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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쿼카의 하루 Feb 04. 2024

2011년의 하루

  비탈길을 올라 교문을 통과하고 있다. 귀에는 이어폰을 끼고 있고, 이어폰은 선이 길게 이어져 바지 주머니의 핸드폰과 연결되어 있다.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보니까 좀 늦었다. 주머니에 손을 빼고 급한 마음이 되어 서둘러 걷는다. 우리 학교는 동명의 중학교와 연결되어 있다. 교문을 통과하면, 중학교 운동장이 모습을 드러내고, 계속 걸어서 폭이 넓은 계단을 걸어 올라가다 보면 고등학교 건물이 나온다. 고요하고 먼지 냄새가 나는 학교 복도를 지나고 계단을 올라간다. 역대 교장 선생님의 사진이 걸려 있는 곳을 지나 학교 교실문을 들어가서 내 자리에 도착한다. 가방을 내려놓고, 귀에서 이어폰을 뺀다. 시끄럽던 음악 소리가 일순간에 조용해져서 약간 머쓱한 기분이 든다. 다들 아침에 하는 영어 듣기 방송이 송출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담임선생님이 교탁 앞에 앉아계신 것을 보고 나도 정숙한 분위기 속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는다. 지각한 몇 명을 제외하고 모두 자리에 앉아있는 학생들을 바라보던 선생님은 일어서서 아침 인사를 하고 간단한 공지를 한다.



"오늘 6월 모의고사 성적표 나오는 날인 거 다들 알지? 조금 있다가 영어 듣기 끝나고 받아 가세요"



  담임선생님은 한명 한명 느릿한 말투로 학생들의 이름을 호명한다. 선생님은 순서는 성적순도 아니고 출석부순도 아니니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을 덧붙인다. 중간쯤에 내 이름이 불렸을 때 나는 앞으로 나가서 두 손으로 성적표를 받는다. 심장이 빠른 속도로 뛰고 정신이 약간 아찔해짐을 느낀다. 심호흡을 하며 재빠르게 가장 위에 있는 한자리의 숫자부터 확인한다. 다행히 숫자가 나의 걱정보다는 낮은 숫자들임을 확인하고, 깊은 안도감을 느낀다. 그리고 이내 아쉬운 점을 찾고, 꽤 오랫동안 아쉬워하다가 약간 화도 난다. 사실은 가채점했을 때보다 한 개가 더 틀렸던 것이다. 기대하던 등급이 아니었다. 옆자리에 딱 붙어서 앉아 있던 내 친구 '장'이 손으로 가려가며 성적표를 노려보고 있던 나에게 한마디를 건넨다.


   "너 언어 몇 점이냐?"

 

  나는 왠지 가르쳐주기 싫어서 가만히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살짝 몸을 돌리고 무시했다. 그러자 장은 제발 언어 몇 점인지 좀 알려달라고 말한다. 나는 못 이기는 척 알려주려다 요즘 그가 나에게 했던 일들을 생각하며 계속 반응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성적표를 혼자 분석하며 혼잣말을 하는 장이었다. 언어가 아쉽고, 수리도 아쉽고, 근데 외국어 왜 이렇게 잘 나왔지. 이런 혼잣말을. 나는 그런 장이 조금은 안쓰럽고 딱한 기분이 들어 네가 알려주면 내 것도 다 알려준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은 사람 말을 잘 믿지 않는 의심이 많은 타입이었다. 나부터 말하든지, 가위바위보를 해서 누가 먼저 말하는지를 결정하는 게 낫겠다고 했다. 나는 이런 일 때문에 가위바위보까지 하면 뒤에 사람 보기에도 쪽팔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선심 쓰듯 내가 먼저 알려주었다. 그러자, 장은 이제는 알려주지 않는다고 야부리를 깠다. 정이 뚝 떨어지는 느낌에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아 가만히 있자 장은 순순히 또 자기 성적을 보여주는 듯하다가도 안 보여준다고 다시 가져가는 약 올리는 행동을 한다. 나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못내 정말 궁금하다는 듯이 물어봐줄 수 밖에는 없었다.


  난 친구 장의 이런 행동과 말에 넌더리가 났다. 그렇지만 별수야 있을까. 내 유일한 절친인데 이렇더라도 참아야지 싶었다. 알게 모르게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행동하기 힘든 동물인 것 같다. 장과 함께 있는 시간은 사실 1년 전의 그 경험을 떠올리게 된다. 나는 그때 고등학교 1학년이었고 아침시간의 등교길이었다. 누가 인사를 하며 말을 걸었는데,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잘 알아듣지 못했다. 잘 들어보니 아마 교회나 성당을 다니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 사람은 자기가 믿는 종교를 같이 한번 믿어보라고 계속해서 말하는 것 같았고,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던 나는 재빨리 자리를 뜨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시도에 불과했고, 그 종교인은 자리를 옮겨 가면서 고집스럽게 전도를 계속했다. 내가 멈추지 않으니 움직이면서 계속해서 무언가를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못 듣는 척을 하며 약 3분 정도 거리를 걸었던 것 같다. 내가 그 이야기엔 관심이 없다고 정확히 말하니까 그제야 알아들은 건지 살펴 가라고 하면서 그 사람은 자리를 떴다.


  그러고 보면 항상 내가 원하는 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내가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이상하게 역효과가 나곤 한다. 정말 사람들은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질 않는다. 아마 내가 경험이 부족하고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 잘 몰라서 그런 걸까. 몇 달 전에 봤던 심리학책을 다시 꺼내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은 정규 수업이 끝나고 10시까지 남아서 야간자율학습을 해야 한다. (인강을 듣기 위해 빼놓은) 수요일이 아닌 요일이거나,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야자는 무조건 해야 하는 필수사항이라서, 나에게 오후 10시까지 자유란 없다. 오전 수업 시간의 나른함과 오후 시간의 치열함, 그리고 숨통이 트이는 중식과 석식 시간,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바라보며 학교 안을 여유롭게 걸어 다닐 수 있는 석식 후 쉬는 시간을 끝마치고 나면 본격적인 야자가 시작된다. 대학교를 가기 위해서 존재하는 야자의 중요성에 대해 익히 들어왔고, 실제로 성적의 향상을 스스로 체감해 왔기 때문에 야자는 째지 않고 출석하기 위해 노력한다. 고2 들어서 실제로 야자시간에 조금 잔다고 혼내는 선생님이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야자시간에는 쥐 죽은 듯이 앉아만 있어도 되는 시간이라 부담이 없다. 오히려 이 시간의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기의 자습실을 나는 나름대로 좋아한다. 공부와 수면 외에 다른 어떤 것들도 허락되지 않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다.


  오늘도 장이 했던 바보 같은 말들을 떠올리며 집까지 걸어간다. 집까지 걸어가는 길은 내가 좋아하는 길이다. 오랫동안 여기서 살았다. 내가 기억하는 정도만 해도 10년 정도는 이 근방에서 살았으니, 정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조용한 밤길을 따라 난 작은 인공 호수의 물소리를 들으며 걷는다. 잎이 큰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이 가는 길에 줄지어 서있고 넓은 찻길에 적은 수의 자동차들이 지나다닌다. 정겹고 추억이 많은 길들이다. 그 길을 숨죽이며 걸어가다 내가 살고 있는 할아버지댁에 도착한다. 부모님이 사정이 있어서 경기도 쪽에 사시고, 나는 할아버지댁에서 할아버지할머니 밑에 들어가 살고 있다. 삐그덕 대는 문을 열고 터벅터벅 들어간다. 다녀왔다는 인사와 함께 내 방으로 들어간다. 아, 이제는 온전한 나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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