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흔들리는 민들레 Sep 13. 2024

사라져 버린 것들

사라져 버린 것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잃어버리며 산다. 아침에 들고나갔던 우산을 잃어버리고, 머리끈을 잃어버린다. 조금 전까지 귀에 달려있던 귀걸이나 이어폰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지갑이나 카드를 잃어버리기도 한다. 챙긴 것 같은데 어느 순간 보면 없다.



어쩌면 우리는 삶의 모든 과정 속에서 무언가를 잃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물건도 잃고, 사랑하는 부모, 형제, 자식도 잃는다. 건강이나 신체의 일부를 잃고, 돈과 명예를 잃으며, 자신감과 기쁨도 잃는다. 젊음이나 기억을 잃고, 행복과 추억도 잃는다. 그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지기도 하고, 서서히 소멸해 가기도 한다.









과거에 있었던 많은 것들이 이미 사라졌다. 편지, 삐삐, 아날로그 TV, 공중전화, 카세트테이프가 사라졌다. 우리는 초고속 인터넷을 얻었지만, 언젠가는 그것 또한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계속해서 무언가를 상실해 나가는 우리를 향해 글을 쓰고 싶었다. 상실이 삶의 끝일뿐, 관계의 끝은 아니라고 했던 어느 심리학자의 말처럼, 우리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상실 안에 들어있는 관계성을 써보고 싶었다. 상실은 전적으로 '0'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는 것들이 있다. 기억이 사라진다고 해도, 여전히 남겨지는 것들이 있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하나씩 꺼내어 애도할 수 있다.



애도하고 나면 힘이 생긴다. 이 치열하고 지긋지긋한 삶을 살아갈 용기와 의지, 그리고 목적이 생긴다.

그런 것들로 우리는 다시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삶의 치열한 본질이 전혀 변하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 그렇게 다시 끌어올린 힘은 깊은 무게감을 지니며, 그 무게감은 곧 자기만의 권위가 된다. 잃어야 작품이 완성된다. 대리석이 자신을 상실하지 않았다면, <피에타>는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리아는 예수를 상실했다. 그 상실이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는 이유는 상실의 권위 때문이다.










상실이 권위를 가질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아름다운 작품이며, 보편적인 경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분명 상실을 아름다운 작품으로 만들 수 있다. 작품은 위대한 조각가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 조각가가 될 수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