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111. 이혼 87일 차
111. 이혼 87일 차
치명적인 독성을 '섹시'라고 부른다
5월 26일 월요일 맑음
아침에 일어나 이탈리안 레드 벤츠 SLK 로드스터를 세차했다.
기분 좋은 붉은색이 주차장에 가득했다. 그런 후, 컴퓨터를 켜서 인터넷뱅킹으로 대출이자를 쫘악 입금한 다음 전기요금도 쭈욱 입금하는데, 일부는 날짜가 지나 ‘오류’라고 나온다. 전기요금 납부일이 20일인 것을 이제야 알았다.
이어, 밥값을 하려고 인천지방법원에 보낼 보정서와 신사동 채무자, ㅇㅇ연맹 채무자에게 보낼 내용증명을 프린트해 가방에 넣고 빌딩을 나섰다. 동사무소에 들어서자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뒤에 있는 직원들이 나와서 좀 도와줘야 하는 거 아냐?”라는, 민원인의 큰소리가 들렸다. 그는 법원 보정 명령서에 따라 채무자의 초본을 발급받고 빌딩의 세대 열람을 신청했다. 그리고는 “이 사람들 모두 살지 않으니 말소해 주세요.”라고 말했는데, 403호 임차인의 이름을 전에 살던 사람과 헛갈렸다. 동사무소 직원이 당사자와 통화해 알게 되었다. 그러니 그 건은 취소였다.
그리하여 말소 대상자는 허 씨와 방 씨 성을 가진 두 명이었다. 이 중 방 씨는 고시원에 거주하던 중년 여자로 퇴실 후 치운 냉장고 내 음식을 ‘변상하라’라고 진상을 벌였으나 진압했던 기억이 있다. 하필, 동사무소 저쪽 편에서 선글라스를 쓰고 뭘 적고 있는 게 보였다. 그는 못 본 척하고 주민등록 전입 말소를 요청했다. 이에, 담당 직원이 역시 방모씨와 통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방모씨는 통신요금 미납으로 문자만 수신하므로 연결되지 않았다. 담당 직원이 “현황조사도 하게 되어 말소까지는 한 달 정도 걸립니다.”라고 안내했다.
그렇게 동사무소에서 돌아오니 부지런한 방모씨가 “내가 말한 음식물 잊어버리지 않았지요? 내 우편물은 보관해 주세요.”라는 쪽지를 우편함에 넣어두었다. 그가 “주민등록 말소신청했으니 급히 전입을 빼시오.”라고 문자를 보냈다. 아라미스가 찾아올 때도 이때였다.
“회덮밥 먹을래?”
그렇게 참치 횟집으로 들어가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았다. 아라미스가 그를 찾아온 이유는 ‘돈’이었다. 경매 컨설팅하며 받은 입찰보증금을 토해내려고 하는데 돈이 없다는 것이다. 타고 다니는 벤츠로 ‘차 담보대출받을 받을까’라고 고민하기에 전화번호를 소개해주었다. 그렇게 통화하더니 “차를 맡기라고 하네요. 그러면 못 해요. 타고 다녀야 하거든요.”라며 결국 그에게 “형님이 빌려주면 안 됩니까?”라고 말했다.
“나 돈 없다. 그렇지 않아도 ㅇㅇ은행에서 대출자서 받으러 온다.”
조 과장이 가져온 서류뭉치에 끝없는 사인을 해 댔다. 그리고 일부 서류는 [야촌주택] 건설 대표가 도장을 날인해야 하므로 서류를 저녁에 전 소장 편으로 보냈다. 그러면서 조 과장은 “미리 지급된 1억 6천만 원 공사비는 써도 됩니다.”라고 말했다.
시간은 오후로 접어들고 있었다. 맞춤 양복점 미조사를 방문했다. 매우 오랜만이었다.
“바지 좀 맞추려고요.”
통이 아주 좁은 바지를 두 벌 맞췄다. 한 장당 10만 원이었다. 바지를 맞추기 전에 금강제화 구두와 캐주얼화도 주문하고 발목 양말도 주문했다. 집에만 있어 우울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변화를 주고 싶어서 그랬는지는 뚜렷하지 않다. 옷장을 열고 입지 않는 바지와 옷가지도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렸다.
드럼을 연주하던 중에 스틱이 부러졌다. 족발에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하루의 일과를 생각해 보니 여기저기서 후진 놈들의 아우성이 들린다. 또 암컷의 공격까지 받는다. 암컷들은 고난과 역경을 이긴 수컷 부르주아의 목덜미를 한 번에 물어 사망하게 하는 치명적인 독성을 가지고 있다. 그 독성을 우리는 ‘섹시’라고 부른다.
