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승철 Oct 28. 2024

우리는 왜 공부하는가?

-이공계 대학생 편-

필자가 학부를 졸업한 지도 어연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전공은 화학이었다)

학부 때 배운 내용이 기억나는지 묻는다면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화학과라고 하여 화학 과목만 배우는 것도 아니었다. 미적분학, 일반물리학, 일반생명과학, 선형대수학, 프로그래밍, 일반물리실험, 일반화학실험, 그리고 다양한 교양과목까지. 2015년에 1학년이었던 나는 이렇게 많은 과목을 소화하면서 화학을 공부하는 내가 도대체 왜 이런 걸 다 배워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러다가 학부 3학년 과정까지를 마치고, 휴학을 1학기 정도 한 일이 있다. 그때, 다양한 책도 읽고 집에서 쉬기도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었는데, 내가 지금까지 배웠던 것이 어쩌면 그 내용을 다 기억하고 암기하기 위해 배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제껏 미친 듯이 밤을 새 가며 과제를 해내고, 시험 준비를 하면서 내 머릿속에 남았던 것은 그 내용과 지식이 무엇이었는지가 아니라, 그 학문의 목차 (목차는 곧 그 학문의 구성이다)와 더불어 그 학문이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예를 들어, 나는 지금도 그다지 코딩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최소한 컴퓨터가 어떠한 방식으로 내가 원하는 명령을 수행하여 나가는지 그 방법은 알고 있다. 그것은 내가 과제를 하면서 사용해 왔던 수많은 반복문과 포인터에 파묻힌 탓일 게다. (참고로 필자는 C언어를 배웠다) 


나는 지금도 물리학이나 수학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물리학이 알려준 다양한 지식과 수학 (미적분학과 선형대수)이 알려준 유용한 도구와 생각하는 방법을 토대로 화학이라는 과목을 이해하는데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나는 지금 유기화학을 전공한 사람이지만, 물리화학과 무기화학이 알려준 다양한 유용한 도구와 사고방식을 가지고 내가 새로이 개발하는 반응을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해 나가는 데 큰 도움을 받고 있다.


사실, 앞서 열거한 과목들에 대해 시험을 지금 당장 본다고 하면, 과연 10문제 중에 2문제는 풀 수 있을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내가 직면한 문제 상황에서 각 과목이 나에게 알려준 생각한 방법과 지식의 목차들을 기반으로 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데 큰 도움을 받고 있다. 


내가 만나는 문제 상황들은 내가 암기하고 있는 지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여 "이건 이런 내용을 찾아보면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런 방식으로 한번 생각해볼까?" 하는 생각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문득, 일반화학 수강 때 교수님께서 하셨던 말이 떠오른다.


"너희가 지금은 머리가 총명하고 기억력이 엄청 좋은 것 같지? 대학 생활 하면서 술 마시고 그러다 보면 그 기억력은 한순간임을 알게 될 거야. 그렇지만, 공부는 기억력 만으로 하는 건 아니야." (교수님, 진짜 그렇습니다)


교수님의 이 말씀이 다시 한번 나에게 다가온다.


우리는 어떤 지식을 외우고 암기해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지식을 접하고 이해하면서 내 머리 속에 남은 생각하는 방법과 그 지식의 목차를 익힘으로서 온전한 내 것이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수 많은 정보와 저장매체가 존재하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컴퓨터와 경쟁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을 무조건 불편해하고 슬퍼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컴퓨터가 우리보다 잘 하는 능력 (기억력, 연산 능력 등등)을 잘 활용하여, 인간인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 옳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할 때 우리의 진가를 발휘한다.

작가의 이전글 나에게 종교란 무슨 의미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