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개 박사과정인 내가 이세계에선 MIT 포닥?!
부산에서 대전으로 유학을 떠난 지 어언 10년. 어찌 저째 우당탕탕 살다 보니, MIT의 Luca Carlone 교수님께 포닥으로 간택되어(?) 내년 4월 1일부로 MIT로 출근하게 되었다. 석사 진학을 할 때에도, 하물며 1년 전만 해도 내가 해외로 포닥을 나가거나, 특히 MIT에서 일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마침 이번 주에 미국 대사관에 가서 J1 비자와 아내의 J2 비자를 무사히 승인받았다. 이제는 나의 포닥 계약이 엎어지지는 않으리라 생각되어, 이렇게 기록으로 남기게 되었다.
인생은 늘 우리의 예상과 달리 흘러가지 않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3자가 나의 삶을 바라보았을 때, 나의 지난 10년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운이 좋았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기숙사 컴퓨터실에서 나의 친구 S군이 KAIST에 지원서를 쓰는 것을 우연히 보고 '우와, 멋있다'라고 얘기했다가, KAIST는 수시 원서에 제한이 되지 않으니 너도 써봐라는 친구의 말에 혹해 아무 기대 없이 KAIST를 지원했는데 덜컥 KAIST에 합격하게 되어 '나는 전산 오류 전형으로 합격한 게 틀림없다'고 친구들과 깔깔댈 수 있었던 것이 이러한 행운의 시작이지 않나 싶다. 석사 진학 시에는 로봇 분야를 연구하고 싶어서 당시 기계공학과에 속해있던 나는 건설 및 환경 공학과(건환과)에 계셨던 명현 교수님 연구실로 나름 소신 지원을 했는데, 교수님께서 전기 및 전자공학부로 전과를 하시는 덕에 얼떨결에 전기 및 전자공학부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게 되었다. 이처럼, 나의 삶에는 나의 당시 결단이나 인사이트로는 return받지 못하는 보상이었음에도, 주변인들의 도움과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이렇게 20대를 성황리에 마무리할 수 있게 되어 참 다행이고 감사하다고 느껴진다.
이처럼 겉만 봤을 때는 나의 20대의 삶이 원하고자 하는 걸 다 이루면서 맘 편히 살아온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누구나 그렇듯이 지나온 과정을 자세히 바라보면 당시에는 늘 실패로 인해 좌절하고(특히 논문 리젝 ㅠ) 더 좋은 선택지가 있지는 않은지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아오지 않았나 싶다. 이 글들은 쓰게 된 동기도 사실 수십 년이 지났을 때, 지금의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았는지 미래의 나에게 볼 수 있게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이 되어,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또한 최근에는 문득 나의 10~20살 시절에도 그 시절 나름의 (지금 돌이켜보면 부질없어서 굉장히 귀여웠을) 고민을 가지고 있었을 텐데 그때의 나의 고민들이 기록의 부재로 인해 휘발되는 것이 아쉽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도중 나의 벗인, 개발자 Ryu Ing가 미국으로 가게 되면서 겪은 우당탕탕 라이프를 글로 작성하는 것에 큰 영감을 받아 나도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또한 김주호 교수님의 박사 회고록을 박사 디펜스 후에 알게 되어 굉장히 대입해 가며 읽었는데, 박사 과정을 밟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을 할 수 있는 일들을 담담히 담아내고 있으신 것이 감명 깊었다. 김주호 교수님처럼 저명한 연구자가 되었을 때, 이 글을 통해 '나'라는 사람도 별 볼 일 없던 한 사람에 불과했다는 것을 – 허준이 교수님의 말을 빌리자면 우연, 의지, 기질이 기막히게 정렬되어 성공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는 것을 – 계속 상기시켜 줄 것 같다.
글을 쓰다 보니, 꼭 글을 논문의 서론처럼 쓰고 있는 것이, 낯설면서도 익숙한 느낌이 들어 어색하다. 그러기에 첫 글의 제목은 Introduction으로 짓게 되었다. 앞으로는 나의 석사 2년, 박사 3년, 그리고 포닥으로 1년 더 있었던 KAIST 생활을 보내며 겪었던 나의 우여곡절과 생각들에 대해 담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