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집 이사 후 한 달. 24층 고층 아파트 창밖 세상은 무심하게 돌아갔고, 저는 끝없는 집 정리의 피로에 갇혀 있었습니다. 가까스로 집안일은 끝냈으나, 한 달간의 집안 생활은 외출이 귀찮아져 오늘, 내일 하며 운동하기를 미루었습니다.
그러던 중, "재부여고 동창회 산악회, 통도사 트레킹."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모임이었지만, 우리 동기 5명이 동행한다길래 참가 신청을 했습니다. 오랜 망설임 끝에, 낯선 산악회의 트레킹에 처음으로 몸을 실은 것입니다. 목적지는 고즈넉한 통도사였습니다.
우리 동기들이 탄 차가 통도사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42명의 다른 동문을 태운 버스가 도착하기 전이었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며 화장실 갔다가 손을 씻는 중, 낯익은 한 분과 마주쳤습니다. 그분과의 짧은 대화 끝에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분은 다름 아닌 우리가 그등학교 때 30대 초반이었던 영어 선생님, 양 선생님이셨던 것입니다! 열정적이고 예뻤던 선생님은 세월의 흔적을 안고 계셨지만, 아직 정정하셨습니다. 친구들은 우르르 몰려나와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현재 통도사에서 문화해설사로 활동 중인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과의 만남은, 이번 순례의 깊은 의미를 더하는 서막이 되었습니다.
트레킹은 명소 무풍한송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수백 년 된 소나무 숲길은 이름처럼 바람이 춤추는 듯한 청량함을 선사했습니다. 그 옆에는 졸졸졸 계곡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 길에 들어서자 고민들은 사라지고 뿌듯한 마음으로 길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60이 넘은 우리 동기지만 80세 선배님까지 계신 산악회에서 어린 축에 속했습니다. '자연스럽게 후미에서 뒤처지는 선배님들을 모시고 따라가는 임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선배님들이 익숙하지 않은 얼굴들이 많아서 우리는 배낭을 멘 일반 탐방객들까지 동문인 줄 알고 과도하게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배려가 지나친 나머지, 우리는 결국 본대와의 거리가 아득히 벌어졌습니다.
뒤늦게 본대에 합류했을 때, 단체 사진을 찍는 순간이었습니다. 다른 탐방객들을 챙기느라 지체되었던 우리의 후미는 뛰어가서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모두가 모여 교가를 불렀을 습니다. 50년이 더 지났지만 교가 가락은 모두의 입에서 작게 흘러나와습니다.
'오늘도 진리의 휘영청 푸르름 아래 비봉산 초목들이 피고 지고 겸양하듯~~~~~."
여러 기수들이 섞여있어 얼굴은 익숙하지 않지만 교가를 모두 기억하기에 동문들 간의 끈끈한 유대감만이 가슴 속으로 파고들었습니다.
트레킹코스인 안양암 가는 길, 시원한 소나무 숲길을 가로지르는 새 데크길은 더욱 힐링을 하게 했습니다. 멋진 홍교를 건너자 인공연못 보경호가 나타났습니다. 이곳을 한 바퀴 돌면 좋은 일이 생기리라는 말에 퍼뜩 한 바퀴를 걸었습니다.
이곳 보경호에서는 수면 위에 옻칠작품을 띄우고 물위 전시회를 했다고 합니다. 영축산과 호수와 작품이 어우러졌을 장면을 상상해봤습니다. 이 길은 무장애길 완만한 트레킹코스였지만 어느 곳보다도 풍경이 아름다웠고 마음을 포근하게 가라앉혀 주었습니다.
회색빛 새 한마리가 주인인양 바위에 앉아서 우리가 호수가를 갈 때부터 떠나올 때까지 그대로 앉아 반겨주었습니다. 새로 생겨 호수는 아직 어색하지만 영축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멀리 보이는 하북면 일대가 한눈에 보이는 명당자리였습니다.
오전 일정은 무풍한솔길과 안양암 가는 데크를 걷는 순례길이었습니다. 소나무와 계곡을 즐기며 걸었고 친구들이 있어 즐겁고 소나무의 피톤치드가 있어 머리가 서늘해지는 멋진 길이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서운암으로 갔습니다. 장경각을 양 선생님이 열정적으로 설명을 하고 계셨다. 용학스님과 오지스님, 그리고 성파스님의 이야기부터 하셨다. 팔만대장경이 몽골등 외침은 막아내려는 구국정신으로 제작되었듯이 이 도자대장경판은 남북통일을 기원하며 만들었다합니다.
서운암은 장수천 개의 장독이 옹기종기 모인 '된장 암자'의 풍경도 놀라웠지만, 가장 경이로운 장관은 장경각 앞마당에 있었습니다.
장경각 앞 연못에는 국보인 울산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이 옻칠과 칠기로 재현되어 물속에 잠겨 있었습니다. 이 실물 크기의 옻칠 작품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 오랜 세월 물에 잠겨 훼손될 위기에 처했던 반구대 암각화의 비극적인 현실을 상기시키는 듯했습니다. 특히 이 작품을 만든 통도사 방장 성파 스님은 옻칠의 대가로, 물과 칠이라는 상반된 요소로 역사와 보존의 염원을 극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이 서운암의 독특한 '수중 전시'는 국내외의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특히 서운암이 담은 염원처럼, 이듬해 국보 '반구천 암각화'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는 쾌거를 이루면서, 서운암의 시도가 암각화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는 데 크게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또한, 내년에는 하버드대학교 동양학과 연구팀이 서운암을 방문하여 16만 도자대장경과 옻칠 암각화의 복합적 의미를 연구할 예정이라는 소식은 이 공간의 역사적, 예술적 중요성을 더욱 부각했습니다.
16만 도자대장경의 충격
옻칠 암각화 연못 뒤편에는 16만 3천여 장에 달하는 도자대장경이 봉안된 장경각이 웅장하게 서 있었습니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흙으로 빚어 새긴 이 거대한 불사는, 단순한 경전 보존을 넘어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웅장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장경각의 천장은 검은 옺칠로 칠해져 있었고 웅장했습니다. 칸막이는 나무대신 대리석이었고 자연순환식으로 공기의 흐름이 조절되며 온도도 조절된다고 합니다. 16만 장을 쌓아둔 장경각은 규모가 컸습니다. 처음에는 양옆으로 쌓여 있었는데 차츰 미로가 되었습니다. 한참. 미로를 돌고 나서야 빛이 보였습니다. 무엇을 적었는지 볼 수 없지만. 그 규모에 경이로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인간의 거대한 염원과 수행의 규모 앞에서 우리는 말을 잃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평안과 깨달음을 얻는 '마음의 길'
서운암의 압도적인 장관, 무풍한송길의 서늘한 기운, 그리고 예상치 못한 선생님과의 재회까지. 통도사 순례는 단순한 트레킹이 아닌, **'갇혀 있던 일상으로부터의 해방과 성찰'**이었습니다.
장독을 빚는 정성과 경전을 새기는 오랜 염원,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넉넉히 감싸 안는 영축산의 품은 화려함 대신 고요함과 깊은 마음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했습니다. 24층 아파트에 갇혀 있던 무기력함은 사라지고, 발길 닿는 곳마다 넓은 땅과 시원한 하늘이 주는 해방감과 평안이 그 자리를 채웠습니다.
통도사는 눈으로 보는 아름다운 경치뿐 아니라, **마음의 평안과 깨달음을 얻는 '마음의 길'**이었습니다. 재부여고 동창회 산악회 덕분에 새로운 발걸음을 시작할 수 있었고, 지친 일상에 깊은 쉼표를 찍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