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임 반 + 긴장감 반으로 밤새 뒤척인 탓인지, 아침에 거울에 비친 얼굴 컨디션이 그리 양호하진 않았지만 무얼 하던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이 나이에 콘서트 가는 것이 이렇게 두근거릴 일인지 싶다가도, 콘서트 장소인 로열 앨버트 홀 Royal Albert Hall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벌써부터 캐롤 노래가 들리는 듯 싶다.
미리미리 준비하고 일찍 출발했다면 좋았으련만, 방학이라 게을러진 신체 리듬탓 인지 모두가 어슬렁 꽁냥꽁냥 하다가 공연 시간에 임박 하여 호다닥 준비하고 나왔다. 날씨만 도와준다면야 콘서트 홀까지 캐롤 메들리를 부르면서라도 걸어갈 수 있는 거리지만, 바깥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버스를 탈까?...제 시간에 오는 버스도 있지만, 이런 날은 꼭 내가 타려는 버스는 갑자기 딜레이되고, 연착되고 그러더라 ㅜㅠ 오늘 같은 날은 그런 모험을 하고 싶지 않다. 과감히 택시 타는 걸로 결정! 다행히 도로가 많이 막히지 않아 공연장까지 빨리 도착 할 수 있었지만, 시계를 보니 공연 시간 까지는 겨우 10여분 남은 것!
공연 장 앞에서는 로열 앨버트 홀 직원들이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공연이 10분 남았으니, 아무 게이트로나 일단 입장하세요!”(공연 전 1시간이나 30분 등.. 초반에는 공연 티켓에 적혀 있는 해당 gate로만 들어가지만, 공연 시간이 임박하니 늦게 온 사람들은 일단 건물 안으로 입장하라는 권고)
택시에서 내리려는데, 택시 기사가 갑자기 같이 외쳐주신다. “저 소리 들려요? 공연이 10분 남았으니 아무 문이나 일단 들어가라고 하네요!” 굳이 이야기 안 해 주실 수도 있는 건데...크리스마스 공연 보러 가는 걸거라고 생각하고, 공연 잘 볼 수 있도록 한 마디 도와주는 것에 불과 할 수도 있지만, 이런 오지랖, 훈훈합니다. 여기 택시(Cab)기사들은 왜 이렇게 스윗하세요 ㅜㅠ 캡 면허 딸 때, 매너가 없거나 스윗하지 않으면 면허를 안 내준다는 규정이라도 있는건가요...
로열앨버트홀 캐롤 콘서트는... 공연장도, 음악도, 그리고 공간을 가득 채운 청중들 모두가...한 마디로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시간을 만들어내기에 어느 하나 부족함없이 각자의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공연장에 들어가니... 여기가 공연장인지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리는 파티장소인건지 헷갈릴 정도로, 크리스마스 점퍼 차림의 관객이 이미 반 이상은 되어 보였다. 옷이 아니어도 헤어밴드라든지 산타 모자를 쓰고 있는 사람들까지 더한다면 그야말로 공연장 전체가 이미 메리 크리스마스 분위기인 것. 공연이 시작되자, 진행자는 프로그램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하는 건 기본이며, 청중들이 함께 노래부를 수 있도록 조련하는 솜씨마저 매우 능숙했다. 런더너들이 일년 내내 이 공연만 기다린다더니, 왜 그런지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들과 함께한 이 공연은, 객석에 앉아서 음악을 듣기만 하는 공연이 아닌, 오케스트라와 상호 작용을 하며 참여할 수 있는 공연, 콘서트를 즐긴다는 것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체득할 수 있었던 공연이었다.
인터미션이 끝나고 2부에서는 콰이어와 오케스트라 멤버들 모두 크리스마스 커스튬으로 바꿔 입고 등장했는데 너무너무 사랑스러운 크리스마스 오브제 그 자체 같았다. 어쩜 모두 이렇게 크리스마스에 진심인건지. 내 옆 자리에 앉은 (영국인으로 보이는... 영국인이셨겠지?)나이 많은 부부께서는 공연 내내 ‘엄근진’의 자세를 유지하면서 보시다가, 마지막에 모두가 함께 부르는 ‘Twelve days of Christmas’ 캐롤 때 몸 좀 푸시는 듯 하더니, 마지막에 앵콜곡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때는 완전 무아지경에 빠지셨음... 내 앞 자리, 옆 자리에 있던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들 모두 아이들과 함께 합창하고 춤추는 모습들도 유쾌하고 멋져 보였다. 공연을 관람하러 온 사람들이 오히려 공연에 참가하게 된, 모두가 다 같이 즐겼던 3시간의 공연이었던 것 같다.
공연이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시장도 볼 겸 들른 M&S 푸드 마트. 바나나를 사려는데, 내가 평소에 바나나를 담아오는 일반 봉투가 오늘은 없어서, 바나나 전용(?) 종이봉투에 담아왔다.(M&S에는 채소 등을 담는 일반 종이봉투와 이미 많이 익어버린 바나나들을 균일가에 판매하기 위해 따로 모아두는 바나나 전용 봉투가 별도로 있음) 셀프로 무게를 잴 수 있는 저울에서 바나나 무게를 잰 뒤 출력 된 가격 스티커를 봉투에 붙이고 계산을 하려는데, 옆에 있던 M&S 직원이 다가와서 하는 말,
직원 : ‘이거 스티커를 봉투에 왜 붙였어요?’
나 : ‘바나나 무게를 알아야 가격을 확인할 수 있으니 스티커 붙인거에요'
직원 : ‘이 봉투는 날짜가 임박한 바나나들을 모아 넣어서 파는 봉투라서 이 봉투에 들어있는 바나나들은 균일가에요. 따로 무게를 잴 필요가 없어요.’
나 : ‘아, 맞아요. 저도 아는데, 오늘은 봉투만 필요한 거니 괜찮아요, 이미 무게는 따로 재서 왔어요’
라고 이야기했더니, 직원이 오늘은 그냥 균일가로 계산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거 아닌가? 그러면서 씽긋 미소를 장착하며 덧붙이길,
“It’s Christmas!”
꺄아...바나나 가격이 얼마나 한다고(영국은 바나나가 특히나 저렴하다. 이렇게 오늘 사 온 바나나 5개의 가격은 무려 450원).. 하지만 가격이 중요한 게 아니지 않은가. 도대체 이 동네 사람들은 다들 크리스마스에 왜 이렇게 진지하고 진심인걸까. 계산을 끝내고 나오는 나에게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도 잊지 않는 그 직원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남아 있었다. 마트를 나오면서 집으로 오는 길에 누구라도 반가운 얼굴을 보면 나도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를 하고 싶어지는 따스한 기분에 폭 쌓인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