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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쿼카의 하루 Oct 06. 2024

명석의 별장

  명석과 나는 커다란 한옥의 넓은 마당 안으로 들어갔다. 명석은 커다랗고 옛스러운 대문을 열었고, 대문의 문지방이 높다보니 나는 걸어 들어갈 때 발을 조금 들어야 했다. 문 안으로 들어가자 한 눈에 보기에 정갈하고 균형미 있는 정사각형 마당의 형태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한옥의 마당과 저 멀리 안채로부터 느껴지는 고요하고 적막한 운치가 마음에 들었다. 들어오자마자 이곳이 잠시 머물거나 오래 거주하기에도 좋은 공간임을 깨닫게 될 정도였다. 명석은 커다란 대문을 걸어잠그고 나와 걸어가며 말했다.


  "내가 작업을 하다가 잘 안 풀리는 일이 있거나, 바다로 세일링을 나가고 싶어지면 오는 곳일세. 항상 사람이 있는 건 아니지"


  명석은 마당에 잡초가 조금 자란 것을 발견하고, 벌써 풀이 자라버렸다며 약간 중얼거렸다.


  "정말 좋은 곳인 것 같네요"


  나는 느낀 바를 솔직하게 말했다. 명석은 설명했다.


  "사실 인천쪽으로 세일링을 하러 자주 나가기 때문에, 6년전 쯤에 별장 한 채를 구하려고 했는데 선택지는 꽤 많았어. 서양식 주택이나, 일제 때 지어졌던 일본양식의 건물도 있었는데 한국 사람이라면 한옥에 한번쯤은 먹고 살며 지내볼 수 있어야지하는 생각을 했다네. 그래서 이 집을 선택했지"


  "그렇군요"


  나는 그것이 명석다운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명석은 어떤 경우에서라도, 많은 선택지를 면밀히 조사한 다음에 가장 자신에게 유리한 것을 최의 확신을 가지고 선택한다. 그것은 특허를 출원하는 일이나 별장을 구매하는 일, 그리고 자신의 사소한 라이프스타일을 정하는 일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시간이나 물질적으로 넉넉한 최근의 경우에서라도 마찬가지였다


  "장시간 차를 타고 오느라 힘들었을텐데, 여기서 자네는 다과를 조금 하고 나는 준비를 한 다음에 함께 항구쪽으로 가세"


  나는 알았다고 하고 주변을 조금 둘러본다. 고풍스러운 외형에 비해서 내부는 깔끔하고 세련된 입식 양식의 집이었다. 천장쪽은 통나무로 덧대여 놓여있었으며, 층고는 꽤 높았다. 명석은 거실의 차를 마시는 테이블 위에서 차를 준비하고 있다. 나는 소파에 앉아서 집 안에 걸린 액자나 장식품들을 구경하고 있다. 비싸보이는 미술품들이 많이 있었다. 하회탈과 같은 장식품도 있다. 손잡이가 달린 오르골이나, 규칙적으로 부딪히며 진자운동을 하는 인테리어도 눈에 띈다.


  "원래, 그냥 항구로 가도 됐었는데 자네에게는 여기를 꼭 보여주고 싶었다네"


  그리고는 명석은 어떤 방 두 개를 보여주었다. 두 방은 거실과 연결되어 있었으며 10시 방향의 방에는 명석의 작업품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처음으로 명석이 만들어 본 커다란 냄새 기록 장치, 그리고 TV와 연결되어 있는 발향 시스템, 그밖에 작업을 하기에 용이해 보이는 기다란 책상과 그 앞에 등받이가 있는 의자가 놓여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이 책상 높이보다 큰 것에서부터 손바닥만한 것까지 하나씩 천장에 끈으로 연결되기도 했다. 아마 초소형 공기 조화 장치인 것 같다.


  "원래 대부분 초기 작업품들은 박물관에 가 있기 때문에, 그 중 일부만 여기서 볼 수 있는 거라네"


  그곳에서 빠져나와 명석이 보여준 것은 명석이 독서를 할 때 들어간다는 서재였다. 높은 책꽂이로 벽의 네 면이 거의 빠짐없이 덮여있었으며, 명석이 자신의 발명 노트라고 보여준 것들은 하나의 책꽂이를 다 차지하고도 남았다. 명석의 발명노트들은 스프링 노트에서, 제본되어 있는 책의 형태까지 다양했다. 노트마다 명석의 글씨체로 빠르게 써내려간 듯한 작업 내용들이 눈에 띄었다. 명석은 노트를 조금씩 펼쳐 보여주며, 쉼없이 설명을 하다가도 잠깐 동안 감상이 젖은 듯했다.


  "내가 내 힘으로 스스로 해냈던 것들일세"


  명석은 갑자기 방의 한 쪽 구석으로 이동하더니 무릎을 굽혀 앉아서 어떤 노트를 책꽂이에서 꺼냈다. 그리고는 나에게 어떤 페이지를 보여줬다.


  20XX년 10월 22일 스티브 잡스. 스마트폰은 나에게 시작에 불과했다. 자퇴 역시 시작에 불과하다.


  "조금 부끄럽지만, 나는 이 페이지를 쓰면서 내 꿈을 계속해서 기억하려고 힘썼다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 페이지는 이미 너덜너덜해졌고, 글씨는 희미하게 바래서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명석은 계속해서 짧게 이어진 메모의 내용들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20XX년 11월 10일 내가 한 선택이 정말 옳을까? 그것은 앞으로 내가 어떤 일들을 하느냐에 따라 달렸다.


  20XX년 12월 1일 날씨가 차다. 아침 운동을 가기 싫지만, 미래의 나를 만들어가는 건 그 어떤 존재도 아닌 나 자신이다.


   20XX 12월 14일 나를 쓰러뜨리지 못하는 시련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나를 권태에 빠뜨리지 못하는 부추김은 나를 더욱 살아있게 만든다.


  20XX 12월 20일 정혁준을 만나다. 반가운 마음에 말실수를 했지만, 좋은 시간이었다…


  명석은 노트를 툭 덮고, 서가에 꽂아넣었다. 그리고 나를 향해 말한다.


  "이제 정리하고, 요트를 타러 가세. 보여줄 만한 건 다 보여준 것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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