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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나다 노마드 May 11. 2024

대도시에 오로라가 뜨는 나라

역대급 예보

오로라. 발음만 해도 신비한 울림과 느낌을 주는 단어다.


오로라는 '새벽'이라는 뜻의 라틴어로, 태양풍에서 나온 태양입자들이 지구 대기권에 진입하며 지구 자기장과 만나며 나타나는 현상이다.


캐나다는 그런 오로라를 볼 수 있는 나라 중 하나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여사는 대도시에서 오로라를 보기란 여간 쉬운 게 아니다. 그래도 오로라가 뜬 다는 소식만 나오면 우리 가족은 어김없이 차를 몰고 도심의 빛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오로라를 보러 갔다. 그렇다. 우리는 소위 말하는 오로라 체이서다 (Aurora Chaser).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도심에서 오로라 보기 미션은 몇 년에 한 번씩 하는 우리 집 행사로 자리를 잡아갔다.


"오늘 오로라 뜰 확률 높데!" 소리만 들으면 졸리다는 애들을 차에 태우고 빛이 비치지 않는 어둑한 길가에 차를 대곤 오로라가 뜨기를 기다렸다.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올리는 포스팅을 보며 오로라를 쫓은 지도 어언 10년은 넘은 것 같다. 그간 오로라를 본 적?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도 그럴게 극지방에서나 자주 볼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하고, 도심의 빛 오염으로 인해 오로라를 눈으로 보기는 하늘의 별따기 같은 일이다. 그런데 드디어. 오늘 그 행운이 우리에게 찾아왔다.



오늘은 바야흐로 역대급 오로라 워치 경보가 울린 날이다. 캐나다에서 오로라를 쫓는 사람이라면 핸드폰에 깔아 놓았을 그 앱. 바로 오로라 앱이다.


오로라 앱


오로라를 볼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면 자동으로 알림을 보내주는 앱인데, 오늘 오랜만에 이 앱에서 알림이 왔다. 구름이 가득 낀 날씨인 데다가 (구름이 많으면 오로라를 보기가 힘들다), 내일은 비바람이 예보되어 있어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앱을 열어봤는데.

정말 역대급 오로라 예보가 떴다. 정말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예보 수치.

오로라 볼 확률 무려 95%.


오로라 앱 - 오로라 예보


애들의 취침 시간은 이미 지났지만, 내일이 토요일이라는 핑계를 대며 또 다 같이 오로라를 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오늘은 반드시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품고.


집에서 차로 15분 떨어진 거리에 농장이 있는데, 빛이 적고 들판이라 조용할 것 같아서 그 장소를 이동하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벌써 드문드문 선객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밤 10시가 넘는 시간에도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중이었지만, 우리는 차분히 오로라를 기다려 보기로 했다.


해질 무렵 동네 근처


그런데 하늘이 점차 구름으로 뒤덮여갔다. 구름 색을 보면, 너머에 오로라가 떠 있는 게 분명한 것 같은데. 결국 초승달 마저 가린 구름 때문에 오로라를 볼 길이 없을 것 같았다. 잠잘 시간이 한참 지난 애들이 차가 불편하다며 칭얼거리기 시작했고. 오로라를 쫓으러 나온 지 한 시간도 채 안 돼서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확률은 95%지만 구름 때문에 안 보이는 거겠지.... 하며.


어둑해지는 중 - 오로라를 기다리며


차에서부터 자기 시작해서 집에 오자마자 쓰러져 잠든 애들을 눕히고, 신랑과 드라마 한 편을 보기 위해 넷플릭스를 켰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갑자기 뒷마당에 나갔던 남편이 허겁지겁 들어왔다.


"자기야, 이거 봐"

신랑의 핸드폰에 담긴 사진을 보고 나도 눈썹이 휘날리게 뒷마당으로 나갔다.


뒷마당 오로라와 밤하늘의 별


오로라. 오로라를 드디어 만났다. 그것도 집에서! 정말 말이 안 나왔다. 가장 흔하다는 녹색과, 보기 힘든 홍, 보라색. 눈으로 보는 건 사진에 찍힌 것처럼 강렬하진 않았지만. 드디어 오로라를 만났다는 기쁨에, 눈으로 카메라로 연신 오로라를 담았다. 카메라 안에서도 시시각각 변하는 오로라 때문에 내가 반팔을 입었다는 사실도 잊고 연신 사진을 찍었다.


분명 하늘엔 별이 떠 있는데.

구름도 없는데.

눈앞에 신비가 펼쳐졌다.

하늘에서 잠깐 물러나 준 구름까지. 정말 환상의 조합이었다.


우리 집 처마 끝에 오로라


오로라 커튼


그렇게 내 머리 위에 머물던 오로라는 서서히 사라지고, 밤은 더욱 깊어졌다.

뒷마당에서 오로라를 보는 행운이라니. 나도 이런 글을 올릴 수 있다니. 감개가 무량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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