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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쿼카의 하루 Sep 29. 2024

따분한 상담

  원래 고등학교를 들어갔으면 신입생이었을 해의 4월, 나는 중등 검정고시를 치렀다. 문제 수준은 나에게는 평이하다 못해 장난 수준이었고, 무난하게 합격할 수 있었다. 국어, 영어, 수학을 비롯한 6가지 과목의 점수가 거의 100점에 가까웠다. 사실 영어 문제에서 1문제만 실수로 틀린 정였다. 중등 수준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검정고시다보니 까다롭게 느껴지는 부분은 없었다. 학원 원장님과 상담을 해보았는데 이정도 성적이면 고등학교를 진학하는 경우도 고려해볼만하다고 하셨다. 최상위권의 성적이기 때문에, 외국어고나 몇몇 과학고에 진학하는 것도 나의 미래를 준비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원장님과 상담을 나눌 때 나는 나의 목표에 대해서 말할 기회가 있었다.


  "저는 스티브 잡스와 같이 세상에는 없던 발명품을 만들어내고 싶어요"


  고등학생의 나이가 된 나에게는 아직 꿈을 잊은 적이 없다. 매번 집에 걸어 놓은 세 인물의 사진을 본다. 아인슈타인, 잡스, 캐리어. 그들의 사진을 번갈아 가면서 보기도 하고, 그 앞에 서서 눈을 감고 묵상하기도 한다. 나는 꼭 이들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세상에서 그들만이 가질 수 있었던 역할이 있었듯이 나도 나만의 역할, 즉 세상에는 없던 발명품과 이론을 탄생시키고 싶다. 원장님은 내가 참 꿈이 크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서 조언해주셨다.


  "내가 볼 때, 스티브 잡스는 우리에게 아주 유익한 물건인 스마트폰을 창조해내기도 했지만, 동시에 가장 유능한 기업가 중에 한 명이었어. 스티브 잡스에 대해 잘 알고 있니?"


  나는 잘 안다고 답했다. 잡스의 전기를 이미 초등학교 때 읽었기에 나보다 더 잡스에 대해 잘 알 수는 없을 것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스티브 잡스는 스마트폰인 아이폰 뿐만 아니라, 매킨토시, 픽사 애니메이션,  아이팟, 맥북, iOS 등을 창조해냈다.


  "잡스는 프레젠테이션으로 유명한 사람이야. 스마트폰이 워낙 대단하기는 하지. 근데 그거 아니? 아주 좋은 물건도 제대로 마케팅을 안하면 잘 안 팔릴 수도 있다?"


  원장님은 자신의 책상 위 간이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을 하나 꺼내서 쓱 펼쳐 보인다. <사교육은 공교육의 미래다> 자신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런데, 판매 부수가 형편이 없어서 낭패를 봤다고 한다. 원장님의 말로는 이 책이 반기획출판물이라는 것이라는데, 그건 작가의 자비를 조금 들여서 출판을 하는 일을 말한다


  "이 책도, 내용은 정말 좋고 유용한 정보가 많거든. 근데 내가 출판사를 잘못 고른건지, 홍보를 잘 안해주대"


  나는 조용히 듣고 있었지만, 마음으로 당황스럽기 그지 없었다. 표지나 디자인으로 보아 너무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저런 책을 누가 살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제목에서 드러나는 책의 의도도 너무 터무니 없었다. 원장님이 한국이 기본적으로 공교육 중심으로 정치가 돌아간다는 걸 아직 모르시는 건 아닐테고 말이다.


  "대학교 학과중에, 경영학과라는 게 있는데 그곳에서는 잡스처럼 프레젠테이션하는 방법도 배워. 그리고 회사를 경영하고 제품을 마케팅하는 법, 더 나아가서 대기업에 취업할 때 매우 유리하지"


  나는 피로감이 드는 눈꺼풀에 힘을 주며 말을 듣고 있다. 관심이 없는 이야기를 계속 듣는 것은 나에게 아주 힘든 일이다. 원장님은 그런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말하고 있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간다. 이게 입시의 근본이야. 내가 예전부터 생각한 게 있어. 나는 명석이 너가 오히려 중퇴를 하지 않고, 중학교에 졸업하고 그 성적으로 과학고에 진학하는 게 좋았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했었어. 보통 정원 외 관리대상자로 빠지는 건, 부모님의 입김이 센 경우가 많거든. 근데 명석이 부모님한테도 내가 물어봤는데 명석이가 중퇴를 한 건 원래 혼자 생각해서 한거더라고? 많이 놀랐어. 그래서 검정고시로 고득점 받은 지금, 오히려 잘됐어. 나는 지금부터라도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정규 과정을 밟고, 명석이가 대학교에 진학했으면 해"


  나는 속으로 하품을 하는 것을 참고 듣고 있다가, 마지막 말에서 정신을 차린다. 잠깐 뭐라고요?


  "원장님 일단 생각해보겠습니다. 제가 고민하고 있는 것도 있어서요. 부모님과도 상의하고 말씀드릴게요"


  나는 원장님께 인사드리고 사무실을 나온다. 그리고 오늘이 토요일임을 상기한다. 오늘은 원래 쉬는 날이었지만 원장님이 불러서 상담을 했다. 그만큼 나를 소중히 생각해서 나와 상담하려고 바쁜 일정 가운데 시간을 내서 부르신 것 같은 눈치였다. 나는 주머니에 있던 나의 보물과도 같은 수첩을 꺼낸다. 내가 적어놓은 아이디어들을 쭉 훑어본다. 그리고 다시 수첩을 집어넣고는, 생각이 많아진 채로 집까지 걸어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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