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왔다. 서울에서 자카르타까지 몸이 오는데는 7시간이 걸렸는데 짐이 오는데는 꼬박 한달이 걸렸다.
이삿짐이 오기 전에는 정말 미니멀리즘의 삶이었다. 숟가락도 다섯 개 뿐이고 옷도 티셔츠 몇 장이 전부였다. 이렇게 단출한 생활이 가능할까 싶었는데 가능했다.
어느새 배 타고 오고 있는 이삿짐 한 컨테이너는 마음의 바다에서도 둥둥 띄워 잊어버리고는 단순함과 무소유가 원래 내 삶이었던 듯 무엇을 원해야하는지도 모르고 한달을 살았다. 아니 적응했다. 세상 큰 집에 방마다 텅빈 공간을 보며 그 깔끔함과 단정함에 뿌듯했고 더이상 아무것도 이 집에 들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같은 것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어느새 굴러갔는지 이삿짐이 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안에 뭐가 있었더라?' 처음 든 생각이었다. 그새 까먹어버린거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쓰며 살았었는지. 굵직굵직한 물건들이 떠올랐지만 그건 다가올 짐의 절반도 되지 않는 숫자일 뿐이었다. 이 집을 가득 채울 내 삶의 흔적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턱턱 막히는 것 같기도 했다. (해외이사에서 빠진 품목이 있는지 체크를 하고 배상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있는데 그때 내 마음은 우연히, 어쩔 수 없이, 부득이하게 빠진 품목이 있다면 그대로도 참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이삿짐은 서울의 먼지와 함께 도착했다. 끊임없이 들어오는 그들의 품목과 번호를 확인하며 점점 좁아지는 나의 공간에 스트레스도 한 숟갈 얹어지는 것 같았다. 짐을 포장했던 박스가 해체되어 나가고 이사를 도왔던 업체와 짐꾼들도 나가고 이 집에는 재회한 짐들과 내가 덩그러니 남았다. 저렇게 꼬질꼬질 했던가. 저렇게 지저분했었나. 굳이 여기 타국까지 저것들을 왜 싸들고 왔을까. 집은 엉망진창이고 짐은 뒤죽박죽 쌓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니 따스했다.
아니 그들이 숨을 쉬고 있었다.
오랜 잠에서 깨어나고 있는 것처럼 조금씩 서서히 숨을 쉬면서 우리와 함께 호흡했던 과거로 돌아가고 있었다. 예전에 늘 그랬듯 우리에게 편안함을 주고 있었다. 그냥 먼지 쌓인 짐이 아니었다. 우리가 살던 아파트가 그립다며 낯선 집에서 울먹이던 둘째는 이삿짐이 온 다음에야 집이 덜 무서워졌다고 말한다. 함께 한 시간이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인가보다.
그렇게 나는 이삿짐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