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우리 동네의 아침 풍경

by 효유


런던에서 나는 운전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이 학교를 갈 때는 비가오나 눈이오나 걸어서 등교를 해야 했다. 급한 일이 생기거나, 날씨가 너무 짖궃더라도 차를 타고 편하게 학교를 보낼 수 있는 플랜B가 없다는 의미. 이런 긴장감이 있어서인지, 매일 오전 6시면 어김없이 울리는 알람 소리에, 정작 학교를 가는 당사자도 아닌 내가 제일 먼저 일어나고 있었다. 아이들 학교에서 우리 집까지 도보로 걸리는 시간은 20분 남짓. 물론 빠른 걸음으로 걸었을 때 예상되는 시간이다. 등교 시간인 오전 8시까지 아이들을 학교로 데려다 주기 위해서는 집에서 여유 있게 출발한다고 해도 7시 30분에는 출발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더 이불 안에서 웅크리며 5분만 더를 외치는 아이들을 깨우고, 아침을 먹이고, 교복은 잘 입었는지 학교 준비물은 잊은 것이 없는지를 확인한 후 아이들과 함께 집을 나서게 되기까지, 아침시간은 늘 분주하다. 집 현관을 잠근 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우다다다 뛰는 듯 달리는 듯 한 경보로 길을 나서게 된다. 집 현관의 문을 전자식 버튼키가 아닌 진짜 열쇠꾸러미로 잠그고 나오는 것도 언제쯤 익숙해질는지.. 무슨 의미인지 궁금하시다면 아래 사진을 참고..

IMG_5994.jpg 내가 살던 플랫은 아니지만, 대략 이런 형태라고 보면 됨.. 현관문을 열면 바로 도로와 연결되어 있다.

내가 살던 동네의 주택들은 이런 형태의 집들이 대부분이었다. 아파트 집 현관을 나서면 복도가 있고,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다시 한번 아파트 현관이 나오는 한국식 2~3중의 보안(?) 시스템에 익숙한 나로서는, 이런 형태의 집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믿기 어렵겠지만, 저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냥 집 거실로 바로 들어가는 셈이다. 처음에는 이런 출입 구조가 너무 낯설어서 현관문을 잠그면서도 몇 번이고 주변을 두리번.. 거렸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다른 이웃들이 그러는 것처럼, 나도 집을 나올 때마다 아주 자연스럽고 쿨하게 문을 잠그고 나오는 척을 해보긴 하지만... 여전히 열쇠 하나에 우리 집의 모든 보안을 맡겨야 하는 이런 단순한 체계에 완벽하게 동화되는 건 어려울 것 같다. 이런 분위기를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이 동네는 그만큼 안전하다는 반증이리라 생각하며 지낼 수밖에 ㅎㅎ.


이 동네는 영국식 주택들과 오래된 건물을 최근에 개조한 플랫(영국식 아파트), 그리고 상가 건물들이 주로 있는 비교적 깔끔하고 조용한 타운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상가 건물들에 입점한 가게들이 꽤나 유명한 브랜드들이 많기 때문에 주말이 되면 타운 주민들보다 이곳을 구경하기 위해 놀러 온 사람들로 혼잡해지기는 한다.) 우리 집에서 아이들 학교까지 가는 길 중간 즈음에 사립학교가 하나 있었는데, 아침 등굣길에는 그 학교의 교복을 입은 아이들도 많이 마주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초품아 아파트에 살았던 나에게는, 아침에 학교로 등교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한국이든 영국이든 크게 다르진 않았다. 다만, 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등교하거나 아니면 길이 익숙한 아이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학교로 가는 한국의 모습과는 살짝 다르게, 이곳에서는 아빠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등교하는 모습이 굉장히 자주, 그리고 많이 보였다.


