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눈물 펑펑 흘린 사연
아침에 친구에게서 '아이 없으면 하고픈 것들'이라는 글귀를 받았다. 제목을 보고 난 당연히 글이 '이런 것들을 하고 싶다.'라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글일 줄 알았다. 하지만 이내 나의 예상은 틀렸음을 알게 되었다.
아이 없으면 하고픈 것들
영화 보기, 맛집 가기.
여행 가기, 친구 만나기, 공연 보기.
고작 그런 것들.
네가 자라고 나면 지겹고 지겹고 슬프도록 지겹게 할 것들.
그때 꾀꼬리 같은 네 목소리는 동영상 속에만 존재할 테고, 품 안에 쏙 안기는 보들보들 작은 몸은 어색할 정도로 덩치가 커져 있겠지.
하루 종일 엄마, 엄마 부르던 네 마음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을 테고, 엄마가 세상의 전부인 순수한 네 눈빛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거야.
지금 내게 주어진 선물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찰나의 축복임을 아는 것.
내 삶에 잠깐 머물다 가는 반짝이는 귀한 손님임을 아는 것.
(글의 정확한 출처를 모르겠다. 챗GPT에게 물어보니, 정한경작가의 책일 것 같단다. 아시는 분 계시면 알려주세요.)
친구는 이 글을 보며 울고 있다고 했고 곧 나의 눈물 버튼도 눌렸다.
육아를 하며 꿈꾸는 이 사소한 것들이 과연 내 아이들의 이 미치도록 사랑스러운 이 시절과 바꿀 수 있는 것일까.
이 글귀는 아이를 키우며 일탈을 꿈꾸는 엄마들의 생각이 잘못됐다고 꼬집는 글이 아니다. 엄마들은 아이를 키우며 이따금씩 소위 잘 나갔던(?) 시절을 그리워하기도 하고, 아이 없이 어른들끼리만 만나서 보내는 시간을 세상 설레며 계획하기도 한다.
그렇게 조금씩 나만의 숨을 쉬어간다. 자신의 육아스타일 안에서 쉴 수 있는 최선의 숨을 쉬며 간신히 틈을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틈으로 나로서 살아가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게 내면의 휴식을 얻고, 이런 좋은 글을 읽으며 미안함의 눈물을 짓기도 하며 그렇게 이 시간들을 보낸다.
지금 나에게 포옥 안기는 이 작은 몸은 어느새 안기 버겁도록 커져있을 것이고, 나만을 바라보는 눈빛은 친구들을 향해있을 그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매 순간 기억해야겠다.
고학년만 돼도 아이는 몸도 마음도 어마어마하게 자라있을 텐데 첫째가 곧 2학년이니 그러면 2년 남았..? 길게 봐도 3~4년이다. 오. 마이.
한 귀로 들은 엄마의 말을 몸의 모든 구멍을 통해 최선을 다해 흘려보내는 무시무시한 시절이 오면 지금 이 순간들을 떠올리며 동영상, 사진들 뒤적거리며 쪼다처럼 눈물 흘리고 있겠지.
가까운 미래에 덜 쪼다가 되기 위해 엄마가 세상 전부인 지금의 눈빛들과 흩날리는 눈송이 같은 목소리들을 꾹꾹 내 안에 눌러 담아야겠다. 찰나 같을 이 반짝이는 시절을 마음속 보석함에 고이고이 넣어두어야겠다.
그리고 남편과 사이좋게 지내야겠다. 아이들이 엄마를 찾지 않을 때 아이들에게 집착하지 않도록. 쪼다 엄마가 되지 않도록. 남편이랑 놀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