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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유 Feb 22. 2024

런던에서 집 구하는 건 처음이라서요 Pt.1

런던 현지에서 직접 집을 구해보면서 느꼈던 소소한 생각들



런던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임시숙소에서 머무르면서 집을 구한다는 건, 또 다른 차원의 압박감과 긴장감이 수반되는 일이었다. 아이들 학교가 미리 정해졌고, 비자도 받아서 영국까지 들어왔는데, 집은 마음에 드는 공간이 나올 때까지 천천히 보면서 구하면 되는 게 아닐까?..


... 는 순진한? 무지한? 혹은 용감한 나만의 생각이었다. 일단, 임시 숙소에서 무한대로 머무를 수가 없으니, 임시 숙소에서 지내는 동안 최대한 빨리 집을 구해야 했다. 그러나 내가 입국한 8월은, 런던 부동산 시장의 연중 제일 핫한 시즌. 런던에서 집을 구하기 위해서는, 집을 미리 방문해서 확인하는 '뷰잉(viewing)'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그런데 피크 시즌 중 뷰잉 약속은 잡기도 어렵지만, 잡혔던 약속이 취소되는 경우도 빈번하고, 그나마 뷰잉을 한 뒤 집주인에게 오퍼를 넣어도, 그 오퍼가 수락될 가능성은 50%도 안 되는... 런던에서 피크시즌에 집 구하기란 그야말로 내 맘대로 되는 것은 하나 없는 대환장파티의 나날을 보내기 딱 좋은 시즌이었던 것이다.


뷰잉도 처음 몇 번의 뷰잉은 그나마 조금 낫다. 런던에 있는 집을 직접 본다는 설렘(?) 혹은 온라인 부동산 사이트에서 밤을 새워가며 검색해서 찾아낸 마음에 드는 집을 실제로 확인한다는 기대감 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감도 반복되는 뷰잉과 소득 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마주하다 보면, 점점 지쳐가는 몸과 마음처럼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이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 몸도 마음도 지친 나머지, 판단력+시력도 흐려진 듯한 내 앞에 그럴싸해 보여 덜컥 계약한 집에서 어느 날 갑자기 정신이 차려진 순간, 후회해 본들 이미 늦은 타이밍이기 때문이다. 즉, 한정된 시간 안에 집을 구해야 하는 나 같은 유학생 가족 신분으로는 먼저 뷰잉 할 집을 제대로 고른 후, 적당한 횟수의 뷰잉을 거쳐 선택과 집중 모드로 집을 구하는 게 좋을 듯하다.


나는 2주 동안 총 10회의 뷰잉을 했고 이 중 3번의 오퍼를 넣어서 집을 계약했다



첫 뷰잉


그 어떤 것이든 '첫'이라는 접두사가 들어가면 복잡다단한 감정들이 얽히게 된다. 평소 사람을 만나는 일에는 그다지 긴장하지 않는 편인데, 이 첫 뷰잉을 앞두고는 어찌나 긴장이 되던지... 부동산 업무는 한국에서도 자주 해 봤다고 할 수도 없었고, 무엇보다 여긴 런던이지 않은가? 외국에서 부동산 거래를 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던 나는, 뷰잉 전날에는 도통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부동산 직원을 만나면 뭐라고 이야기해야 하지?', '뷰잉시간도 엄청 촉박하게 준다고 하는데, 그 짧은 시간에 내가 궁금한 걸 다 물어보고 확인할 수 있을까? ', '런던에 처음 와 본 사람이라고 혹여나 나에게 불리한 점은 없을까 ㅜㅠ..?'


그러나, 그다음 날 오전, 약속 장소에서 마주친 그녀(=부동산 직원)는, 전날 밤잠도 못 이루고 뒤척이기만 하다 퉁퉁 부어버린 내 눈이 민망하리만큼, 화사한 꽃다발처럼 밝은 미소를 장착한 채 나를 맞아주었다. 날씨까지 진짜 화창했던 그날 아침. 부동산 직원이 이리도 아름다울 일인가 싶을 만큼 미모를 뽐내던 그녀는 성격마저 유쾌하고 상냥하였던 것. 남동생이 한식을 좋아해서 직접 김치를 사 먹기도 하고, 자신은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데 언젠가 꼭 한국에 가서 매콤한 한식을 먹어보고 싶다는 등 한국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먼저 해주면서(스몰톸의 힘!) 누가 봐도 런던에서 처음 집을 구하는 사람으로 보였을 내가 긴장을 풀 수 있도록 여러모로 애를 써주었다. 


