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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작 Apr 16. 2024

아침 방송의 오프닝 멘트를 쓴다는 것

빈문서 앞에서 지새운 숱한 밤에 대하여...

  2008년 5월에 처음으로 라디오작가 일을 시작해 어느새 곧 만16년이 된다. 햇수로 17년째 라디오작가라는 직업을 유지해오는 동안 가장 오랜 기간 맡았던 프로그램이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방송이었다. 이 시간대의 라디오프로그램이라면, 방송 채널마다 장르는 달라도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바는 아마 비슷할 것이다. 활기차게 하루를 열게 해주는 출근 시간대 길동무의 역할. 어제 무슨 일이 있었든 오늘은 오늘의 해가 떠오르는 법이니, 아침 프로그램의 오프닝 멘트는 대부분 새롭게 시작되는 하루에 포커스를 맞춰 가능하면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할 수 있으면 되었다. 아침 7시 이전에 전 국민의 이목을 끌 만한 커다란 사건이 일어나는 일은 거의 없으니, 세상 이슈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미리 써둬도 무리가 없었다는 뜻이다. (물론 시사와 뉴스를 전하는 채널이었다면 달랐겠지만)

  하지만 예외적인 날이 가끔 있었는데,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국제 스포츠 대회가 열릴 때였다. 특히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리는 경기가 새벽에 열리는 날은 그 경기 결과에 따라 아침 방송의 오프닝 멘트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꼭 그래야만 한다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고, 그냥 전혀 다른 주제로 오프닝을 쓰면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미리 써둘 수도 있었겠지만, 그건 왠지 내키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모두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뻔히 알면서 그와 다른 이야기를 꺼낸다는 게 스스로 용납이 안 되던 시절. 한마디로 내가 젊고 혈기왕성했던 시절이다. 지금은 새벽에 열리는 스포츠경기를 일단 나부터가 안 보고 자는 때가 더 많아져서... 모든 국민의 관심이 오직 그 경기에만 쏠려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게 얼마나 편협한 자기중심적 사고였는지 깨닫게 되었지만 말이다.

  뭐 어쨌거나 그 시절 내 시야는 편협고 혈기는 왕성해서 국가의 자존심이 걸린(?) 스포츠경기를 지켜보지 않고 잠을 잔다거나, 그와 상관없는 다른 이야기로 아침 방송을 연다는 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몇 번쯤은 오프닝을 두 가지 버전으로 써놓고 경기를 본 적도 있었다. 이겼을 경우의 버전과 지거나 비겼을 경우의 버전.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어차피 세세한 경기의 흐름까지 반영한 디테일한 멘트는 미리 쓸 수가 없고, 큰 흐름에서 분위기에 어긋나지 않을 정도로만 에둘러 말할 수밖에 없는데도, 굳이 두 가지 다른 버전을 쓰는 수고를 감내해가며 그 주제를 써야만 했던.. 참 고집스러운 젊음이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두 가지 버전을 준비해두면 어떤 결과가 나오든 무리 없이 넘어갈 수 있었는데, 딱 한 번 그게 안 돼서 결국 오프닝을 다시 쓴 날이 있었다. 그건 바로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김연아 선수의 프리스케이팅 경기가 있던 날이었다. 당시에 내 예상 시나리오는 딱 두 가지였다. (1)연아 선수가 클린하게 연기를 마치고 금메달을 딴다.(혹은 살짝 실수하더라도 넘사벽의 실력으로 어쨌거나 금메달을 딴다.)/ (2)연아 선수가 안타까운 실수로 아쉽게도 금메달을 놓친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당시 피겨를 관심 있게 지켜보던 세계인 모두가 이 두 가지 범주 안에서만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았을까? 연아 선수가 완벽하게 연기를 마쳤음에도 금메달을 빼앗긴다는 말도 안 되는 결말은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 역시 앞서 예측한 두 가지 시나리오 중 어떤 것에 적용해도 무리가 없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한 자의 아름다운 마무리에 관한 이야기로 오프닝을 써뒀었다. 그리고 그 새벽,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어떻게든 방송용 언어로 순화시켜가며 오프닝을 다시 쓸 수밖에 없었다. 억울함에 잠을 못 이뤘을 모두의 마음을 시원하게 공감해주면서도 과격한 분노 대신 성숙한 위로의 말로 다독일 수 있으려면 대체 뭐라고 써야 하는 건가... 이런 엄청난 고뇌로 그 새벽을 하얗게 지새운 기억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보다 더한 고뇌의 밤들이 얼마 후에 찾아오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누군들 상상했을까. 2014년 4월 이후의 그 무기력했던 나날들을. 방송작가라는 직업이 가장 힘들었을 때를 꼽으라면 지금까지도 2014년 4월이 단연 최고봉이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현실이라고 믿고 싶지 않은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버렸고, 그때야말로 온 국민의 관심이 한곳에 집중돼 있었다. 진도 팽목항 앞바다. 그곳에서 혹시라도 생존자 구조 소식이 들려오지 않을까 포털사이트를 새로고침할 때마다, 새롭게 뜨는 기사는 기다리던 소식이 아니라 온통 가슴 아픈 사연들뿐이었다. 도저히 희망을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래도 아침부터 절망을 이야기할 순 없었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아예 다른 이야기를 하는 건 또 내 젊음이 용납을 못 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한 글자도 쓰지 못한 빈문서 앞에서 매일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방송 시간이 다가온다는 압박감을 유일한 동력 삼아 어떻게든 무슨 말이든 써내야만 했던 그 새벽의 시간들. 무슨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고, 어떤 말을 해도 의미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무슨 말이든 해야만 하는 ‘방송’이라는 매체가 그렇게 무용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그 무용한 매체를 위해 아무런 힘도 없고 의미도 없는 말들을 쥐어 짜내야 하는 내 직업은 또 얼마나 부질없는가. 매일 밤을 새우면서도 내가 하는 일에 회의가 들던, 참으로 무기력한 나날들이었다.

  그런데 그게 벌써 10년 전의 일이 되었다니... 당시엔 멈춰 버린 것만 같던 시간은 잘도 흘러갔고, 도저히 무뎌질 수 없을 줄 알았던 달력 위 그 숫자는 벌써 10번째 아무렇지 않게 꽃피는 봄날을 데리고 우리 앞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 우리에겐 코로나라는 거대한 시련도 있었고, 또 각자의 세월을 견디며 이만큼 늙어오느라 생각보다 더 빨리 그날을 잊고 무덤덤해지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물론 무뎌지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가 없으니까. 10년 전 그때처럼 마음이 힘든 시간을 다시 견디라고 하면 10년 늙어진 이 몸뚱이로는 도저히 못 할 짓이니까. 시간이 모든 걸 무뎌지고 잊히게 만드는 건 분명 인간의 노화를 고려해 신께서 한 세트로 구성해주신 선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10년이라는 상징적인 숫자가 우리 마음을 멈칫, 불러세우고 돌아보게 하는 오늘이다. 강산도 변하게 한다는 세월이 흐를 동안 우리의 대한민국은 얼마나 달라졌느냐고...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에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변화시키겠노라 마음으로 굳게 했던 약속들. 혹시 그 약속들만 먼저 변해버린 건 아니냐고... 10년 전 그날로부터 더 이상 나이를 먹지 못하는 그 아이들이, 꾸역꾸역 나이만 먹어버린 에게 어디에선가 묻고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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