니에 100개 이상의 물건을 넣을 수 없다”는 경고문을 받는다. 하긴 날 잘 아는 사람들이 이런 얘기를 들으면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흠... 도통 물욕이란 없어 보이는데... 왜 저러지!      


미니멀 라이프를 꿈꾸는 내게 온라인 마켓 장바구니 채우기는 어쩌면 욕망의, 꿈의 대리만족일지도 모르겠다. 하나씩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다가 몇 번 들여다보고 하나씩 비워가는 재미. 별 희한한 취미도 다 있다,고 웃어도 된다. 세상엔 이런 요상한 사람도 있는 법이다.      


온라인 마켓 장바구니뿐 아니라, 내 버킷리스트 역시 어마무시하게 많다. 나이가 들수록 왜 이렇게 하고 싶은 게 많아지는지 모르겠다. 그것들을 하나씩 해나갈 생각을 하면 가슴이 열기구처럼 붕붕 떠올라 어쩔 줄을 모르겠다. 리스트를 하나씩 지워나가도 며칠 후면 다시 몇 개씩 리스트가 불어나는 매직. 그런 내게 이 영화는 버킷리스트 추가를 부르는, 혹은 지운 리스트를 복기하게 하는 슈퍼매직 그 자체다. 바로 《라라랜드》.     


영화 《라라랜드 LA LA LAND》(2016)는 데미안 셔젤이 감독하고, 라이언 고슬링(세바스찬 역)과 엠마 스톤(미아 역)이 주연한 뮤지컬 드라마다. 2017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7개 부문(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음악상, 주제가상)을 모두 수상하여 한 작품 최다수상기록을 썼다.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감독상, 여우주연상, 촬영상, 미술상, 주제가상, 음악상 6개 부문을 수상했다. 그밖의 수상기록이 너무 많아 생략한다.      


‘LA LA LAND’는 ‘꿈의 나라’, ‘비현실적인 세계’라는 뜻을 갖고 있다. 특히 영화 TV 산업과 연관지어 로스엔젤레스(LA), 헐리우드, 남캘리포니아를 가리키기도 한단다. 작품의 배경인 LA는 배우를 비롯 뮤지션 지망생들이 몰려드는 도시이고, 작중인물 모두 현실보다는 자신의 꿈을 소중히 여기는 터라, ‘LA LA LAND’라는 제목이 참 적절했다는 생각이다.      



영화는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겨울에서 봄, 여름, 가을을 거쳐 다시 겨울까지. 하긴 1년은 겨울에서 시작하여 겨울에서 끝난다. 시작도 끝도 겨울. 그런 의미에서 영화의 구성은 우리의 한 해, 우리의 인생을 은유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제목에 걸맞게 스토리 라인은 단순하다. 꿈속의 나라, 라라랜드에 사는 두 남녀가 결국 현실에서 그 꿈을 이룬다는 얘기. 그 스토리를 음악과 춤에 녹여낸 뮤지컬이다. 먹고살기 바쁜 세상에서 하고 싶은 것을 찾아나서는 것이 꿈 같은 짓인지, 아니면 현실에서 그 꿈을 이룬 것이 사실은 꿈이라는 건지 알 수 없다. 영화의 씬도 현실과 환상을 넘나든다. 하긴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은가. 현실은 시궁창이라도 순간순간 상상을 통해 판타지를 경험하는 것. 그 상상이야말로 비루한 현실을 버티게 하는 힘인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한번 보면 누구나 잊을 수 없는, 환상적인 군무로 시작한다. 꽉 막혀 거대한 주차장이 된 다리 위 군무 씬은 자유롭고 역동적이며 아름답다.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은 두 남녀가 만나 서로의 꿈을 응원하고, 결국 그 꿈을 이룬다는 스토리는 관객의 판타지를 대신 채워 준다. 너무 지치고 힘들어 자신이 한때 무슨 꿈을 꾸었는지조차 잊고 사는 사람들에게 영화는 그들이 잊은 혹은 폐기한 꿈을 소환해 다시 직시하게 한다.


세바스찬과 미아는 각각 재즈 뮤지션과 배우가 되기 위해 라라랜드에 입성한다. 세바스찬은 음악 특히 재즈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철학이 있다. 그러나 신념은 번번이 현실의 벽에 부딪친다. 사실 신념만으로 먹고 살 수는 없는 법, 셉은 파트타임으로 피아노치는 바에서 징글벨이 아니고 재즈를 쳤다는 이유로 해고당한다.         


미아 역시 대학을 중퇴하고 끊임없이 배우 오디션을 보러 다니지만 번번이 낙방한다. 그런 둘은 서로의 꿈과 열정을 알아보고 사랑에 빠진다. 마치 상대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인 것처럼, 이제 그들은 자신이 아니라 서로를 응원한다.   