무엇보다도, 동네가 정말 마음에 들었었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내가 머물고 있던 호텔이 있는 지역은, 호텔 외에는 주택가만 있어서 너무 조용하기도 하고, 인근에 편의 시설도 거의 없어서 마트를 가려해도 버스를 타고 나가야 하는 곳이었다. 그렇다면 복닥 복닥한 런던 시내는? 워낙 관광객들이 많다 보니 거주하기에 좋은 환경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런던에 이런 동네도 있었어? 싶을 만큼(관광지 외에 아직 다녀 본 곳은 거의 없지만 ^^), 큰길을 중심으로 생활에 필요한 편의 시설이 거의 다 있으면서도 도로에서 조금만 들어가 보면 조용한 주택가가 있는 지역이었다. 매물로 나온 집은 소위 상가 주택의 2층으로 나온 집이었는데, 내부를 새로 리모델링 한 집이었고 (계약한다면) 내가 리모델링 후 첫 입주자라고 했다. 빌트인 된 냉장고 안에 비닐스티커도 아직 안 떼어진 상태였다. 집도 깔끔하고, 1층으로 내려가면 편의 시설들이 있으니 편리한 점도 있지만, 단점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너무나 좁고 길었던 것. 이사를 오게 되면 가구는커녕, 체크인용 27인치 캐리어도 못 옮길 것 같은 계단이었다. 하지만, 동네가 정말 마음에 들었던 나는, 일단 오퍼를 넣어 보기로 했다. 오퍼를 어떻게 넣는지도 모르는 나를 위해 ^^ 그녀는 나를 부동산으로 데리고 가서 차근차근 하나씩 알려주었다. 걱정으로만 가득했던 런던 집 구하기 미션이 이렇게 쉽게 끝나는 거야? 오퍼를 넣는 것도 이렇게 쉽단 말이야? 그렇다면, 계단 불편한 거야 뭐, 하루에 몇 번이나 오르락내리락하겠어.. 집이 조금 좁으면 어때? 불편해도 살면 또 살아지겠지... 


그러나 나는 김칫물을 시원하게 들이켜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첫 오퍼는 그다음 날 시원하게 리젝 당했다 ㅋㅋㅋ 이유는, 나보다 먼저 넣은 오퍼를 집주인이 수락하겠다고 했단다. 아주 나중에서야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당시에도 크게 충격을 받거나 슬프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미 수없이 많은 뷰잉 후기들을 읽고 학습이 된 상태였던 터라, 첫 오퍼가 바로 수락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10번 이상 오퍼를 넣어서 성사가 된 케이스도 봤고, 일단 4,5번 이상 오퍼는 기본인 듯한 분위기였다. 특히나 내가 집을 구하던 작년 8월은, 시기상으로도, 학교 새 학기 전 초성수기 시즌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첫 뷰잉에서 매우 친절하고 호의적인 부동산 직원을 만난 덕에, 그녀에게 이것저것 부동산 계약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물어볼 수 있었고, 매물을 보러 갔던 이 지역의 첫인상 또한 잊을 수가 없었다. 뭐랄까... 내가 생각했던 그런 런던의 모습이었다. 여유 있고, 유쾌하며 쿨한 멋진 동네에 와 본 느낌? 확실히 현지 동네를 직접 다녀보고, 분위기를 직접 경험해 봐야, 지역과 매물을 보는 시야가 넓어질 수 있겠구나 느꼈던 첫 뷰잉이었다. 



