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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제남 Feb 03. 2024

아들의 수학 1등급 도전기.독한엄마3화

자기주도학습: 사교육 필요 없어요~

강원도 산골에서 태어난 나는 고집은 센 반면에 발달은 뭐든 꽤나 늦었었나 보다.

걸음마, 대소변 가리기, 말하기 등 뭐든 느렸다고 한다.

그래서 부모님은 "얘가 커서 뭐가 되려나...사람구실하고 제대로 잘 살 수 있을지" 걱정이 많으셨다 한다.

그런데 한 사람만은 이런 나를 '대기만성형'이라며 꾸준히 지지해주셨다고 한다.

바로 같은 마을에 사시던 작은 아버지였다.

작은 아버지는 아기였을 때 고열로 인해 한쪽 눈의 시력을 잃으셨다.

후유증으로 한쪽 안구가 흰자위만 있는 것처럼 보여서 자라면서 놀림을 많이 받아 마음의 상처가 크셨다.

그래서 이심전심이셨는지 가족들이 나를 걱정할 때마다 항상

"원래 이런 애들이 커서 더 큰 사람이 된다. 걱정 마시라"라며 늘 내 편을 들어주셨다고 한다.

늘 내편을 들어주신 지금은 고인이 되신 작은아버지께 항상 감사한 마음이었다.


작은 아버지의 지지와 응원 덕분이었을까?

나는 국민학교에 들어가면서 점점 머리가 깨어났는지 이해력이 점점 나아졌나 보다.

그 당시에는 너무 싫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정말 고마운 일은

국민학교 4학년 담임이셨던 오명환선생님의 '산수나머지 공부'이다.

강원도 산골이라 담임선생님은 학교 뒤편에 있던 교사 사택에서 지내셨다.

어떤 기준으로 나머지공부 학생들을 선정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꽤 여러 학생들을 남겨서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나머지 공부를 시키셨다.

아버지는 내가 성인이 된 후에도 오명환선생님을 춘천시내에서 우연히 가끔 만나셨다는데,

그때마다 선생님은 제남이가 머리가 좋아서 수학을 잘했다고 칭찬하는 말씀을 하셨다며 여전히 흐뭇해하셨다.

수학을 못해서 나머지공부를 시키셨는데 수학을 잘했다고 칭찬하셨다니....

추측하건대 아마도 내가 나머지공부 덕분으로 점점 수학공부를 잘하게 되었나 싶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몰라도 나는 두 아이를 기르면서

학교공부를 믿었고 아이가 스스로 공부하는 자기 주도적 학습이 가능하도록 기르려 노력했다.

 

그런데 둘째인 아들애가 중학생이 되면서 시험을 보면 수학점수가 다른 과목에 비해 너무 낮게 나왔다.

스스로 성실하게 노력하는 모범학생이었는데 수학점수만은 평균 70점대였다.

평소 예체능 외에는 교과학원은 안 보내는 것을 원칙으로 생각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는데 고민되었다.

내가 국민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의 나머지공부로 처진 나의 수학공부를 보충해 주셨듯이 보충학습의 차원에서

보완적으로 방문수학지와 수학학원을 한 학기 정도 시켜보기도 했다.

수학학원선생님은 이해력이 좋아서 수학성적이 오를 거라 장담했지만 시험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학생마다 잘하는 과목이 있고 못하는 과목도 있는 게 자연스러운 모습이고,

아들은 문과특성이 강한가 보다 생각하며 학원을 더 이상 보내지 않았다.


일반중학교를 다니던 아들은 고등학교는 좀 더 다양한 경험과 자율적인 학습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보내고 싶어서 사교육을 시키지 않는다는 각서를 쓰고 입학하는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아들애의 수학성적은 고등학교 가서도 여전히 한 번도 1등급을 받지 못했다.

아들애는 시험 후에는 늘 다 아는 문제인데 실수로 틀렸다며 아쉬워했다.

그러면 나는 반복적으로 실수를 하는 것은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곤 했다.

나는 아들애가 수학공부하는 모습을 가끔 보게 되면 약간의 훈계를 했다.

수학문제를 푸는 연습장이나 문제집을 보면 문제풀이를 이곳저곳에 흩트려놓아서

풀이 과정을 검산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어떤 부분에서 실수를 했는지 알아야 반복된 실수를 안 할 텐데 찾을 수가  없었다.

아들애가 목표하는 대학 희망과에 합격하려면 수학성적은 극복해야 할 과제였다.


고등학교 2학년 말 겨울방학이 되었다.

아들애는 이번 겨울방학에는 수학을 반드시 정복? 하겠다고 결심했다며

겨울방학 내내 책상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밥 먹을 때를 제외하곤 거의 수학공부에 매달렸다.

자신이 택한 수학참고서를 펴놓고 혼자 공부하는 방식이었다.

이전과  달라진 점은 연습장을 세로로 접은 후 문제풀이를 차근차근 적어 내려갔다.

 틀린 문제는 꼼꼼히 검산을 하며 실수한 부분을 찾아내서 다시 풀어보곤 했다.

이렇게 겨울방학 두 달을 꼬박 보냈다.

이런 아들의 모습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

고3이 된 후 첫 모의고사성적이 나왔다.

결과는 정말 놀라웠다.

수학점수가 1등급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 계속 1등급을 유지했다.

나는 놀라워서 아들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더니 그냥 기본부터 꼼꼼하게 공부한 것뿐이라는 대답이었다.

사실 옆에서 지켜본 나로서도 다른 특이점은 발견할 수 없었다.

지금도 고2말 겨울방학 두 달 동안 수학공부에 집중해서 수학을 극복한 이 상황이  신기하다.


결국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이고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공부도 하나의 재능일 것이고, 어떤 재능이던 닦아야 빛을 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어른들이 아이가 그 능력을 스스로 발휘할 수 있도록 믿어주고 기다려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믿고 기다려야 할 절대적 명분은, 사람마다 성장하는 속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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