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울증에 관하여 #02
정신과 약을 먹으면서 커피를 먹으면 더 안 좋다는 걸 알지만 중독에 약한 나로서는 커피를 끊는다는 것은 참 힘든 것 같다. 일단은 조금씩 천천히 줄여나가야겠다.(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술은 끊은 것 같다. 올해 초에 트락손정을 처방받아 복용한 것이 효과가 있었겠지만, 내 생각엔 그것보단 직장생활 때문에 떨어진 체력이 술을 감당하지 못해서 어쩌다 보니 금주가 되어버린 듯하다.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술을 못 마시게 된 것 같다. 이러나저러나 잘된 일이라고 해야 할까나. 오늘도 이브 출근길에 컴포즈에서 헤이즐넛 아아를 하나 사들고 열심히 출근을 했다. 이렇게 오늘 하루도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스스로에게 칭찬해 본다.
성격은 유전적인 영향도 있겠지만 유년기의 경험으로 인해 형성된다고 생각한다. 부끄럼이 많고 내성적인 사람이어도 따뜻한 가정에서 부모님의 사랑과 신뢰를 받으며 자란 사람은 심리적으로 안정적이며 자존감, 회복탄력성이 높다. (물론 예외의 상황도 있겠지만 대체적으론 그렇다고 생각한다) 유년기에 형성된 가치관과 성격은 평생 그 사람의 삶에 영향을 주며, 한 사람의 인생에 든든한 지반이 되어 줄 수도 있고, 아니면 끝없이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습지의 늪이 될 수도 있다. 나는 16살 이후 특정 브랜드의 향수를 맡으면 구역감이 치솟고 그때의 기억으로 흡수되는 경험을 한다. 그건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나의 정신적인 상처에 의해서이다. 물론 그 향수의 향이 역하거나 호불호가 특별하게 갈리는 향은 아니다. 어찌 보면 무난할 수 있는 향이다. 그렇지만 그 향에 덮인 나의 기억이 내 몸 상태를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이젠 잊었다 싶다가도 매번 그때 그 자리에 나를 서있게 만든다. 이것이 트라우마인 것이다. 모든 고민을 혼자서 해결해야 했고, 아파도 아프다고 말할 수 없었던 시절들. 지금 생각하면 한없이 어렸을 나이에. 그 나이 자체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늘 그 이상의 성숙함이 요구되었던 그 시절들. 기억을 할 수 있을 나이부터 결혼 전까지 내가 겪어왔던 모든 것들은 다시 또다시 가시가 되어 내 안에 박혀온다. 물론 안 좋았던 기억만 있었던 것은 아닐 텐데. 기억 어딘가에 있을 좋았을지 모를 기억들은 모두 잃어버려 찾을 수도 없고 울고 있는 어린 내가, 세 아이의 엄마가 된 나를, 끝없이 서럽고 아프게 만든다.
"햇빛도 보고 사람들도 만나고 운동도 꾸준히 하면 나아질 거야. 약에 의존하는 건 좋지 않으니깐 조금씩 줄여보자"같은 말들을 한다. 웃기지 마라. 나는 매일 햇빛을 보고, 사람도 만나고, 운동도 한다. 노력을 안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울하고 죽고 싶은 마음이 들뿐이다. 병에 걸려 이런 상태인 것이 왜 잘못이 되는가? 나라고 병에 걸리고 싶어서 걸린 게 아닌데.
우울장애의 두드러지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바로 우울한 기분이며 생각을 재생산한다는 점이다. 우울장애에 시달리는 사람은 주위 환경과 관계없이 우울해한다. 또 모든 경험과 사건에 대해 우울한 전망을 전제로 예측하기 때문에, 그 어떤 노력이며 해결책도 무의미한 것처럼 여겨진다.
반드시 살아가야 할 이유 같은 건 없다. 그저 흐르는 시간에 맞서 싸우며,
매일같이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내게,
최선을 다해 우울해하는 것쯤은 허락해 주기로 했다.
<최선의 우울 - 이묵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