그가 [갤러리아백화점] 맞은편에서 명품 전당포를 하는 고 사장으로부터 여자를 소개받았다. 올해로 42세인 여자는 거문고 병창 이수자 경력이 말해주듯이 사내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고 외모도 평균 이상이다. 그 여자가 “사실은 결혼은 했다.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지만 사기 결혼 당했고 일곱 살 난 딸이 하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중고차 이론에 따라 돌싱녀와는 사랑하지 않을 것이었으므로 섹스파트너 정도 위치는 적당했다. 하지만 오늘 그녀의 전화번호를 ‘수신 거부’했다.
“오빠, (동탄까지 퇴근) 피곤하다. (서울에) 어디 집 남은 거 없어?”
“10월에 여행이나 가자. 근데 국내 여행 가야 되지?”
“결혼 같은 거는 생각이 없고~~”
소개받은 후 딱 한 번 밥을 먹었다. 그런데 그녀의 말은 가관이었다. 얻고자 하는 욕망은 알겠는데, 자신은 노력하지 않는다. 벌써 두 번이나 자정이 다 되어 전화를 걸어와 “고속도로야, 피곤해.”라며 시간을 잡아먹었다. 이런 황당한 시추에이션을 ‘즐겨보자’라는 생각으로 관찰하는 것도 짜증이 되었다. 게다가, 오늘은 ‘신사동에 온다’라고 했으면서 전화가 연결되지 않았다. 물론, 그는, 여자와 밀당하거나 어장 관리당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으며, 그렇게 한가하지도 않다. 그러므로 전화번호를 ‘수신거부’했다.
남은 족발을 전자레인지로 돌려 소주 한잔하고 노래를 부르다 보니 자정이 되었다. 그러니, 11시 30분경 204호 아가씨로부터 “출근합니다. 일반적인 사회인 배려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몹시 피곤해서요. 전에 10시까지 개방한다고 하지 않으셨어요?”라는 문자를 받는 것도 피할 수 없었다. 그가 배려를 위해 음악 소리 제한을 스스로 정한 한 말이 족쇄가 되었다. 과도한 친절이 낳은 비극이었다. 그래서 답장을 보냈다.
“오늘 행님이 우울하다! 봐주라.”
한국인들을 죄다 내보내 버리는 [게스트하우스 프로젝트]는 잘 될까? 신 부장이 명함을 가지고 갔다. 이때, 그가 “여행사 대표 한번 만나게 해 주라.”라고 일침을 가했다. 신 부장의 입만 봤고, 여행사 사장단은 이야기로만 존재함에도 “(여행사 사장단이) 홈페이지와 결제 시스템 구축을 먼저 하라고 말했습니다”라고 말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실체가 있는지 ‘만나자’라고 일침을 가한 것이다.
신 부장은 끊임없이 사기를 시도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처음에는 보도방 사업 이야기, 이번에는 친구라는 사람을 등장시켜 제주도 낚싯배 사업 이야기, 그리고 게스트하우스를 이야기까지 지인으로 하여 사이트 구축 비용 등을 갈취하려는 시도로 파악되었다.
오늘 또 하나의 사건은 쌍문동 채무자의 이야기다. 아버지가 아들을 고소하고 그에게 소송까지 한 그 사건이 그것이다. 아들이란 놈이 전화를 걸어와 “얼마 정도 합의가 되면 갚을까 해서요.”라고 물었다. 이에 그가 “영어 하지 마라. 원금과 이자 다 받을 거다. 이번에 경매절차에서 내가 낙찰받을 거니 너무 걱정 마라.”라고 조용하게 타이르듯 알려주었다. 그러자 “그렇다면 저도 3자를 내세워 낙찰받으려고요.”라고 말했다. 그가 “그래라. 아버지 집 경매절차로 채무 털고 새롭게 살면 좋은 거지.”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는데 문자가 왔다.
“급매가가 1억 5천만 원 밖에 안되므로 은행 대출금까지 생각하면 이 집 포기하고 다른 집 사 드리는 게 이익이겠네요. 그리고 저희, 동네가 기본 유찰 2~3번이니 굳이 습기 차고 곰팡이 피는 집 살릴 필요는 없을 거 같습니다. 돈 잘 썼습니다. 수고하세요.”
이런 허세 질. 이런 싸가지. 이런 빈정거림에 기분 더럽다. 그 아비를 보니 애새끼 행실이 이해는 된다. 사채를 해보니 채무자는 채권자에게 거지 같은 집을 떠넘긴다. 그러면 사채업자는 원금 회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경매장에 내다 판다. 이것이 사채다. 베드로가 부평4동의 3층짜리 근생 1/3 지분을 잡고 2억 원을 대출해 주자고 해서 다음 로드뷰로 봤다. 쓰레기도 이런 쓰레기가 없다. 이 새끼도 집을 파는 거다. 그것도 평당 9백만 원에. 기도 안 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