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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산실 금속공예가 Apr 05. 2024

2. 시작은 아무것도 모르고 (10대)

고등학교 2학년, 당시 공부에 대한 흥미가 없었던 나에게 부모님은 미술 대학을 제안하였다. 우리 가족 또는 친척 중에 미술을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예술은 재능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지만, 남들 다 가는 대학은 가기 위해 미술 학원을 등록하게 되었다.  하지만 90년대  말 당시 미술 학원은 소묘와 패턴 디자인 교육을 하던 시기였다. 예술보다는 노동에 가깝게 느껴졌다. 제한된 시간 안에 정답을 찾는 교육 방식은 답답하기만 했다.


학교에서는 입시 정보를 얻기 위해 미술부 활동을 하였다. 재능 있는 친구들이 있어 어울리게 되었다. 머릿속의 생각을 그림으로 척척 그려내는 친구를 보니 노력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벽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 친구는 아직도 미술을 하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잘하지 못하니 당연히 재미도 느끼지 못했다. 지금 부모가 된 입장에서 과거의 나를 보면 한심하고 시간과 비용이 아까웠다는 생각이 든다. 진정한 목표가 없었으니 그림도 완성을 못하고 끄적이다 말았던 것이다.


유일한 즐거움이라고 한다면 학원 수업이 끝나고 만화방으로 달려가서 소년 점프를 읽던 시간이었다. 학원 수업 후 30분 정도 읽는 만화는 위안과 즐거움을 선사했다.


고등학교 3학년, 대학 입시를 앞두고 미술 실기를 준비하면서 실력이 많이 늘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고 압박감은 그림을 끝까지 그릴 수밖에 없게 하였다. 이 경험을 통해 무엇이든 끝까지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성취감도 느낄 수 있었다.


만약 그 당시 이 사실을 알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운영했다면, 고등학교 3학년 막판 6개월 정도만 미술 학원을 다녔을 것이다. 물론 그 이전의 경험들이 헛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막판 6개월 동안의 집중한 그림의 양이 이전 1년 동안 그린 그림보다 3배는 더 많았다.


나는 수능 점수에 맞춰 금속공예과를 지원했고, 3번째 대학 실기 시험을 보는 과정에서 한 곳에 합격하게 된다. 더 이상 다른 시험을 볼 필요가 없어 좋았고, 재수를 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돌이켜보면, 노력에 비해 매우 효율적인 고등학교 생활이었던 같다. 부모님은 나에게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트레스 없이 즐겁게 고등학교 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시작은 아무것도 모르고 별 다른 고민 없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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