집에서 학교 방향으로 걷다가 10분 정도 지나면, 사우스 켄싱턴 역에 도착하는데 이 주변에 들어서면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많아지기 시작한다. 아직 동네 지리도 잘 모르던 시절, 집에서 학교까지의 길이나 겨우 외우던 즈음, 아침 등굣길에서 내 눈을 사로잡았던 풍경 중 하나는 바로, 테이크어웨이 커피잔을 들고 출근 혹은 길을 걷던 사람들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 1/3은 거의 커피잔을 손에 들고 다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런더너들의 모닝커피 사랑은 눈에 띌 정도였다. 바쁜 아침, 카페에 앉아서 커피 한 잔을 즐길 정도의 시간은 없지만, 카페에서 내려주는 찌인한 카페인 수혈은 필수라는 듯 한 바쁜 런더너들의 모습. 우리나라의 출근 모습과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단 회사 사무실에 도착하는 것이 먼저인지라, 바쁘게 회사로 출근하는 것에 집중한다면, 런더너들은 어쩐 이유에서인지, 바쁨으로 따지면 전 세계 어느 출근길과 다를 바 없을 것 같지만, 유독 출근길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한 손에 커피잔을 들고 다니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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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학교 방향으로 가는 길목에, 유난히 매일 아침 나의 눈길을 사로잡는 또 하나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영국식 주택들 담벼락을 채우고 있는 식물들이었다. 센트럴 런던에 있는 주택들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전형적인 런던 주택의 넓은 정원들은 아니었겠지만..(매일처럼 지나다니는 길에, 남의 집 정원을 대놓고 들여다보는 건, 이곳에선 매너가 아닐 터) 각 정원들의 담장 너머로 보이는 꽃이나 나무들만 봐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주택 정원을 꾸미는 데 진심인 주민들이 많은 동네였다. 특히나, 장미 시즌이 되면, 장미를 애정하는 나로서는, 몇몇 주택 정원 담벼락에 탐스럽게 피어있던 장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오늘은 어제보다 얼마나 더 피어있을지, 색상은 얼마나 더 아름다워져 있을지... 동네 구석구석을 한 폭의 수채화처럼 채워주고 있는 골목의 풍경을 기대하며 집을 나서기도 했다. 이건 마치, 누군가가 정해준 건 아니지만, 우리 동네의 분위기란 이런 것이야 라는 무언의 서로간의 믿음이 있고, 이런 정원 하나하나가 모여 동네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서로 기여하고자 하는 건 아닐까 싶은 느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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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아침을 생각하면, 나에게 신선했던 또 하나의 광경은, 바로 기마병들이 도로를 순찰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도 제주도 같은 유명 관광지에는 말을 타고 순찰하는 경찰이 있다고 기사를 본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런 광경을, 런던에서 내가 거주하던 동네에서 일주일에 몇 번이고 이렇게 자주 보게 될 줄은 몰랐고, 실제로 보니 과연... 멋지기도 하고 신기한 광경임에는 틀림없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영국 경찰들이 이렇듯 말을 타고 순찰하는 배경 중 하나로는 높은 가시성 확보의 이유가 크다고 한다. 실제로 말의 키가 꽤 높기 때문에 경찰관이 순찰하면서 더 넓은 지역을 볼 수가 있고, 말 1마리당 경찰관 약 10명이 도보로 통제할 수 있는 구역을 커버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경찰관의 눈높이에서가 아니라, 일반인의 시각에서도 말을 타고 다니는 경찰관들은 더 눈에 띄기 때문에 아무래도 사건사고 발생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효과도 있지 않을까? 기마경찰은 우리 동네뿐 아니라, 근처 하이드파크에 산책을 나갈 때도 종종 볼 수 있었다. 잘 닦여진 도로 위를 천천히 걸으며 내는 따그닥 따그닥... 말발굽 소리를 들을 때면, 그 바쁜 런던의 아침 거리가 순식간에 중세 영국 시대로 무대가 바뀌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곤 하는, 나에겐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런던 아침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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