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들이 우산을 잘 안 쓰는 이유?
런던으로 이사오기 전의 나에게, '영국'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지 묻는 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영국이란? 신사의 나라 또는 특유의 악센트가 있는 영국식 발음을 만날 수 있는 나라, 그리고.. 예측 불가한 날씨가 이어지는 나라가 아니겠냐고..
다른 글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런던 1년 살기를 준비하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중간중간 크고 작은 어려움도 있었고, 불확실한 결과를 기다리며 마음 졸이던 순간들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추진할 수 있었던 건 역시나 아이들과 런던에서의 생활에 대한 기대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1년이란 시간이 길다면 길고, 결코 짧지는 않은 기간인데, 나는 하필이면 '비가 오는 날씨'를 싫어하는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 일기 예보에서 비가 예상된다고 하는 날짜에는 가급적 약속도 잡지 않고, 설령 주말이라 하더라도 비가 온다고 하면 황금 같은 토/일요일이라도 차라리 집에서 소파에 누워 TV보는 게 낫다는 식이다. 그런 내가, 비가 자주 오는 것으로 '유명'한 도시 런던에서 1년을 살아야 하다니... 하지만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란, 뭐든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도 하지 않는가? 이왕 런던에 가서 지내기로 결정했으니, 비가 자주 오는 날씨를 피할 수 없다면, 이쁜 우산을 하나 구입해서 기분 전환이라도 하자라는 방향으로 어느새 나를 세뇌시키고 있었다 ㅎㅎ. 게다가 영국은 비가 자주 오는 나라라고 하니, 우산도 종류가 얼마나 다양하고 많을지 궁금해졌다. 한국에서는 가성비 좋은 우비를 구입하기로 하고, 집에서 쓰던 오래된 우산을 비상시(?)에 쓸 용도로 챙겨 왔다. '예쁜' 우산은 런던에 도착하면 구입하기로 마음먹었다.
런던에 도착하기만 하면, 디자인/크기/기능별로 종류가 너무나도 다양해서 뭘 골라야 할지 고민스럽지 않을까 기대되던 그 우산들은, 생각만큼 쉽게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오는 도중에 가끔 들러서 눈인사를 몇 번 나눴던 마트나 베이커리 직원들에게, 주변에 우산 판매하는 곳이 어딘지 물어봐도 오히려 잘 모르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요즘이야 워낙 온라인 판매가 일반적이니 오프라인에서는 우산도 안 사는 분위기인 건가 싶다가도, 그렇게 비가 자주 온다는 곳인데 어쩜 우산을 파는 곳이 흔치 않은 건지 궁금하기도 했다. 멋지고 예쁜, 뭔가 '영국'스러운 우산을 구입하지 못한 채 나는 런던에서의 첫 번째 비 오는 날을 만나게 되었다.
런던으로 이사준비를 하면서 깜박 잊고 있었던 사실 하나. 유럽인들은 많은 양의 비가 아닌, 적당히(?) 내리는 비 정도는... 그냥 맞고 다닌다는 사실이다 ㅎㅎ. 이미 이전에도 다른 유럽 국가에서 생활을 해봤고, 여행도 다녀봤기에 이런 모습들이 어색하거나 생경한 그림은 아니긴 하다. (다만, 잠시 잊고 있었을 뿐) 내가 경험한 서유럽 국가들의 날씨는 일반적으로 예측하기 어려운 날씨가 많은데, 이를 테면, 지금 해가 쨍하게 내리쬐다가도 1시간 뒤에는 비가 잠깐 오고, 비를 피해서 들어가야 하나 싶어 서둘러 어딘가로 달려가다 보면 비가 그쳐있는 상황이 아주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수준이다. 그리고 비 오는 날씨에 이들에게 더 문제가 되는 건 비보다도 (다소 센)바람인 경우가 많다. 바람을 동반한 비가 내리면, 우산을 쓴다고 해도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있을테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도 비가 온다고 해서 우산을 챙겨 쓰기보다는 (곧 그칠지도 모르니) 그냥 맞고 다니거나, 아니면 재킷에 있는 모자를 쓰는 정도로 비를 피하는 듯하다. 그렇기에 영국 의류매장에는 우리나라에 비해 레인코트를 더 다양한 종류로 구매할 수 있고,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영국브랜드 바* 코트 중에도 왁싱이 되어 있는 종류를 많이 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유럽인들이 우산을 전혀 쓰지 않는 건 아니다. 비가 지속적으로 꽤 많이 오면 당연히 그들도 우산을 쓴다 ^^.)
런던에서 생활하면서,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데? 싶었던 점들이 더 있지만, 여기서는 하나만 더 언급해 보자면... 횡단보도 문화도 처음에는 많이 낯설었었다. 신호등의 보행신호는 빨간색이지만, 양쪽에서 접근하는 차량이 없다 싶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길을 건넌다. 처음엔 빨간 불인데 왜 사람들이 길을 건너지 싶어서, 신호가 초록색으로 바뀔 때까지 기다리다 보면, 어느새 나만 남아 있는 경우도 볼 수 있다 ㅎㅎ. 40년이 넘게 신호 법규를 지키며 살다 보니, 빨간 불에 길을 건넌다는 건 설령 머리가 건너라고 지시를 한다 해도 몸이 쉽게 따르기 어려운 개념이지 않겠는가. 나중에 듣게 된 내용이지만 (100% 확실한 배경은 아님), 영국인들 중에는, 차량이 다니지 않는데 단지 신호가 빨간색이기 때문에 기다리는 건 시간을 낭비하는 거라는 인식이 있기에, 시간의 효율성을 중시하는 문화에 따라 이런 현상이 생겼다는 주장이 있다고도 한다.
아 참, 그래서 나는 런던에서 그토록 기대하던 '예쁘고 멋스러운' 우산을 구입했을까? (내)마음에 드는 우산을 찾기에 1년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가버린 듯 싶었고, 대신, 비가 오는 날이면 밖에 나가는 것도 꺼려하던 나는, 가성비와 품질로 무장한 한국산 K우비&우산 덕분에 런던의 비 오는 날도 꽤 즐겁고 낭만있게 지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