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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나다 노마드 Mar 15. 2024

헤어질 수밖에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법

그 사람이 내 빨간 하트 슬리퍼가 싫다고 한다. 

신고 다니지 말라나. 

내가 그렇게 먹기 싫다는데, 굳이 내가 싫어하는 걸 저녁에 같이 먹으러 가자고 한다. 

너무 피곤해서 집에 가고 싶은데, 별 다른 이유 없이 못 가게 한다. 자길 덜 사랑해서라며, 구박을 한다. 

처음엔 새로 사귄 사람이라고 그렇게 예뻐하더니. 이젠 다른 사람한테 눈길을 돌리며 나는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내가 이런 사람을 계속 만나야 할까.

하루에도 수십 번 고민한다.

처음 정식으로 사귄 사람이니까. 썸 하고는 다르니까. 나도 잘해보고 싶었다. 내가 싫어하는 것도 꾹 참아보고, 비위도 맞춰보고 그랬다. 쌍방의 노력이 중요하니까. 그러면 뭐 하나. 이제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나도 남들처럼 나를 아끼고 사랑해 줄 이를 만나고 싶다. 

그래서 나는 헤어질 수밖에 없다. 이 회사랑.



휴학을 하고 1년 동안 계약직으로 회사를 다니며 나는 회사라는 생물에 대해 알만큼 알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했던 수십 개의 아르바이트나 인턴 경험과, 1년 회사 생활은 확실히 달랐기 때문이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나름대로 회사에 대한 나만의 기준을 정했다. 


첫째, 회사는 자아실현을 하는 곳이 아니다.

둘째, 연봉이 높아야 한다.

셋째, 연봉이 좀 낮으면 사내복지가 좋아야 한다.

넷째, 같이 일하는 사람과 매니저가 정상인이어야 한다. 

다섯째, 회사는 집에서 너무 멀면 안 된다. 


위와 같은 기준을 마음에 새기며, 졸업을 앞두고 구직전선에 뛰어들었다. 운 좋게 입사해 봤자, 내 기준에 안 맞으면 결국 나오게 될 거 같아서 꼭 들어가고 싶은 외국계 회사에만 지원서를 냈다. 만약 붙으면 내가 가고 싶을 회사에 말이다. 취업 빙하기의 초입이었던 시기. 아직은 취직이 지금처럼 괴랄스럽지 않았기에 다행히 졸업 전에 한 외국계 기업에 입사할 수 있었다. 


5차 인터뷰까지 거쳐서 입사할 수 있었던 그곳. 처음 오퍼레터를 받고 신기하면서 뿌듯했던 그 기분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백설기까지 쪄서 내 손에 떡을 들려 보내주신 부모님의 마음도 아직 손에 잡힐 듯 그려진다. 그리고 입사 3년 차. 결국 견디지 못하고 퇴사를 하던 그날까지도. 


20대. 아직 어린 나이에 겪었던 회사 내에서의 많은 일들을 지금 돌이켜 보면, 사실 그렇게 큰일이 아니었다는 걸 이젠 안다. 다만 나한테는 그저 엄청난 스트레스였던 거다. 회사라는 조직이 내가 견고하게 쌓아온 나만의 공간과 규칙을 계속 갉아내게 만드는 게. 내가 나일 수 없는 곳에 몸을 욱여넣는 게. 


물론 쌓이고 쌓인 자잘한 일들도 있었지만, 내가 첫 번째 회사를 박차고 나왔던 이유는 사실 하나다. 그놈이 나를 배신했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공황으로 인해 구조조정에 나섰던 회사가 임금을 삭감하기로 결정했다. 그것 까지는 좋았다. 신입사원 기준 연봉은 올리기로 했단다. 그래, 그것까지도 참을 수 있다. 그런데 신입사원 연봉이 나 보다 높아졌다. 내 연봉이 "빌로우 미니멈 (Below Minimum)"이 된 것이다. 최저시급 이하의 시급이라고? 그 어떤 후속조치도, 약속도, 다독임도 없었다. 


3년 차인 내가 이제 갓 회사를 들어 올 내 후임보다 연봉이 낮은데. 이걸 내가 받아들여야 한다고? 



퇴사와 이직을 반복하며 배우는 건,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다. 내가 뭘 좋아하고, 내가 뭘 싫어하고, 내가 참지 못하는 게 무엇이며, 내가 기쁨과 보람을 느끼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성장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안주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변화를 좋아하는지 안정감을 선호하는지. 도전을 즐겨하는지, 탐험을 즐겨하는지. 그 모든 것을 퇴사와 이직을 반복하며 깨닫게 되었다. 


나는 아무리 일이 좋고, 동료가 좋아도, 내가 하는 일과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으면 참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걸 이때 처음 알았다. 


정규직으로만 치면 3번의 이직. 계약직까지 전부 합치면 총 6번의 이직, 7개의 회사를 거쳤다. 그 과정을 통해 회사를 잘 옮기는 법, 터를 닦는 법, 버티는 법, 성장하는 법을 배웠다. 이제 내 집마련처럼, 내가 편히 일할 수 있는 내직(職) 마련의 노하우를 다 털어내려고 한다.


이직이 생각보다 잘 안된다고? 버텨야 할 때 인지 박차고 나가야 할 때인지 헷갈린다고? 옮긴 곳이 생각보다 별로라고? 나도 다 겪은 일이다. 


나의 묘책이 여러분에게 통하길 바라며, 이 책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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