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석이 한국어 강사일을 한 지는 올해로 4년이다. 태석은 자신이 일하는 학원으로 가기 위해서 그가 사는 아파트로부터 차를 타고 30분은 이동해야 했다. 한국어 강의는 국내 안에서 수요가 적기 때문에, 학원 수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한국 생산직 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가 수강생의 대부분이지만, 한국인과의 국제 결혼 등의 이유로 살게 되어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나 한국으로 온 유학생들도 많이 있다. 그는 국산 브랜드의 검은색 중형 세단을 몰고 학원으로 향한다. 그는 차를 타고 오면서 요즘 공부하는 영국 방송사의 짧막한 뉴스 기사를 재생했다. 한국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이지만, 대부분의 소통은 영어로 해야 했다. 아시아쪽을 제외한 많은 학생들이 생각보다 영어를 잘하는 것에 대해서 태석은 놀란 적이 있다. 특히 아직 교육적인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은 개발도상국 사람들도 지식을 쌓기 위해서 영어를 필수적으로 알아야 했다. 그래서 그는 학생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영어로 하는 질문에도 성의 있게 답변하기 위해서 영어를 공부한다.
카오디오에서는 태석이 재생한 영어 뉴스 기사가 계속 흘러나온다. 미국 오하이오주의 어떤 아파트 건물에서 가스 폭발 사고가 일어나 6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뉴스였다. 그 아파트는 여러 상가 시설과 함께 아파트로 이용되는 건물이었고, 오하이오주에서는 가스 폭발의 원인을 규명하고 있었다. 현재 주거 시설에서 발생한 가스 누출 사고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인 상황이다. 상가 시설 안에 있는 대형 가구 매장까지 불이 번져, 인명 및 재산 피해가 확대되었다는 분석을 미 연방 정부는 내놓았다.
학원에 도착한 태석은 차를 주차 시켰다.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우고, 기어를 P단으로 두고, 시동을 끈 뒤 안전벨트를 푼다. 정오 즈음의 해는 따가울 정도였고, 태석은 강한 빛 때문에 눈이 부셨다. 유독 습하고, 후덥지근한 날씨에 몇 초만에 땀이 새어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태석은 차키를 잠그고, 학원의 독채 건물에 들어가 계단을 올랐다. 매일같이 올라가는 계단에는 특유의 오래된 목재 가구같은 향이 난다. 유리문을 언제나와 같이 힘차게 당겨서 열었다. 태석은 학원의 안내 데스크를 지나서, 교직원 사무실 안으로 들어간다. 에어컨 바람의 한기가 태석을 반긴다.
"태석씨 오늘 내가 문자 준 거 못 봤어요?"
안경을 쓰고 키가 작은 50대 여성이 태석을 바라보며 말한다. 안녕하십니까, 태석은 길고 껑충한 허리를 깍듯이 굽히며 인사했다.
"원장님, 어떤 문자 말씀이세요?"
원장이라고 불린 여성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자신이 보낸 문자 내용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한다.
"오늘 오전 강의가 연기됐어요. 수강생들한테는 내가 전부 전화를 돌렸는데…"
원장은 태석을 바라보며, 갑자기 결정이 났다는둥, 수강생들에게 전화를 돌리는데 유난히도 애를 먹었다는둥, 둘러대기에 급급한 걸로 보아서 미안한 눈치이다. 태석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하며, 일단 자신의 자리에 앉는다.
태석은 강의가 없는 대신 그동안 하지 못했던 업무들을 처리하기로 했다. 책상 위에 책들을 조금 정리하고, 물티슈로 책상 위를 닦는다. 강의로 바쁜 날이 이어져서 미처 시간을 내서 주문하지 못했던 사무용품도 구매한다. 원장은 태석에게 시간이 남으면 사무실에서 나오는 분리수거용 쓰레기들을 내다 버리라고 요청한다. 태석은 원장의 말대로 쓰레기를 버리러 구르마를 끌고 학원 뒷문으로 나간다. 그리고 큰 비닐 봉지 다섯 뭉치를 항상 버리는 장소에 내놓는다. 그래도 무료한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던 태석은 강의실에 도착한 다른 강사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책꽂이에 꽂혀있는 출석부를 넘겨본다. 그리고 스즈키 하나, 라는 일본 여성의 이름을 본다. 이어지는 이국적이고, 낯선 느낌의 외국인들이 한글로 줄줄이 나열되어 있고, 영어로도 적혀 있다. 강사명을 적는 란에는 김태석이라는 이름 석자가 있고, 과정명에는 한국어 배우기 첫걸음이라는 강의의 이름이 적혀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직장에 대한 애착이 태석에게는 있었다.
