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칼을 품은 사주라고요?

우울증 치료 종결, 그 후

by 흔들리는 민들레








칼을 품은 사주?



지금에 와 지난 인생을 돌아보면 언제나 이해할 수 없는 일들 투성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고, 내게는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났나, 나는 왜 그렇게 살아야 했으며, 나는 왜 지금의 나인가에 대한 무수한 질문들을 계속 마주하면서 살았다. 세상 사람들은 궁금하지 않은 듯 보였다. 나는 모든 게 궁금했는데 사람들은 삶이 그렇지 뭐,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고독했다. 나만이 안고 있는 무거운 납덩어리 같은 질문들을 어찌할 수 없어 버거웠다. 버릴 수도 없고 버려지지도 않는 질문들..

나는 알았다. 내 안에 그런 것들이 있고 그것은 때로 복종의 거부로, 때로 타협되지 않는 고집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그걸 모른 척하고 싶어서 어쩌면 더 노력했는지 모르겠다. 좋은 자녀이기 위해, 좋은 여성이기 위해, 좋은 아내이기 위해, 좋은 며느리 좋은 엄마이기 위해..


사람은 생긴 대로 살아야 한다. 그래야 자기만의 고유한 삶을 꾸릴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본성대로 살지 못했다. 본성대로 사는 사람이 어디 있나?라고 누군가 물을지 모르지만 과도하게 본성대로 살지 못했다. 그러나 그래서 내 안의 칼을 보존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칼



사주를 볼 때마다 듣는 말이 칼이 들었다는 말이다. 마음을 다스리지 않으면 관재수가 따르고,

폭력적이 되거나 사고로 크게 다치거나, 큰 병이 걸릴 수 있다고 했다. 피를 보는 직업, 병원에서 일을 하는 게 좋다고 했다.

언뜻 들으면 나쁜 말 같지만 지난 삶을 돌아보았을 때 내 사주에 그런 살(?)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지금까지 살아있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평범하지 않은 삶이었지만 아직까지 살아있는 것은 내 안의 칼 때문이다. 복종과 순응만이 요구되었던 삶에서, 어떤 의지처나 기반이 전무했던 이 삶에서, 글을 쓰고 책을 내고, 공부를 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내 안의 칼 때문이라 생각한다. 짓밟히고 찢길 때마다 더 독한 마음이 생겨났던 것, 진심으로 누군가를 간절히 죽이고 싶어질 때마다 글을 쓸 수 있던 것은 결코 꺾이지 않는 내 안의 칼 때문이다.








칼만큼이나 날카로운



칼만큼이나 날카로운



우울을 통과할 때는 알지 못했으나, 지나옴으로써 알게 된 것들이 있다. 그것은 나의 우울이 휘둘러지지 않은 칼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 칼은 무딘 칼, 날이 없는 칼이었기에 사용할 수 없었다. 상처받았던 지난 시간들은 무딘 칼날이 갈려지는 시간이었고 이제 나는 그 칼을, 칼만큼이나 날카로운 펜으로 사용하고 있다.


우울증을 통과하던 그때, 내게 박힌 칼들을 뽑아냈다. 나는 그 꼴도 보기 싫은 칼들을 버리지 않고 내가 탄 배에 꺼내놓았다. 칼들을 바다에 던져버리지 않은 것은 지 않기 위해서이다. 나는 그 칼들과 함께 노를 저어 목적지를 알 수 없는 나만의 길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우울증으로 깨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