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연말
24살 밖에 안 되는 젊은 PT 트레이너 선생님이 물었다. 다이어트하신다고 했는데 연말이라 어떡하냐고. 술약속 같은 거 없으시냐고.
응..? 어색했다. 연말이라고 해서 뭐 별다를 게 없는 시간을 보낸 지 몇 년은 지난 것 같다.
젊었을 땐 매일을 연말처럼 보냈었기에 지금 아이들을 낳아 키우며 연말 파티도 없이 사는 내 삶이 지루하지 않냐, 밖에서 즐기고 싶지 않냐 말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충만한 삶을 살고 있다. 지금 여기 나의 일상이 감사하다.
어제는 아는 엄마와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고 화려한 장식이 반짝거리는 연말 분위기 물씬 풍기는 곳에서,
아이들 문제집을 구경했다. 2학년이 될 아이들의 수학 문제집으로 뭐가 좋을지, 문제집을 잔뜩 쌓아 놓고 시장조사하듯이 샅샅이 살펴보았다.
아, 좋다. 아이 문제집 구경도 이렇게 좋은 곳에서 맛있는 빵과 커피를 먹으며 편안하게 앉아 할 수 있는 북카페가 있어 감사하다. 함께 할 수 있는 지인이 있어 감사하다.
연말이 뭐 별 건가. 젊은 시절엔 늘 연말처럼 술 마시며 살아서 진짜 연말이 별 거 없었고, 아이 둘의 엄마가 된 지금은 매일이 감사한 삶이라 연말에 특별한 걸 하지 않아도 되니 별 거 없다.
별 거 없어서 감사하다. 그 별 거라는 게 늘 매일의 삶에 들어와 있기에, 작은 행복들이 우리 집 식탁에, 소파에, 서랍에 늘 존재하기에 나는 매일이 연말이기도, 연말은 연말이 아니기도 하다.
그런데 딸, 엄마가 이렇게 열심히 수학 문제집 알아왔는데 얘기를 들어보지도 않으려 하는 건 좀 너무하지 않니? 잠시 화를 낼 뻔했으나 꾹 참았다. 맛있는 빵 덕분인 듯.
행복은 빵에서 나온다. 행복하기 참 쉽다.
연말? 빵이나 먹어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