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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왜 아직도 예쁘고 착해?

나는 이렇게 답했다.

by 필로니


8세인 첫째가 엄마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엄마는 왜 아직도 그렇게 예쁘고 착해?"



기분 좋으라고 하는 말인가 하고 쳐다봤는데 정말로 궁금한 표정이었다. 나이를 먹어도 예쁘고 착한 엄마가 신기한 모양이었다.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자식의 인정이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기분이 너무 좋아 하늘을 날아갈 뻔했다.



그리고 이렇게 답했다.

"엄마는 태어날 때부터 예쁘고 착했는데,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예쁘고 착하려고 노력하며 살아서 아직도 이렇게 예쁘고 착한 거야."



엄마의 대답을 들은 아이의 표정은 정말 궁금증을 해결했다는 표정이었다. 아니 8세가 이렇게까지 귀여워도 되니.






누구나 예쁘고 착하게 태어난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예쁘다. 청소년기는 좀 다르다. 나쁘기도 좋기도 하다. 그리고 좋은 청소년기를 보냈더라도 어른이 되면 또 쉽지 않다.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온 듯한 사람들을 제외하고 나같이 평범한 사람들은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세상이다. 좋은 사람이 되려고. 바르게 살려고.



나는 나쁜 청소년까지는 아니지만 참 철없는 청소년기와 20대를 보냈다. 아이를 낳은 후에 나 자신을 위해 노력한 시간만큼 젊었을 때 이런 시간을 보냈더라면 내 인생은 참 달라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건 모르는 일이다. 내가 젊은 시절을 그 따위로(?) 보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일 수 있다. 과거의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현재의 나를 만드니까.



그때 내가 했던 생각들, 만났던 사람들, 보냈던 시간들이 재료가 되어 지금의 나를 제조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좋은 어른이 되고 싶은 이 포부가 생겨나게 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되면서 나는 비로소 철없던 나의 과거도 사랑하줄 알게 되었다.






이제는 과거를 바라보며 원망하거나 후회하지 않는다. 이제는 과거가 아니라 나의 미래가 나의 현재를 만들 거라는 걸 알고 있다.



나는 나의 미래가 행복할 것을 '믿지' 않는다. 나는 나의 미래가 행복할 것을 '안다'. '믿음'은 노력과 의지를 수반해야 한다. 믿기지 않기에 믿는 것이다. '앎'은 노력과 의지가 필요하지 않다. 그냥 아는 것이다.



나는 안다. 내가 늘 작은 성공을 이뤄내며 끊임없이 성장할 것을, 따뜻하고 향기 나는 세상을 만드는데 작게나마 기여할 것을. 그 사실을 ‘알기에’ 지금 하루하루를 정성껏 살려고 노력한다.




내가 실제로 예쁘고 착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예쁘지도, 그렇게 착하지도 않다.) 내가 낳은 나의 아이들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냐는 게 중요하다. 엄마가 아직도 늘 예쁘고 착한 이유가, 끊임없이 읽고, 생각하고, 배우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라고 내 아이가 생각해 주면 난 그걸로 될 것 같다.



아무튼,

과거고 미래고 간에,

오늘, 현재, 지금 여기의 나는

제법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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