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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쿼카의 하루 Oct 05. 2024

대저택

  나는 진 회장의 집에 도착하였다. 정원으로 통하는 대문으로 들어가 현관문까지 가는데 3분은 족히 걸리는 대저택이었다. 드넓은 정원을 지나가면서 이곳에 코끼리나 기린같은 동물을 두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원의 풀들은 균일한 높이로 잘 관리되어 있었다. 마침 좋은 날씨의 하늘에서 햇빛이 나무 위로도 내리쬔다. 깊게 드리운 나무 그림자는 또다른 풍경의 일부를 만든다. 바람까지 부니 기분이 무척 상쾌하다. 나는 오렌지색 지붕이 비스듬한 방향으로 세워져있는 완벽해보이는 형태의 커다란 2층 집 문 앞에 선다. 약간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초인종을 눌렀다. 요란한 벨소리를 내며 내가 왔음을 알리자, 문이 열리고 명석이 모습을 드러낸다


  "재필, 자네 왔는가?"


  나는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한다.


  "회장님, 제가 왔습니다"


  "기다리고 있었어. 이쪽으로 오게"


  명석은 응접실로 이용되는 듯한 넓은 공간으로 나를 인도했다. 응접실의 소파에 앉으면서 생각했다. 나는 명석의 자서전 대필작업을 한지 이제 한 달 정도 됐다. 나는 그가 젊고 경험이 부족한 작가인 나에게서 어떤 것을 바라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대필 작업을 처음 맡길 때 꼭 이것만큼은 꼭 명심하라고 말한 것이 기억난다. 명석은 주관적인 시선을 개입하는 것보다 나쁜것은 맹목적인 찬양이라고 말했다. 자신을 조금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봐도 좋으니, 자신의 인격을 평가하기보다는 업적에 대해서 논하기를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신은 철학가나 종교인같은 사람이 아니라, 한 명의 발명가일 뿐이라고 명석은 말한다. 명석은 스테인리스로 된 찻 주전자에서 따뜻한 커피를 따라서 미리 준비된 컵을 채워주었다. 그리고 말하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나의 청년 시절에 대해서 쓸 예정이라고 했나? 그렇다면 쓸 내용은 많이 없을걸세. 왜냐하면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작업실과 연구실에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며, 발명 작업에만 나의 모든 걸 쏟았다네. 내 시간과 돈과 그리고 피땀 모든 걸 말일세. 예전부터 만난 나의 아내가 아니었다면 나는 두배는 힘들었을 걸세. 왜냐하면 내 아내는 내가 첫 번째 발명품을 만들 때까지 계속 믿고 지원해주었거든. 내 아내가 없는 나는 상상하기 힘들거 같군"


  "그럼 회장님 사모님과의 젊은 시절 연애와 발명 과정에 대해서 다루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것도 좋은 방법일세. 그러나 그것은 생각보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크게 특별할 일이 없는 이야기가 될 거 같아. 생각해보게. 내가 한 것은, 발명품들을 만들어내기 위해 내가 예전에 생각해낸 아이디어를 실현할 방법들을 어떻게든 머리를 쥐어짜내서 실천한 것이 전부고. 또, 나의 아내가 한 것은 나를 말없이 지켜봐준 것, 그리고 작업실에 갈 때마다 매일 챙겨준 도시락과 애정어린 손편지 정도라네"


  "그렇군요. 그러면 다음엔 어떤 내용을 담는 좋을까요 회장님?"


  명석은 나에게 어떤 말을 할 지 잠시 고민하다가, 명확한 어조로 나에게 말했.


  "그건, 당연히 나의 현재라네"


  "현재요?"


  나는 심정이 약간 복잡해졌다. 생각해보면, 명석이 차지하고 있는 세계적인 입지는 어느 누구도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진명석의 이름을 대면 부정적인 말들을 쏟아낼 사람도 분명 존재할 법도 했다. 그건 명석이 했던 정치적인 발언과 논란거리가 될 수 있는 행적들 때문이었다.


"그렇다네. 현재를 있는 그대로, 자네의 시선에서 평가를 내려주게"


  나는 미간을 약간 찌푸리며 생각했다. 그렇다, 명석이 나에게 바라고 있는 것은 바로 이것 '솔직함'인 것 같다. 명석이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한 발언이나 사건들을 한 것은 사실 한 두번이 아니었다. 명석은 아직 개발도상국이 대다수인 대륙 아프리카에 먼저 경제적, 문화적으로 지원하는 것에 적극적이었던 인물 중 하나였다. 언론에서 밝혀진 것이나 내가 명석과 대화하면서 느낀 사실은, 명석은 지나칠 정도로 조국을 사랑하는 애국자라는 것이다. 따라서 명석이 아프리카 민족들의 자주성을 은근슬쩍 부정하는 정치적 발언에 서슴없었던 것, 그리고 무리할 정도로 김치나 막걸리 혹은 케이팝 같은 한국 제품 수출에 혈안이었다는 것에도 그러한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뿐만이 아니었다. 명석이 가진 몇몇 논란거리인 입장 중 하나에는, 사회적 성, 즉 젠더에 관한 것도 있었다. 명석은 구시대적인 성차별주의자는 아니었지만, 동성애를 옹호하고, 성전환자를 혐오하는 자들을 반대로 혐오하는 입장이었다. 특히 동성애를 규탄해야 한다는 기독교인들은 동성애자들을 볼모로 삼아서 마녀사냥을 부추기는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성전환자에 대해 너른 이해도 명석이 가진 입장 중에 하나였다.


  "저의 사적인 의견이 개입되어도 괜찮습니까?"


  명석은 또한 자신이 생명존중부라는 정부 부처를 창설한 계기를 마련한 사람이라고 자처하면서, 육식이 아닌 채식을 해야함을 주장하는 사람이었다. 육식과 채식은 부도덕과 도덕으로 나뉘는 아주 중요한 사안이라고까지 못박아 발언한 적도 있다. 어쩔 수 없이 사람이 타고나기로 육식을 하는 습성을 지니기는 했지만, 어떻게든 발전된 과학과 기술을 통해 이를 극복해야 함을 주장했다.


  "그렇다네"


  명석은 손을 모아서 잡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말씀대로 진행하겠습니다"


  "좋아"


  명석은 드디어 마무리지어졌다는 듯이 한숨같은 탄식을 흘리고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내가 여기로까지 자네를 부른 건, 다름이 아니라, 초대하고 싶은 곳이 따로 있어서라네. 자네, 요트를 타본 적이 있나?"


  나는 약간 놀라서 반문했다.


  "아, 보트나 여객선같은 배는 타봤지만, 요트는 아직까지 한번도 타본 적이 없습니다"


  "그럼 지금 나랑 함께 가보지. 차를 타고 인천쪽으로 나가면, 항구 근처에 내 별장 한 채가 있는데, 그곳에 내 요트가 하나 정박해있네"


  명석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나에게 권유한다.


  "거기서 한번 프라이빗한 시간을 즐겨보세나"


  명석은 내친김에 악수까지 청하며 말한다. 나는 좋다고 말하며 명석의 손을 잡는다. 그리고는 명석과 함께 응접실을 빠져나와 문 밖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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