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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한 자유 Sep 22. 2024

한 번뿐인 삶, 다시없을 오늘!

최진영의 '단 한 사람'을 읽고

 죽음을 목전에 둔 많은 사람들 중 단 한 사람만을 구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을 선택조차 할 수 없는 그런 운명이 나에게 주어진다면 어떨까?

 「구의 증명」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처절하고도 절절한 의식으로 충격을 주었던 최진영 작가의 작품이라 다소 몽환적인 내용일 거라 짐작을 하고 페이지를 쉼 없이 넘겼다. 실제 다음 내용과 결말이 궁금해서 참을 수 없는 숨으로 읽혔다.  한 강 소설처럼 호불호가 있겠지만 여성작가의 섬세한 표현들이 이 작품 또한 인상적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가 죽을 뻔한 사람을 구하라고 지시하고 꿈인 듯 현실 세계인 듯 모호한 세계에서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운명을 타고난 모녀의 이야기다. 처음 그 일은 할머니 임천자에서 시작되어, 엄마 장미수, 그녀의 딸 신목화로 3대에 걸쳐 이어지고 마지막엔 신목화가 아이를 갖지 않을 것을 미리 알게 된 신적인 존재가 조카 루나에게 그 일을 이어나가게 하는 것으로 운명은 연결된다. 여러 사람이 죽는 꿈으로 소환되어 신적인 존재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데 어떤 단 한 사람을 구하라는 중개자의 일을 이행하지 않으면 바로 응징을 한다. 극심한 두통이나 종일 이어지는 구토에 시달려야 한다. 목화는 처음 꿈을 꾸고 나무를 보았고 그 목소리를 들었기에 신적인 존재를 나무라고 불렀다.     


 초반부부터 소설 전반을 이루는 핵심적인 사고관은 미미한 점에 불과한 인간을 향한 지구의 주인인 나무의 응징과 사랑이다. 나무는 수천 년 동안 인류가 존재하기 전부터 지구의 주인이었는데 어느 날 나타난 인간이라는 존재는 수많은 나무를 자르고 불사르고 핵폭탄으로 전쟁을 일으키며 자연을 파괴했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나무가 인류라는 종을 살리고 싶을까? 그럼 에도 불구하고 나무는 인류를 구한다. 초자연적인 정체로 주인공 목화의 꿈에서 사람을 살리지만 죽어 마땅한 방화범이나 가족폭력범 살리라고 지목하고 불을 끄려는 소방관과 폭력을 당하는 자를 희생시킨다. 나무는 이를 통해 인간에게 가르침을 주려고 한 듯하다. 인간의 만행을 용서하고, 원수와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불의한 자의 목숨 또한 소중하니 삶의 기적을 선물하는 것이라고.     


 죽어가는 사람을 보는 꿈에서 3대 모두 벗어나고자 했으나, 운명을 받아들이는 방식의 차이가 눈여겨볼 만했다. “임천자에게 단 한 명은 기적, 장미수에게 단 한 명은 겨우, 신목화에게 단 한 명은, 단 한 사람, 한 사람을 살리는 일이었다.”게다가 마지막 4대 루나는 세상의 모든 신에게 그 일을 하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를 할 정도로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는 적극적인 사명감까지 띄고 있다. 장미수는 많은 사람들의 죽음 중에서‘겨우’한 명만을 살릴 수 있어 다른 사람들의 죽음 위에 서 있는 삶이란 고통스러워야 마땅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삶을 저주하고 증오하고 경멸했지만 목화는 자신이 하는 일에 의미를 찾고자 했다. 자신의 중개로 살아난 사람이 무사히 살아가고 있는지 나무가 주는 목숨에 시한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사람을 살리는 일에 대한 판단을 멈추고 죽어가는 사람에게 마음을 다해 명복을 빌고, 살아난 사람의 미래에 축복을 전하고 운명을 받아들인다. 자신이 구한 단 한 사람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믿고!     


 읽는 내내 죽음의 의미를 다각도로 생각했다. 죽고 싶어서 죽는 것과 또 죽고 싶지 않은데 죽는 것, 또 죽을 운명이었으나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 누군가를 위해 대신 죽는 것 등등... 삶과 죽음, 상실과 분노, 일어났으나 일어날 수 없는 일, 이해하기 싫고 이해되지 않는 일들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운명 같은 죽음에 대비되는 삶을 증명하는 사람을 살리는 일, 그 일을 하면서도 다 구하지 못했음을 이유로 죄책감에 빠지지 않고 내가 구하게 될 ‘단 한 사람’과 언젠가 누군가가 또 구해줄 ‘단 한 사람’이 나일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되었다. 그래서 주위에 ‘단 한 사람’을 모른 채 살아가지 않고,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묵묵하게 해 나가야지.


 삶의 무게에 짓눌려 우리의 죽음이 가깝다는 것을 망각하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삶과 죽음을 정해진 운명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목화가 했던 것처럼 그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 또한 삶이 주는 선물임을 잊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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