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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쿼카의 하루 Sep 30. 2024

발명가의 사랑 1

  재필은 명석의 비서가 전달해 준 서류 뭉치들을 첫장부터 들여다보고 있다. 냉장고 및 에어컨 발명의 토대가 된 기술인 냉매의 증기압축식 공기 조화 장치. 1902년, 윌리스 캐리어. 서류에는 캐리어라는 1876년에 태어난 인물에 대한 약력이 쓰여져 있었으며, 당시 시대적 배경에 대한 설명이 요약되어 있었다. 상세한 사진과 커다란 글씨로 이해가 쉽도록 만들어져있으나, 과학적인 설명만 들으면 몸에 두드러기가 나는 듯했다. 재필은 온몸을 여기 저기 긁으며 서류들을 바라보고는 중얼거린다.


  "이게 무슨 외계어야"


  때는 21세기 후반, 제 5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리는 시대이다. 여러가지 과학기술의 새로운 출현과 함께 심리학과 뇌과학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AI, 고기능 로봇, 초소형가전, 사물인터넷 등의 개발이 특히 회자되고 있다. 개중에는 진명석을 필두로 한, 공기 조화 장치의 초소형화 기술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과학기술은 어떻게 점점 어려워지는구나"


  재필은 고등학교 때 인문계열을 공부하기로 선택한 이례로 과학과 기술에 대한 지식을 최신화하는 일들에 작별을 고했다. 현 시대에는 아무리 과학 기술이 실용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대중들의 지식 수준에 비해 과학 기술의 난해성은 점점 격차가 커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주 단순한 소형가전이라도 원리를 설명하라고 하면 힘들어했다. 모두가 가지고 있는 냉장고, 세탁기, 건조기, 전자렌지, 그리고 급속 냉각기인 마이크로에어와 초소형 에어컨도 마찬가지였다.


  재필은 처음으로 펼친 냉매의 증기압축 기술에서부터 명석이 개발해낸 공기 조화 장치의 초소형화 과정이 끝도 없이 이어진 광활한 사막같이 느껴졌다. 아닌 게 아니라, 페이지 수만 하더라도, A4 용지를 가득 채워서 10페이지도 넘었다. 재필은 벙찐듯 웃으며 말했다.


  "나는 아마 20세기에 태어났어도 과학쪽으로는 똑같은 지식 수준이었을거야"


  재필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든다. 재필은 기지개를 한번 크게 켜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열심히 해보자"




  재필은 명석에게 말했다.


  "회장님, 혹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실 예정이십니까?"


  명석은 너털웃음을 보였다. 그리고는 말한다.


  "허허. 이보세, 당연하지 않은가. 사랑을 빼놓고 인생을 논할 수 있을 리가 없지. 그건 마치 여름이 없는 일 년과 같아"


  재필은 작게 웃으며 말한다. 아 그렇습니까.


  "내가 아는 스웨덴 속담이라네. 아주 중요한 진리를 담고 있지"


  "그럼 진 회장님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명석은 앞에 놓여 있는 커피를 한번 홀짝이며 뜸을 들이더니 말하기 시작한다.


  "이 이야기는 내가 자네 앞에서 직접 말해줄 예정이네, 그리고. 여유 있는 날짜를 한번 생각해보았는데, 오늘 4시에 있을 학회 일정이 마침 취소가 되어서, 오늘 당장 전달해줄까 하는데"


  재필은 눈이 조금 커지며 이야기한다.


  "아, 제가 그런데 필기구를 지금 가져오지 않아서, 스마트폰으로 메모해도 되겠습니까?"


  명석이 대답한다. 그럼 당연하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먼저 말해둘건. 나의 현재 아내하고는 말이지…"


  재필은 명석이 뜸을 들이는 것을 못참겠다는 듯이 말을 끊고 한마디 해버린다.


  "첫사랑이십니까?"


  명석은 너털웃음을 보인다. 허허허.


  "유감스럽게도 아니라네"


  재필은 매우 아쉬워하는 눈치이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초소형 스마트폰을 꺼내어 활성화 버튼을 누른다. 재필은 태블릿만큼 확장된 스마트폰을 한 손에 들고 다른 쪽 손으로 전자펜을 쥐고 있다. 온 몸에 신경을 집중하고 상체를 약간 명석 방향으로 약간 숙인다. 그리고 명석을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준비 됐습니다.


  "그래, 시작해보지"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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