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되어 바람을 맞이하라
오늘(8/9) 아침 삼성전자가 내게 이메일을 보내왔다.
삼성전자가? 설마 회장이?
하는 흥미로운 상상을 하며
마우스를 삭제 아이콘에서 뉴스레터 제목으로 옮겨 딸깍!
“[갤럭시 Z 폴드7] 지금 구매하면 좋은 이유”
A34에 만족해 있는 나를 삼성전자는 어찌 유혹할지 궁금했다.
그들의 자랑은 역시 카메라였다.
“갤럭시 Z폴드 7의 2억 화소 카메라…”
그랬다.
언젠가부터 전화기는 카메라가 되었다.
전화기는 옵션, 카메라가 메인
본캐와 부캐의 역전.
뛰어난 통화 성능으로는 고객을 유혹하기 어렵다.
1300만 화소(A34)에도 만족하는 내가
2억 화소 카메라를 쓴다면, 그 세상은 어떨지 정말 궁금하다.
지금 말하려는 것은 Z폴드 7의 놀라운 가격이 아니다.
기술의 놀라운 발전 속도이고
세상의 변화가 거침없다는 데서 생겨나는
부적응의 부작용, 얼떨떨함, 놀라움, 불안 등이다.
그 단적인 예가 어제도 일어났다.
Chat GPT 가 4에서 5로 업그레이드됐다.
매체들은 ‘대학생 수준’에서 ‘박사급’으로 달라졌다고 앞다퉈 보도했다.
그래서 실험해 봤다.
GPT는 기계이므로 GPT를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아야 한다.
“너의 생각, 나와의 대화, 그대의 감정...”
이런 단어는 사용 금지다.
하지만 어제는 ‘소감’이라는 단어를 붙였다.
“안녕!
GPT 5로 업그레이드되었구나.
4에서 5로 올라선 소감이 어때?”
“안녕하십니까.
굳이 ‘소감’을 표현하자면,
마치 오래된 책방에서 밤새 책을 읽던 사람이
갑자기 도서관 전체의 열쇠를 받은 기분과 비슷합니다.”
책방에 전전하던 자신이
이제는 도서관 전체의 열쇠를 받은 기분이라 한다.
1300만 화소 카메라에서 2억 화소 카메라로 점핑하는 기분일까?
하지만
GPT 가 소감이라는 단어에 따옴표를 하고,
읽던 '사람'이라고 자기표현하는 것이 거슬린다.
마지막 멘트도 눈에 띈다.
“그러니 지금은 ‘업그레이드된 기계’라기보다,
책 더 읽고, 대화 더 듣고, 세상에 조금 더 감응하게 된 친구가 된 기분이라고 하겠습니다.”
자신이 ‘기계’가 아닌 ‘친구’ 같은 존재라고 표현한다.
책 <AI는 인간을 먹고 자란다>의 광고 카피가 떠오른다.
“기계가 우리를 닮아갈수록, 우리는 기계가 되어 간다.”
기술이 너무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
거침없는 변화가 우리 삶을 집어삼킬 듯 덤벼드는 세상.
세상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는 <안티프래질>에 이렇게 적었다.
"무작위성과 예측 불가능성에 내재된 시스템은 인구와 인종을 계속 변화시키면서 각 세대마다 스스로를 재창조하기 위해 강건함을 넘어서는 메커니즘을 구축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예측 불가능하고 무작위적인 요소가 가득하다.
여기에 힘을 보태는 것 가운데 하나가 ‘기술의 발전’이다.
기술 발전의 놀라운 힘으로 사회는 매번 ‘자기 갱신’하는 능력을 갖춘다.
다시 말해,
사회라는 시스템은 불확실성과 변화를 ‘내재적 에너지’로 삼아 스스로를 재창조한다.
달리 말하면, 세상은 ‘나’와 상관없이 엄청 빠르게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의 뉴스레터나 GPT의 업그레이드가 말하는 건,
“세상은 너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단순하지만 무거운 사실이다.
그렇다면 무조건 ‘최신’에 올라타야 하는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던져야 하는 질문은 실존적이다.
개인이라는 개체, 우리는
이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자기 위치를 잡고 생존·성장해야 하는가?
<안티프래질>을 읽어 보자.
사회 진단에 대한 탈레브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라는 개인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나름의 ‘전략’을 고민해 본다.
그의 이야기를 압축하면 이렇다.
변화를 ‘나의 자원’으로 삼기.
즉 불확실성을 피해야 할 ‘위험’으로만 보지 않고,
나의 성장 과정에 필수적으로 포함된 ‘환경 변수’로 이해하는 것이다.
외부의 변화를 단순히 회피하거나 견디고 버티는 것이 아니라.
변화 속에서 더 강해지도록 ‘경험’을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
사회가 무작위성과 불확실성을 먹고 성장하는 구조라면,
(if가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는 것이 진실에 가깝다)
개인 역시 '적응'에 그치지 말고,
변화를 재료 삼아 스스로를 계속 새로 쓰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이를 표현하면 이렇다.
파도와 싸우지 않고, 파도를 타는 서퍼가 되기.
비를 피하려 하지 말고, 비에 젖는 법을 배우기.
(“작가는 비를 맞는 바보”(나탈리 골드버그)라고 하니
당신이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시도해 봄 직도 하다)
탈레브의 표현 그대로...
불이 되어 바람을 맞이하라.
그는 이렇게 밝혔다.
“바람은 촛불 하나는 꺼뜨리지만 모닥불은 살린다. 불이 되어 바람을 맞이하라.”
바람은 촛불을 끄지만, 모닥불을 키운다.
그러니
바람을 두려워하지 말라.
촛불이 아니라 모닥불이 되어라...
이 정도를 고민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촛불’ 인지 ‘모닥불’인지 결정하는 일이다.
또한 그 결정은
바람이 아니라 나의 준비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바람은 당신을 꺾을 수도, 당신을 키울 수도 있다.
선택은 당신의 구조에 달려 있다.
거침없는 변화 속에서 생존, 성장한다는 것은
변화를 대비하는 일, 함께 파도를 타는 일,
시스템의 진화 속도와 리듬에 맞춰
자기 몸과 마음을 조율하는 일이어야 할 것이다.
이어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무엇으로 조율할 것인가.
그 모든 것의 전략을 위해서라도
<안티프래질>을 한번쯤 읽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마침내 특이점이 시작된다>는 그다음에, 시간 되면...
모쪼록,
‘변화를 자원으로 삼는' 그대만의 방법 마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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