두 번째 뷰잉


두 번째 뷰잉은 첫 번째 뷰잉을 한 그다음 날로 바로 잡았다. 첫 번째 뷰잉에서 예상보다도 더 친절한 부동산 직원과 뷰잉 과정을 경험한 덕분에 나도 모르게 어느새 자신감(?)이 생겼던 걸까?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뷰잉을 할 집 바로 앞에서 만나기로 하고, 약속시간보다 10분 정도 먼저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10분 먼저 도착한 이유는, 뷰잉 하기로 한 매물 근처의 동네 분위기를 잠시라도 둘러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부동산 직원은 약속 시간에 딱 맞춰서 도착했다. 옷차림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건 적절하지 않을지 모르겠으나, 이 날 만났던 그녀는, 첫눈에 보기에도 본인의 재킷이 아닌듯한, 흡사 아빠의 재킷을 빌려 입고 나온 듯한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오버핏의 재킷을 좋아하는 본인의 취향일지도?) 집만 괜찮으면 되는 거지, 부동산 직원의 인상이 뭐가 그리 중요할까 싶어 뷰잉 내내 집에만 집중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녀는 어딘가 어색해도 많이 어색했다. 키친의 쿡탑이 전기쿡탑이 아닌 가스레인지이길래, 가스레인지가 잘 작동되는지 봐달라는 나의 요청에, 가스레인지를 켜는데도 한참이나 걸렸었다. 난방이 전기인지 가스인지 묻는 아주 기본적인 질문에도 부동산에 확인해 보겠다며 전화를 걸던 그녀... 집은 마음에 들었으니 오퍼를 넣겠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어째 그녀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다. 오퍼는 넣었지만, 글자 그대로 그녀는 내 오퍼를 집주인에게 '전달'만 한 듯했다. 첫 번째 뷰잉에서 오퍼 결과를 다음 날 바로 알려줬던 경험이 내가 가진 100%의 경험이었기에, 이번에도 당연히 그다음 날이면 오퍼 수락의 가부(可否) 여부를 알려줄 거라는 나의 예상은 저 멀리로... 이틀뒤에도 그녀로부터 연락이 없기에, 어찌 되었는지 문의했더니 아직 주인으로부터 답장이 없다며 다시 연락해 보겠다는 메시지 이후로 그녀로부터는 연락이 없었다. 이쯤 되니, 내 오퍼가 전달은 되었던 걸까? 싶기도 하고, 실제로 집주인이 통보를 안 해주는 걸 수도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현재 과정이 이러이러하다 정도는 알려주는 것이 좋을 텐데, 적절한 연락이 없던 그녀의 대응이 아쉬웠었다. 이 매물만 보고 있을 순 없기에, 바로 다른 뷰잉 약속을 잡고 다른 매물도 보고 다니기도 했다. 2번째 뷰잉 한 집도, 처음 볼 때는 매우 좋아 보였었지만, 지금도 가끔 그 집 앞을 지나갈 때면, 오히려 무성의하게 대응했던 그 부동산 언니 덕분에 계약을 못 하게 된 게 다행이지 싶은 느낌이 드는 집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실망한 부동산 직원


나는 집을 구하면서 만난 부동산 직원들 대부분 나름 친절하고 괜찮은 분들을 만나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부동산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이건 참 재미있는 우연일 수도 있다. 영국에 집을 구하는 사람들이라면, 온라인에서 정보를 검색하면서 비슷한 후기를 보았을 수도 있겠다. 그건 바로 '런던에서 조심해야 할 부동산'인데, 나도 검색을 하면 할수록 특정 부동산으로 후기가 몰리는 걸 볼 수 있었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나는 매물을 검색한 뒤 부동산으로 '먼저' 연락을 하는 편이었다. 다시 말하면, 내가 부동산을 선택해서 연락을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매물을 알아볼 때도 위의 부동산이 내놓은 매물은 스킵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집도 안 구해지고 초조해지면서 매물도 점점 귀해지자, 이 부동산에서 내놓은 매물 중 하나를 (마지못해) 클릭하고 연락을 했다. 해당 매물의 주소에서 만나기로 뷰잉 약속을 잡았다. 늘 그렇듯, 주변 지역을 조금 둘러보기 위해, 나는 10분 전에 도착해 있었고, 대부분의 부동산 직원들도 대게 약속시간 5분 전이면 도착하거나 아니면 이미 도착해 있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하지만, 이 부동산의 직원은, 내가 만난 10여 명의 부동산 직원 중에 유일하게 10분이나 늦게 도착한 직원이었으며, 심지어는 이제 막 주차하고 내려서 가고 있다고 나에게 통화하는 순간, 우리 둘 다 서로를 발견했는데도, 나를 보면서 유유히 손을 흔들면서 걸어오고 있었다...(이럴 때는 보통 뛰어오는 시늉이라도 했다면 기다리던 나도 덜 민망했을 텐데..)


이미 색안경이 씌워진 나에게 이 직원의 일거수일투족이 이뻐 보일리도 없었고, 실제로 집을 소개하는 과정도, 그 이후에 연락하는 모습에서도 '이래서 사람들이 이 부동산은 피하라고 했던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 경우는 딱히 사기를 당하거나, 금전적으로 피해를 겪은 건 아니지만(이런 일을 당한 사람이 제법 있다고 함) 간단한 시간 약속조차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직원과 부동산 계약이라는 큰 일을 함께 진행했다면, 즐겁지만은 않은 일들이 생기지 않았으리라고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고 본다.



더 많은 런던 부동산 뷰잉 후기는 다음 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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