태석은 남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지 생각해보다가, 학원을 나와 카페로 향한다. 태석이 카페를 갈 때는 두 가지 정도의 선택지가 있었다. 우선 A 카페는 무난하고 듣기 좋은 재즈 음악이 흘러 나오는 프렌차이즈 카페이다. 그 카페는 태석이 일하는 학원 근처에 위치해 있으며, 열 개 정도의 테이블이 배치되어 있는 작지도 크지도 않은 크기였다. 가벼운 대화를 하러 오는 사람도 있고, 업무상 중요한 미팅을 하러 오는 사람도 간혹 있다. 크고 넓은 테이블 하나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혼자서 집중이 필요한 일들을 하기에도 적합하다. 커피도 균일한 가격과 맛에 특별히 모자람이 없다. 그리고 B 카페는 태석이 자주 찾는 집 근처 단골 카페이자 개인 사업자가 운영하는 카페다. 태석이 자주 찾기에 젊은 사장도 태석을 알아보고 반갑게 맞아준다. 커피의 맛은 과테말라 스페셜티 원두를 사용하여, 적절한 산미와 고소한 카라멜향이 나는 에스프레소를 뽑아낸다. 커피 자체에는 강점이 있으나, B 카페의 단점이 있는데 그것은 크기가 작다는 것이다. 점심 시간이나 저녁 식사 시간 직후에 카페에 들러보면 가끔씩 몇 개 되지 않는 테이블이 꽉 차서 앉아있지 못하는 경험을 하곤 한다. 또한 B 카페는 그렇게 트랜디하지 않은 인디 음악이나, 해외 밴드음악을 자주 트는데 태석의 음악 취향에는 그리 맞지는 않는다. 그 이유에서인지 태석은 조용하게 혼자서 독서를 하거나, 업무를 보는 데 있어서는 B 카페를 자주 이용하지 않는다.
고민 끝에 태석은 A 카페를 이용하기로 결심한다. 태석에게는 커피의 맛보다는 커피를 마시는 장소에 대한 뚜렷한 선호가 있었다. 아무리 커피를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카페에서는 커피를 산다기보다는 장소를 향유하는 약간의 시간을 사는 것이다. 그는 평소에도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그곳에서 머리를 식히고 휴식을 취하면서 오늘의 다음 일정에 대해서 고민해보기로 했다.
A 카페에 도착한 태석은 커피를 마시며 핸드폰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태석이 좋아하는 취미인 등산을 떠올리고 등산 용품을 찾아본다. 그러다가 유용한 제품에 눈길이 가다가, 가격을 보고 금방 시선을 뗀다. 그러다가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금광아파트 주변의 다른 아파트 시세를 확인해보고 있다. 지어진 지도 오래 되었고, 평수도 작은 현재의 아파트에서 이사를 가고 싶었던 태석은 부동산 어플로 이것저것을 검색해본다. 무슨 동 아파트, 어떤 역 근처 역세권으로 찾다가 가격을 보고는 이전보다 더욱 크게 놀라고 실망하는 그였다. 이게 진정 요즘 아파트 가격인가 싶었다. 그가 살고 있는 금광아파트에는 전세로 들어왔었는데, 이제 계약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계약을 연장하거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한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금광아파트보다 좋은 곳을 매매로 마련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또한 전세도 마찬가지로 쉽지 않았다. 아무리 구식이었던 금광아파트에 불만이 있을 지라도 태석에게는 방법이 없었다.
지금보다 더욱 열심히 살아서 돈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태석은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었지만, 그런 만족감보다는 당장 더 열심히 모으고 아껴서 좋은 환경에서 먹고 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런 의지로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을 무렵, 태석은 이곳 주변에 있는 청록산에 오르기로 마음 먹었다. 이렇게 시간을 죽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약속도 없고, 강의도 없는 날이면 건강을 위해 이렇게 즉흥적으로라도 주변 산에 오르는 태석이었다.
"아 개운하다" 청록산 정상에 오른 태석은 가슴을 펴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태석이 오른 곳에는 청록산 정상이라는 표시의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곳으로 오르기 전에 태석은 작은 공터같은 곳을 지났다. 그 공터에는 그네 두 개가 있었고, 허리를 돌리거나, 다리를 구르는 간단한 운동기구들이 늘어져 있었다. 그네는 외로운 듯이 바람에 조금씩 날려 흔들리고 있었다. 그네를 서서 타고 싶은 마음이 태석에게는 들었지만 시도하지 않고 지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정상까지 오르느라 피로한 다리가 갑자기 말을 안듣고 그네에서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인적이 없는 이곳에서 큰일이 나지 않나 싶었다. 철줄이 매달린 그네의 밑싣개는 부피가 꽤 나가고 무게가 무거웠는지, 작은 바람에도 휘청거리듯 움직이곤 했다. 태석은 오늘따라 유독 그곳의 그네를 보며 새삼스럽게 불안정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태석은 심심했기에, 손잡이를 붙잡고 작고 둥근 원판 위에 서서 허리를 돌리는 운동을 하며 시간을 떼웠다.
태석은 그의 집인 금광아파트가 아닌 도서관 쪽으로 내려가기로 작정했다. 저녁이 다 되어갔으나, 독서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내려가는 길은 생각보다 가파르고, 좁았다. 어떤 곳은 커다란 바위가 박혀 있어서 그것 위에 올라서 폴짝 뛰어 내려야 지나갈 수 있다. 등산로의 오른쪽은 초목들이 드문드문 자라 있었지만 벼랑처럼 깎아 내지른듯이 경사졌고, 위험해보였다. 태석은 여러번 와 본 길이었지만 이 곳에서 등산객들의 주의를 요하는 표지판도 하나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이 항상 의문스러웠다.
"저게 뭐지?"
태석은 한참 내려가다가, 바닥에 납작하게 떨어져 있는 커다란 물체를 발견했다. 마치 사람이 누워있는 것 같았다. 계속 길을 가다가 그는 결국 그것이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되었는데, 그건 정말 사람이었다. 아무렇게나 쓰러져있는 사람을 태석은 발견하고, 얼른 핸드폰을 꺼내 구급대원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