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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 뚱이 Nov 25. 2024

가을아,  조금만 더 천천히 가자




천천히 걸으며 하늘을 보았다. 참 깨끗하다.

그리고  그 아래 펼쳐진 노랑이 빨강이 초록이 고동이들의 어우러짐에 마음을 빼앗긴 채 가던 걸음을 멈추고 한 참을 바라본다.

" 아! 가을아 조금만 더 천천히 가라. "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있다.

이 예쁜 가을을 떠나보내야 한다니....

24년 가을처럼 잔잔하고 여유로운 단풍이 고운 가을을 만난 적이 있었던가? 싶다.

늘 바쁜 일상에 치어 허리 한 번 펼 때  겨우 고개 돌려 창 너머 맞은편 가로수를 바라보며 예쁘다던 단풍과 아름답다던 노을의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단풍잎 사이로 파고든 햇살을 담으려 이리저리  손목을 돌리다 한아름 담고서야 또 발길을 옮긴다.

바스락바스락.

이 소리를 귀담아 들었던 게 언제였지?

대학 다닐 때 가을 낙엽 밟는 나를 보고 말을 건네오던 선배 생각이 난다.

낙엽을 너무 세게 밟는 게 아니냐며 놀리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너무 좋아서 낙엽을 발로 차듯 걸었던 나에게 무심히 던진 한 마디에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던 생각이 지금도 잊히질 않는다.

바닥에 쌓인 낙엽들은 많은 반면 나무들은  점점 굽은 제 몸을 드러내고 있다.

화려한 옷을 벗은 것일까?

힘들게 어깨에 팔과 다리에 등에 지고 있던 잎들을 내려놓은 것일까?

홀가분해 보이기도 하고 쓸쓸해 보이는 건 왜일까?

우리네 살아가는 모습과도 너무나 닮은 꼴이 아닌가?



아쉬움 가득한 발걸음 끝 저 멀리에 검은 물체 하나가 보인다.

'뭐지? '

좀 더 가까이 다가가니 고양이 한 마리가 나를 보고 있는지 돌아 앉아 있는지  겨우 형체만 보인다. 

쉬 고있는듯하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 그늘진 낙엽 위에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겨우 자리 잡았을 텐데 나 때문에 쉼터를  떠나야 하나 해서 내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가능하면 낙엽이 없는 곳을 밟으며 천천히 걸어서 그 옆을 지나간다.

녀석이 멀리에서 걸어오던 나를 지켜보고 있었나 보다.

' 나를 헤칠까? 아닐까?  아님 먹을 거라도 주고 갈까?'

저 아이의 머리도 복잡했을 것  같다.

주머니에 손을 푹 집어넣고 더듬었다.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혹시나 했지만 역시 빈 주머니였다.

저 아이는 외롭지 않을까?

씁쓸한 기분을 달래며 걸었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까지 가을이 완연하다.

일부러 아파트 뒷길을 택해서 조금 더 걸었다.

언제까지 느낄 수 있을까?

언제까지 이 길들을 기억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보지 않은 척 집으로 들어와 책상 앞에 앉았다.



가을은 떠나는데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 채 방관자가 되어있다.

어쩌면 모두가 그렇게 외면하고 있다.

떠나는 가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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