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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이 사랑이 아니라면 난 한 번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

by 바다와강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2019)은 〈재희〉, 〈우럭 한 점 우주의 맛〉, 〈대도시의 사랑법〉, 〈늦은 우기의 바캉스〉등 4편의 중단편소설을 묶은 연작소설집이다. 이 소설은 작년에 영화(넷플릭스, 2024.10.1)와 드라마(티빙, 2024.10.21)로 각색되어 개봉되었다. 하나의 소설이 비슷한 시기에 영화, 드라마로 동시 개봉되는 일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영화와 드라마가 이 소설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아마도 이 작품이 2022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과 2023년 국제 더블린 문학상 후보에 오르면서 작품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일 게다.


이 연작소설은 퀴어청년 '영'이 겪은 청춘의 기록, 작가의 말을 빌리면 "20대 탐구보고서"이다. 영화는 4편의 연작 중 〈재희〉를 기반으로 만들었고, 드라마는 4편의 소설을 4명의 감독이 2부씩 나누어 맡아 총 8부작으로 만들었다. 드라마는 박상영 작가가 직접 극본 집필에 참여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네가 너인 게 네 약점이 될 순 없어.

"사람들은 원래 그래.
자기랑 다르면 그걸 열등하다고 생각해야 마음이 편하거든. 그거야말로 열등감인 줄은 모르고."

"왜 사소한 거에 목숨 거냐고 하지 마시고, 좀! 그냥 쟤한테는 그게 목숨 같나 보다 하시면 안 돼요?"


영화는 2시간이라는 시간적 제약 때문인지 '대중성'을 고려해서인지 〈재희〉만을 다루었다. 영화는 성적 취향이 다른 것 빼고는 쿵짝이 잘 맞는 두 청춘남녀의 삶과 사랑 이야기로, 재미있게 후르륵 볼 수 있다. 사실 영화라는 대중적 미디어에 호불호가 뚜렷한 '퀴어'를 소재로 다루는 건 일종의 모험이자 도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두 배우(김고은, 노상현)의 호연과 공감할 만한 명대사들 때문에 불편하지 않게 감상할 수 있었다. 더불어 단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거나 배제하지 말자는 메시지까지 자연스럽게 읽어낼 수 있어 좋았다.


그런가 하면 드라마는 '영'이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춰 그의 사랑과 이별을 다룬 성장스토리다. 4명의 감독이 만든 옴니버스 형식이기 때문에 작품마다 조금씩 결이 다르긴 하지만, 남윤수의 열연과 원작이 중심을 잡아준 덕에 스토리의 흐름이 어색하진 않다. 오히려 작가가 극본 작업을 같이해서 그런지, 드라마가 영화보다 더 '소설적'이었다. 소설을 영상으로 읽는 느낌.


집착이 사랑이 아니라면 난 한 번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


이제 소설로 들어가 보자. 위의 문장은 첫번째 연작소설인 〈재희〉(p.55)에 실렸다. 이 대사는 영화와 드라마에도 빼놓지 않고 들어가 있다. 나 또한 3년 전, 이 소설집을 읽은 후 일기장에 이 구절을 메모해 놓았다.


'집착'이 사랑이라니! 난 한번도 집착과 사랑을 함께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사랑과 집착은 층위가 다른 것 아닌가. 층위? 사실 감정에 고저와 강약이 있을 수 있지만, 감정에 층위를 나눌 수 있나... 그런데 생각해 보면 집착이 사랑인지는 모르겠으나, 사랑은 집착, 맞는 것 같다.
박상영의 뛰어난 심리 묘사에 놀란다. 미묘한, 움직이는, 요동치는 마음을 어떻게 저렇게 한 문장으로 붙잡아 쓰는 건지. 놀랍다. 문장력 하나는 인정한다.


사실 당시 일기에는, 이 소설에 대해 이보다 더 길게, 한 바닥이 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러고 보니 소설이 꽤 마음에 들었던 듯하다. (요즘은 소설을 읽고도 메모만 할 뿐 제대로 기록해 놓지 않는다. 그때의 난 참 성실했네.)


일기장에서 위의 구절을 읽은 후 '집착'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았다.


집착(執着) : 어떤 것에 늘 마음이 쏠려 잊지 못하고 매달림.


執着, 잡을 집(執)에 붙을 착(着). 집착은 움켜잡고, 꼭 붙어 있다는 뜻이다. 사전적 풀이를 보면 집착을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자꾸 눈길이 가고, 마음이 가고, 놓지 못하고, 잊지 못하고, 매달리는 것. 사실 그게 사랑 아닌가.


지난날 일기에 집착은 사랑이 아니지만, 사랑은 집착이라고 써놓았다. 그런데 사실 뭐가 다른가. 다시 읽어 보니 지극히 추상적이고 공허한 문장이었다. 사실 난 무엇이든, 어떤 사람이든 집요하게 매달리지 못한다. 누구든 오면 오나보다, 가면 가나보다 한다. 그러기에 '집착'이라는 단어 자체에 모종의 거부감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작품을 좀더 보면, 적어도 이 작품에서만큼은 집착이 사랑이라는 걸 알게 된다. 이 소설의 마지막 에피소드인 〈늦은 우기의 바캉스〉에는 이런 문장들이 있다.


때때로 그는 내게 있어서 사랑과 동의어이기도 하다.
내게 규호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규호의 실체에 대해 말하는 것은
사랑의 존재와 실체에 대해 증명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는 풍등에 쓸 문장을 여러번 고쳐 썼다. 다이어트, 주택청약 당첨, 포르세 카이엔, 첫 책 대박 나게 해주세요…… 뭔가 다 내 진짜 소원이 아닌 것 같아 빗금을 쳐서 지워버렸다. 아마도 그러는 사이 구멍이 나버린 것이겠지.
나는 결국 풍등에 두 글자만을 남겼다.
규호.
그게 내 소원이었다.(p.309)


상대를 얼마나 사랑해야 그의 존재 증명이 곧 사랑의 존재 증명이라고 말할 수 있나. 대체 얼마나 사랑해야 '그'가 내 '소원'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난 이토록 강렬한 사랑의 고백을 해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다.


바로 이것이, 이 소설이 사랑받는 이유이리라. 퀴어든 아니든 자신의 감정을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진심을 다해 사랑하는 인물, '영'이라는 캐릭터 때문일 게다. 따라서 이 소설 앞에 굳이 '퀴어'라는 수식어를 붙일 필요가 없다. 이건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 청춘의 아릿한 사랑 얘기다. 소설과 영화, 드라마에는 가슴이 뜨거워 어쩔 줄 모르는 청춘들이 사랑하고, 질투하고, 서성이고, 괴로워하고, 방황한다. 그 여러 갈래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랑의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서로가 열렬히 좋아하는 그 순정한 마음을 주고받는다.


한번만, 딱 한 번만 말할 거니까 잘 들어.
너 좋아해.
니가 남자건 외계인이건 이제 상관 안해.


2007년, MBC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커피 프린스 1호점》에 나온 대사다. "너 좋아해. 니가 남자건 외계인이건 이제 상관 안해." 이런 게 사랑이 아닐까. 상대에 대한 마음이 차올라 더이상 감출 수 없는 포화상태. 자꾸 '어떤 것에 마음이 쏠려 잊지 못하고 매달리'는 것, 집.착.이다. 사랑은 집착이고, 누군가에게 집착은 곧 사랑이다.





* 《대도시의 사랑법》사진 출처 : Daum 영화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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