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영화 영화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Nyad, 2023)를 보았다. 엘리자베스 차이 베서헬리와 지미 친이 감독한 미국의 스포츠 전기영화다. 영화는 젊은 시절 마라톤 수영 세계 챔피언이었던 다이애나 나이애드가 64세에 쿠바에서 플로리다까지, 수영으로 종단에 성공한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사실 이 영화는 앞부분 5분만 봐도, 아니 제목만 봐도 전체의 줄거리를 쉽게 가늠할 수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보통의 스포츠 영화처럼 주인공이 갖은 역경을 이겨내고 결국은 꿈을 이룬다는 얘기, 한국어 번역 제목이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니 중간에 4번의 실패가 있었겠군. 물론 그걸 아주 늦은 나이에 도전했고 해냈다는 게 다른 점일 뿐.
그런 뻔한 스토리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끝까지 이 영화를 본 이유는 단 하나, 주연이 아네트 베닝과 조디 포스터였기 때문이다. 아네트 베닝이 1958년생, 조디 포스터가 1962년생으로 2024년 현재, 둘 다 60세가 넘었다. 그러나 난 그들의 젊은날을 기억한다. <러브 어페어>와 <대통령의 연인>에서 보여준 아네트 베닝의 귀엽고 우아한 미소, <양들의 침묵>에서 보여준 조디 포스터의 단단하고 지적인 표정. 어릴적 만났던 사람은 오랜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어 만나도 그 얼굴에서 어린시절 모습을 찾아낼 수 있듯이, 그들의 얼굴엔 시간이 흔적이 새겨져 반갑고도 아련했다.
특히 아네트 베닝은 포기를 모르는, 고집스럽고 강인한 수영 선수 캐릭터를 잘 소화해 냈다. 얼굴과 목의 주름은 물론 옆구리의 군살까지 그대로 화면에 잡혔고 목소리마저 남성 톤처럼 걸걸하게 변했는데도 화면 속 그녀에겐 세상의 눈길에 아랑곳하지 않는 당당함이 있었다. 나이애드의 수영 코치를 맡은 조디 포스터 역시 마찬가지다. 지적이면서도 다부진 이미지. 그녀의 얼굴은, 아역부터 시작한 그녀의 오랜 필모그래피들을 주마등처럼 떠올리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그들은 늙음조차 사랑스럽다. 아니 늙으면 늙은 대로, 그대로 자연스럽게 보여준 그 자신감이 사랑스럽다.
나이애드는 28세에 실패한 쿠바에서 플로리다까지의 마라톤 수영 종단 프로젝트를 61세에 다시 도전했다가 4번이나 계속 실패하고 결국 64세에 성공한다. 세상에, 177km를 52시간 54분 동안 수영했단다. 수영을 못하는 나로서는 1분도 물에 떠있기 어려운데 만 이틀 하고도 5시간 정도를 물 위에 떠 파도에 맞섰다니 감히 상상도 가지 않는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대단한 기록이다. 실화의 주인공 나이애드는 물론 그 역을 해낸 아네트 베닝도 참 멋지다.
이 영화를 본 이유 한 가지를 더 꼽자면 음악이다. 영화 초반 60세의 나이애드가 다시 수영을 시작할 때 흐르던 BGM이 사이먼&가펑클의 <The Sound of Silence>. 그 노래 위에 나이애드의 어린시절부터 성장하는 모습이 쭉 흘러간다. 후반부 나이애드의 마지막 도전 때는 닐 영의<Heart of Gold>가 깔린다. 나도 나이가 들었나. 이순을 넘긴 두 배우에 혹해서 영화를 보기 시작하더니 영화에 깔린 오래된 팝송에 또 마음을 빼앗긴다. 뭐 어떤 이유에서든 난 이 영화를 봤고, 보고 나니 내게 온 이 '나이듦'을 좀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감동을 줄 작정으로 만든 영화라서 그런지 영화에는 게으른 우리의 엉덩이를 일으키고 무언가 다시 시작하게 하려는 대사들이 꽤 많다.
“세상이 정해주는 한계 따위 안 믿어.”
“우리가 가슴이 뛸 기회가 얼마나 있겠어요?”
“절대로 포기하지 마.”
“꿈을 좇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
“수영은 고독한 스포츠 같지만 팀이 필요하다.”
나이애드가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젊은 사람들이 가진 그 흔한 ‘다음 기회’가 그녀에겐 없기 때문이 아닐까. 돌아갈 곳이 없고, 더 이상의 기회가 없기에 그녀는 절박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고, 그 의지가 결국은 체력을 이기고 불가능한 꿈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인간 승리! 결국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감동스토리, 배우들의 명연기와 대사들이, 특별한 미장센 없이 화면 가득 출렁이는 파도만 가득했던 이 영화를 끝까지 보게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는 꿈이 있고, 그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응원이 될 것이다. 특히 나이들었다는 이유로 새로운 것 시작하기를 망설이거나 주저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신선한 자극이 될 것이다. 내가 사랑한, 사랑하는 두 배우처럼 나 또한 글 쓰면서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늙어갔으면 좋겠다. “꿈을 좇기에 늦은 나이는 없”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