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가람의 〈나는 반딧불〉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요즘 황가람의 노래 〈나는 반딧불〉(정중식 작사, 작곡)이 유행이다. 〈나는 반딧불〉은 '밴드 중식이'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노래다. 지난해 10월에 발매한 이 음반은 4개월이 지난 현재(2025.2.13)까지 FLO(플로) 24시간 차트에서 1위, 한터 차트 2위, 멜론 TOP100 3위를 비롯, 주요 음원 차트 최상위권에 올라 있다.
대중가요는 당대 사람들의 정서와 삶의 애환을 담고 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에 환호하는 데에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감성적인 보컬과 심플하면서도 섬세한 리듬, 어쿠스틱 기타의 선율, 거기에다 황가람의 파란만장한 인생사가 여러 미디어를 통해 알려지며 그의 삶에 대한 응원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 노래의 흥행을 견인한 최고의 힘은 바로 노랫말이 아닌가 싶다.
우연히 미디어에서 본 가수의 삶에 공감하고 그를 응원하기 위해 노래를 들었는데, 거참 이상하지, 갑자기 노랫말이 모두 내 삶으로 환치된다. 첫소절부터 노래 속 '나'는 바로 현실의 '나 자신'이 되어버리고, 노래에 담긴 스토리는 부르는 자가 아니라 듣는 자의 것이 된다. 이 노래는 누군가 내 삶을 들여다보고 지친 날 응원하고 위로하기 위해 지은 게 틀림없다. 이러니 이 노래를 '전국민 위로송'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겠나.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나도 한때 내가 '별'인 줄 알았다. 한번도 의심한 적 없이. 그러나 살다 보면 내가 지극히 평범하다는 걸, 아니 그 평범한 인생도 죽을 힘을 다해야 겨우 얻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살면 살수록 꿈의 크기는 작아진다. 끝내 자신이 '별'은커녕 하찮은 '벌레'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 때도 있었다.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분명 촌각을 다투며 아둥바둥 살아온 것 같은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쳇바퀴도는 듯한 공허한 느낌.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냉정하게 내 삶을 상대평가하면 그닥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나는 더이상 '별'도 아니고, 내 삶은 '우주'로 뻗어나가지도 못했다. 난 그저 하찮은 벌레로 지상의 어느 누추한 습지에 잠시 머무르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괜찮아 나는 눈부시니까
이 노래가 환대받는 이유는 바로 이 대목 때문이다. 자신의 실체를 마주한 사람이 자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살다 보면 생각처럼 일이 잘 안 풀릴 때도 있고,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에 부딪칠 때도 있다. 내 능력은 남들보다 특출나지 않고, 결과는 내가 투자한 시간과 노력을 배반한다. 그런데도 세상은 늘 결과로만 사람을 평가한다. 그럴 때 난 하찮은 벌레가 되고 만다. 난 내가 우주를 유영하는 '별'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하천과 습지에 사는 '반딧불'이라니, 이런 스스로를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괜찮아. 나는 눈부시니까." 그래, 난 반딧불, 개똥벌레다. 내가 벌레라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고, 드디어 난 내 정체성을 확인했다. 내가 누구인지 똑똑히 아는 것, 그건 정말 중요하다.
난 반딧불, 내 안에 환한 빛을 간직한 존재, 그 누구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스스로 발광하는 존재다. 깨끗한 하천에서 홀로 까만 밤을 밝히는, 아름다운 존재, 그게 바로 '나'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내 안에 긍정적인 면을 발견하고 그것을 드러내는 일, 그건 미래로 새롭게 한 발을 내딛는 일이다. 그래서 낙관은 살아있다는, 살고 싶다는 가장 강렬한 증거다.
이제 나는 내가 '별'이든 '반딧불'이든 상관없다. 그 무엇이든 난 빛나는 존재니까.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내 인생에 가장 빛나는 존재인 것처럼, 나 역시 그들에게 빛나는 존재일 테니까. 세상의 상대평가 따위, 내게는 가치도 의미도 없다. 나의 절대평가만이 중요하다. 내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다면 그걸로 족하다. 난 아직 스스로 빛나고, 난 아직 눈부시다. 그럼 됐다. 그걸로 충분하다! ♣
https://youtu.be/x9Jz2OueIGY?si=TdQxwjncjyLAQSNh
사진 출처 :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