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젠가부터 여럿보다는 혼자가 편했다.
여럿은 즐겁고, 힘이 나고, 믿음직했다.
그렇게 어울리며 왁자지껄 둥둥 떠서 보냈다.
그러다 혼자 쪽으로 마음의 무게가 쏠렸다.
이제는 여럿을 잘게 쪼개어 그 가운데 몇몇만 골라냈다.
지나치게 내 중심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건 아닌지 검열도 해봤다.
물론, 위험한 선택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제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외골수처럼 보일지라도 나는 내 방식으로 고집스럽게 살기로 했다.
이런 삶을 이런저런 전문가들이 앞다투어 우려한다.
어느 정도 나이들은 사람들이 마주하는 삶의 코스라고.
고립은 아주 위험한 것이라고.
고립이라고?
난 고립도, 외로움도 아닌 고독을 택했을 뿐이다.
그러니 그러거나 말거나다.
그런 말들은 그저 그런 그들의 생각이다.
일반화시킨 잣대로 내 섬세하고 촘촘하고 연약한 삶에 함부로 적용하지 않을 작정이다.
언제 어디서나 나는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
나에 대한 나의 사랑은 모두를 위한 사랑이 아니다.
내 사랑이 닿을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사랑이다.
그들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며, 그렇게 “속 좁게 깊이 오래” 살아가는 것.
내가 추구하는 삶이다.
#
다시 한번 더, 검열해 봤다.
내 중심으로 편의적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건 아닌가?
아니다.
세상 모든 음식을 다 먹을 수 없다.
세상 모든 노래를 다 들을 수 없다.
세상 모든 배우들을 다 좋아할 수 없다.
세상 모든 축구 선수를 다 좋아할 수 없다.
(축구 선수들 외에도 배드민턴 선수, 탁구 선수도 있다)
결국,
내 삶의 범위로 한정하면 좀 더 분명해진다.
세상 모든 책을 다 좋아할 수 없다.
나는 헤아리기 어려운 책들의 바다에서
읽고 싶은 몇 권, 아니 몇 명의 ‘저자’만 골라낸다.
헤르만 헤세의 생각도 같다.
헤세는 너무 많은 책을 읽지 말라며 이를 이렇게 묘사한다.
"(책을 많이 읽는 것은)
마치 어떤 미련한 환자가 약국에는 좋은 약이 많다면서
칸칸마다 뒤져 온갖 약들을 돌아가며 다 먹어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모든 책을 읽을 수 없다.
모두를 사랑할 수 없다.
#
이제까지의 글은 마치
여럿이 아닌 몇몇으로 살아가는 법,
혼자로 살아가는 법에 대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결국,
강조하는 말은 ‘혼자’라는 것이다.
그 ‘혼자’의 상태를 즐긴다는 생각을 이야기하다 보니
이야기가 옆으로 미끄러졌다.
글쓰기는 #미끄러지기 이니까.
그 ‘혼자’는
고립도 외로움도 아니라는 생각을
이번 브런치 연재의 주제로 삼았다.
나는 서해랑길 지킴이 활동을 거의 혼자 나간다.
혼자 밥 먹고, 혼자 길을 찾고, 혼자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 혼자의 힘, 그리고 고독의 힘을 즐기는 이유를 연재에 담았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도 같지 않을까?
혼자 있을 때,
고독을 택했을 때,
지치고 힘이 들 때…
오직 “나만이 나를 바라보는 시간”에
내 안에는 무엇이 피어날까?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까?
분명, 여러분에게도 그 순간이 있을 것이다.
#
헤르만 헤세를 꺼냈으니
뮐러와 마이어의 책 읽기 이야기를 계속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