- 자기 캐릭터를 직접 써봐요. 자신에 걸맞은 역할을 직접 만들고 허접한 오디션은 쓰레기통에나 버려요. 루이 암스트롱을 봐요. 밴드에서 나팔이나 불며 살 수 있었죠. 그런데 안 그랬어요. 뭘 했을까요?

- 뭘 했는데요?

- 역사를 다시 썼죠.

- 나도 오디션 집어치우고 역사나 다시 쓸래요.      

그러나 미아가 자신의 역사를 쓰기 위해 연극 대본을 쓰는 동안, 셉은 친구의 밴드에 들어가 공연투어를 시작,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한다. 재즈는 손놓은 지 오래. 전국 투어로 미아를 볼 시간조차 없다. 간신히 몇 시간 짬을 내어 집에 온 셉에게 미아는 진지하게 묻는다.


- 왜 클럽 안해? 그동안 번 돈 가지고 클럽을 하란 거지. 재즈에 열정이 크니까 사람들이 올 거야.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열정에 끌리거든. 자신이 잊은 걸 상기시키니까. (중략)

- 어찌 됐든 이제 나도 철들어야지. 고정적인 일도 있고, 이게 이제 나야. 그런 생각이었다면 갑자기 이러지 말고 진작 말을 하지. 망할 계약서 싸인 전에.

- 오랫동안 간직한 꿈이었잖아.

- 지금 이게 내 꿈이야. 연주자들은 이렇게 성공하려고 평생 노력해. 드디어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잖아.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과 내가 좋아하는 것,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택해야 하나? '철든다는 것'은 현실과 타협해 자신이 좋아하는 꿈을 버리는 것과 동의어인가. 물론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것의 고귀함을 무시하는 건 아니다. 살아남아야 꿈도 이룰 수 있는 거니까. 그러니 딜레마다. 어째야 하나. 이들은 결국 서로에게 상처주는 독설을 퍼부으며 이별한다.



몇 년 후, 오랜만에 재회한 그들. 배우로 성공한 미아는 남편과 우연히 들어간 재즈 클럽에서 셉과 조우한다. 미아 부부 앞에서 치는 셉의 '에필로그' 재즈피아노 연주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7분이나 이어지는 그 연주를 들으며 미아는 셉과 춤추는, 아름다운 상상을 한다. 단순히 판타지만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몽환적이고 낭만적인 장면들. 그 상상이 슬프고 아름답고 행복하면서 안쓰러워 긴 여운이 남는다. “지금 이렇게 된 것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시 구절처럼 이미 그들의 삶은 돌이킬 수 없다. 함께 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그들은 각자 자신의 꿈을 이루었기에, 영화는 해피엔딩이다.        

 

별들의 도시여

넌 나만을 위해 반짝이는가? (중략)     

온 하늘을 밝혀주는

눈동자 속의 빛


온 세상을 휘청거리게 할

다정한 목소리

곁에 있어줄 테니 마음놓으란 말     


난 상관 안해

내가 어디로 가고 있든

이 미칠 듯한 느낌만 있으면 돼

쿵쾅거리는 심장

난 이 느낌이 머물러 주길 바라

-〈City of Stars>  중에서      


난 셉과 미아가 '꿈꾸는 바보들'이어서 좋았다. 우리도 모두 꿈꾸는 바보였던 '한때'가 있었을 것이다. '미칠 듯한 느낌'과 '쿵쾅거리는 심장'을 간직하고 사는 사람들, 그 바보들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듣고 싶다면, 이 가을, 영화 《라라랜드》를 추천한다.   ♣




♥ 이 글은 브런치북 ‘룰루시네마’ 마지막 화다. 사실 처음 ‘룰루시네마’를 기획할 때 내가 이렇게 30주 동안 계속 달려올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시작할 때 마음먹은 건 딱 두 가지. 첫째 일단 10회차까지 가본다, 둘째 마지막 영화는 무조건 《라라랜드》다. 5개월 간 한 주도 빠짐없이 달려와 이제 마지막 화 《라라랜드》에 대해 글을 쓰고 나니, 나 혼자 울컥, 잠시 감개무량했다. 잘해쓰!! 내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는다. 애써쓰!!     


2024년 5월 29일, 《밤에 우리 영혼은》으로 첫 화를 개봉한 ‘룰루시네마’는 2024년 10월 18일, 《라라랜드》를 마지막으로 종영합니다.


그동안 누추한 이곳을 방문해 큰 관심과 사랑을 보내주신 독자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특히 제 브런치를 구독해 주신 구독자분들께는 더 깊은 감사인사 드립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당신들이 곁에 있어 설레고 행복했습니다. 건강하세요!      


♥ 아직 확실치는 않지만 다음 브런치북은 소설이나 영화 속, 인상적인 문장이나 대사 하나를 뽑아 그 문장에 얽힌 얘기를 에세이로 풀어내는 ‘매혹의 문장들’(가제)로 기획하고 있습니다. 정리되면 그때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꾸벅!     




* 사진 출처 : Daum 영화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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