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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인 도깨비 Sep 01. 2024

연주자의 17 대 1

악보 해석에 대한 '좋아요' or '싫어요'

지난 6월, 국내 피아노 리사이틀에서 제법 신선한 사건이 있었다.

요즘 가장 핫한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파격적인 연주를 선보인 것이다.


보통 연주자들은 예정된 프로그램을 바꾸지 않을 뿐더러 악보 지시대로 연주를 한다. 텍스트에 최대한 가깝게 연주하거나, 작곡가의 의도를 충분히 살리되 몇몇 부분에서 템포의 변화를 준다든지, 특정 음들을 강조 혹은 확대하여 연주하는 등 다양한 주법으로 개성을 표현한다.

하지만 임윤찬의 경우는 그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악보에 표시된 악상기호를 아예 반대로 연주해버리거나 없는 음표를 넣어 연주하였는데, 사실상 이런 연주는 웬만해선 드문 경우다. 어떻게 보면 이제 스무 살인 임윤찬은 벌써부터 본인이 원하는 음악을 하고 있었다.

물론 어릴 적부터 기본기에 충실하고 탄탄한 임윤찬이었기에 까임 방지권이 적용되었을지도 모른다.

반면 이런 연주는 오히려 눈에 띄게 만들고, 귀를 자극하기에 흥미롭다고 여기는 관객들도 있다. 하지만 일반인이 이렇게 연주했다가는 스승에게선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등짝 스매싱을, 관객들로부터는 곱지 않은 시선비난을 원플러스원로 받기 쉽다.


2015년 쇼팽 콩쿠르 International Fryderyk Chopin Piano Competition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연주도 파격적이진 않지만 비슷한 경우가 있다. 모차르트 곡들을 정규 음반으로 발매하는 인터뷰에서 그는 모차르트의 꾸밈음(음의 앞 뒤에 붙어 있는 음이나 축약된 기호)에 대한 해석을 이렇게 말다.


... 모차르트가 연주자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악보에 직접 꾸밈음을 써넣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그가 꾸밈에 있어서 어떤 방식으로 접근했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죠. 모차르트를 연주하면서 뭔가를 반복해야 하는 경우가 자주 있는데, 저는 이때 일종의 꾸밈음을 집어넣어 음악을 새롭게 조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015년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자인 조성진 (사진: 도이치그라모폰)

다시 말해, 모차르트가 악보에 직접 써놓은 꾸밈음을 악보 특정 부분에만 국한하여 해석하기보다는 같은 선율이나 음이 반복될 경우 다른 꾸밈음을 넣어 변화를 준다는 것다.

실제로 조성진은 음반과 공연, 심지어 TV 프로그램 라이브에서도 각각 다른 꾸밈음을 넣어 매번 새롭게 연주하였다. 뿐만 아니라 다른 작곡가의 연주에서 셈여림의 강약을 좀 더 극대화하여 또렷한 대비를 느낄 수 있는 과감한 연주 들려주기도 했다.


반대로 작곡가의 지시를 텍스트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곡 자체의 해석이 반감되기도 한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월광 소나타'라는 부제는 베토벤이 표기한 것이 아닙니다-글쓴이)은 1악장 첫머리에 ‘이 악장은 전체를 통해 매우 섬세하게 댐퍼 페달을 누른 채 연주되어야 한다’(Si deve suonare tutto questo pezzo delicatissimamente e senza sordino) 페달사용에 대 베토벤의 지시가 있다.

하지만 이대로 연주할 경우 댐퍼 페달 특성상 누르고 있는 음들이 모두 유지되어 동시에 울리기에, 화성이 혼탁해져 소리 자체가 지저분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연주자들은 실제로 1/4 정도 페달을 밟거나 부분적으로 페달을 바꿔 연주한다. 1)

오른쪽이 댐퍼 페달. 밟고 있으면 현을 누르고 있는 댐퍼들이 상승하여 현의 울림을 지속시킨다(사진: 위키피디아)

앞서, 오로지 관객의 입장에서 바라본 박수 논쟁이 있다면, 연주자 입장에서는 악보 해석의 허용 범위에 관한 또 다른 깻잎 논쟁이 존재한다.


연주자의 관점에서 악보 해석의 자유는 과연 어디까지인지를 객관적인 틀로 재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따라서 본인만의 음악적 표현인 예술이라는 도구로 다수의 관객을 상대하기에 매번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다.

음악을 가르치는 교육자의 입장에서는 또 어떠한가. 규범적인 연주만 가르치자니 개성이 없고, 개성을 잘못 앞세우다간 손가락질까지 받는다.


이런 논쟁에 대해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총장이자 피아니스트, 지휘자이신 김대진 선생님의 말씀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뛰어난 연주자들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개성이 뚜렷한 연주자가 더 많아져야 할 것 같아요
2024년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총장을 역임하고 계시는 김대진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 (사진: 경향신문)

교육자로서의 초창기에 그는 학생들의 모난 부분을 깎기에 바빴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음악의 시작과 끝은 결국 소리이자 그 소리로 자신만의 정체성을 표현해야 하기에 개성도 중요하다고 강조하다.

다만 연주자가 즉흥적이고 감각적인 연주에만 몰두한다면 음악의 본질을 잃어버리게 되기에 그 또한 경계한다. 그런 본질을 벗어난 연주는 표현의 자유가 아닌 개인의 연주에만 몰두하는 것, 따라서 금세 잊힌다며 음악적 사명감을 가진 연주자이길 당부한다.


넓은 공연장, 홀로 선 연주자들은 어쩌면 '17 대 1'의 비장한 각오로 매번 관객을 대할지도 모른다.




(임윤찬 사진: 한겨레)

(김대진 님의 인터뷰 월간 [객석] 2016년 9월호)


1) 이는 당시 기술적인 상황을 고려했을 때 페달이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베토벤의 페달 지시를 텍스트 자체로만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 제자들의 증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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