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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들리는 민들레 Jul 04. 2024

49-1. 손수 경험한 꼭지가 돈다는 말

당신과 나의 고통



손절


손절


화가 많은 편이 아니라 크게 화낼 일이 없다. 누군가 무례하게 대한 대도 그건 그의 일이지 나의 일은 아니니 언짢은 선까지만 가지 극렬한 분노까지 가지를 않는다. 누가 치고 가도 바쁜가 보다 잘 못 봤나 보네 하고 마는 편이다.

이런 내가 꼭지가 돌았다. 꼭지가 돌았다는 말을 문장으로만 들어봤지 직접 체험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는 친정엄마와 손절했다. 그리고 삶의 질이 높아지고 더 행복해졌다. 그렇게 내 일상을 하나하나 잘 살아나가고 있었다. 늦게 시작한 대학 공부에서 학년 수석도 해보고 장학금도 계속 받았다. 무엇보다 건강이 좋아졌다. 만성적인 염증 반응이 사라지고 불면증도 사라졌다. 아이들에게도 더 집중하며 소소한 추억을 만들었다.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직업도 갖고 싶어졌다. 글도 계속 썼다. 내 책을 읽은 분들이 멈출 수 없어 단숨에 읽었다고도 해주셨다. 기쁘고 행복했다.


친정엄마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물론 가지도 않았다. 명절, 어버이날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그렇게 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나는 그분에게 한 백만 장쯤의 옐로카드를 내밀었는데 그분은 받아들이질 않았고, 레드카드로서 그분을 퇴장시켜야만 했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었다.





은혜를 갚아라



혜를 갚아라.



나는 왜, 그래야만 했을까? 엄마는, 자신의 형제들에게 의존하며 살기를 바란다. 정말 힘들 때 받은 도움을 갚고 싶어 한다. 본인이 갚으시면 될 것이지만 내가 갚아야 한다고 한다. 좋은 일이 생기면 내가 그분들을 불러 직접 음식을 차려 식사 대접을 하길 바란다. 장례식 결혼식 반드시 참석하길 바란다. 나는 그럴 수 없다고 무수히 말했다. 엄마가 갚으시라고 하니 부모가 능력이 없으니 자식이 갚아야 하는 거라고 했다. 그건 당신의 마음이니 당신이 해야 한다고 했지만 듣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는 내가 이기적이고 나쁘다고 했다.



나는 유년 시절 내내 거추장스러운 짐 덩어리 취급을 받았다. 나를 경멸하는 열 개가 넘는 시선을 받으며 성장했다. 엄마가 너 때문에 고생하면서 사니까, 엄마가 너 때문에 재혼도 못하고 사니까 너는 효도해야 한다는 말을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들으면서 살았다.

나는 현관 발판 같은 취급을 받았다. 스무 명이 넘는 어른들이 있었지만 누구도 내게 따듯한 말 한마디 시선 하나 주지 않았다. 나는 쓰레기통처럼 언제나 구석에 찌그러져 있었다. 가족들이 모일 때면 그 자리가 불편해서 밥도 먹지 않았다. 남은 그럴 수 있다. 남이니까. 가장 슬프고 속상하고 화가 났던 건, 엄마가 나를 그렇게 대했다는 데 있었다.







최악 중의 최악


최악 중에 최악



/ 엄마가 날 보고 살고 싶으면 엄마 형제들과 나를 연결하지 마.

/ 넌 어쩌면 그렇게 이기적이니?

/ 내가 뭘 얼마나 더 해야 하는데!!

/ 네가 뭘 한 게 있다고 그래?

/ 내가 그 사람들한테 받은 취급이 뭐였는 줄 알아?! 엄마를 거추장스럽게 만드는 짐 덩어리였어! 근데 은혜를 갚아?! 무슨 은혜??!

/ 내가 재혼도 안 하고 널 키운 게 잘못이다.

  그래, 내가 걔네한테 말할게. 너네가 짐 덩어리             취급해서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단다. 그러면 되지? 이 돈은 지난번에 너네 시댁 장례 치를 때 부의금 걔네가 모아서 주더라. 네가 받아서 쓰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 그리고 남은 돈은 내가 모은 거니까 부담 없이 쓰고.



신문지 뭉치가 식탁에 놓였다. 엄마는 내게 돈을 주러 왔다. 자기 통장에 잔고가 많으면 영세민 지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내가 돈을 가져야 된다고 했다. 나는 싫다고 했다. 엄마 것이니 엄마가 관리하라고 단 1원도 싫다고 다시 가져가라며 엄마 가방에 신문지 뭉치를 넣었다.


그리고 나는 나가달라고 했다. 엄마는 현관을 나가는 순간까지 말했다.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그리고 한참 후, 전화가 걸려왔고 그녀는 말했다. 현관 우산 안에 돈을 두고 왔으니 그 돈을 가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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