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구조되다

by 쿼카의 하루

태석은 영호의 상태를 확인한 뒤 급히 핸드폰을 꺼내 119와 통화 버튼을 누른다. 의식은 없는 상태인 것 같았지만, 일단 겉모습으로 보아서는 옷이 조금 찢어지고 흙이 군데군데 묻어있었다. 아마 비탈진 방향으로 아무렇지 않게 엎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다소 높은 곳에서 굴러 떨어진 것 같았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목에 손가락을 짚어보았는데 아직 확실히 생존해 있었다.


"여기 청록산인데, 사람이 지금 굴러 떨어져서 의식을 잃은 것 같거든요"


"아 그렇습니까? 지금 선생님 혹시, 위치가 어디신지 확인 가능하십니까?"


태석은 정확히는 모르지만, 도서관을 가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구급대원은 위치를 추적한 결과 태서동 산 113-5번지라는 주소 정보를 얻고, 곧 산악구조대를 투입하겠다고 설명한다.


태석은 인적이 드문 산길인지라, 구조대가 도착하기까지는 영호의 옆에서 지키고 있겠다고 말했다. 엎드려져 있는 영호의 몸을 바로 눕히고, 흙투성이가 된 얼굴을 조금 털어냈다. 그런데, 알고보니 태석에게 안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태석은 그가 예전에 자주 들르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학생임을 기억해냈다. 영호가 아르바이트를 했던 편의점은 금광아파트에서 가장 가깝지는 않지만, 품목이 다양하고 많아서 태석이 자주 찾는 곳이다. 태석이 자주 찾는 맥주도 그곳에서 판매한다. 영호의 앳되고 풋풋한 인상이 기억이 났다. 아마 근처 사는 이웃이 아닐까 생각했다.



구급차는 사이렌이 울리고, 차선을 바삐 바꾸며 청록산으로 향한다. 청록산의 인적이 드문 사잇길에 차를 세우고, 산악구조대는 들것과 구조 장비들을 챙기고 산을 올랐다. 올라가다가, 험한 지세와 산길에 구조대원들도 발을 헛디뎌서 진땀을 뺄 정도였다. 이윽고 도착한 구조대원은 영호에게 응급 처치를 한 뒤에 들 것에 실어 산을 내려간다. 태석도 구조대원들과 간단한 면담과 인사를 마치고 하산하기 시작했다.


연락을 받고, 근방 파출소에 도착한 태석은 경찰의 지시에 따라 진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번거로움을 드려 죄송하지만, 최초 발견자에 한해서 진행하는 어쩔 수 없는 행정절차라고 했다. 9월 1일 오후 5시 30분경 태서동 산 113-5에서 개인 용무로 이동하는 중에 의식을 잃은 한 남성을 발견하고, 응급 조치를 취한 뒤에 119 구조대원을 부름. 이외의 특이사항 없음. 태석은 작성하고 나서 따분한듯 하품을 하고 경찰에게 수고하시라고 말씀하고 파출소에서 빠져 나왔다. 태석은 살다가 별일을 겪어보네, 하고 중얼거리며 걷기 시작한다.


태석은 세상을 살아가는 게 새삼 참 위험하다고 느꼈다. 하루에 119 구조대원과 경찰관을 모두 만나보니, 피로감이 머릿속에서 엄습하는 동시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지금도 열심히 일하는지 생각해보았다. 경찰, 소방관, 공무원, 의사, 약사, 교사 등.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간접적으로 개인과 사회의 유지에 필수적인 일들을 수행한다. 그에 비해서 태석은 자신이 하는 일이 참으로 보잘 것 없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가 맡은 사람들은 한국에 일하러 왔거나 결혼, 이민 등으로 오게 된 외국인들이지만, 그들이 일이나 결혼생활을 하면서 꼭 한국어를 유창하게 할 필요는 없다. 이를 테면 한국어를 배우는 일은 필수적이기보다는 부차적인 것이다. 밥보다는 디저트에 가깝고, 케익으로 치면, 빵이나 시트, 크림보다는 장식에 가까운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게다가 자신이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들은 매우 한정된 분량의 것이지 않은가.


이렇게 생각하면서 길을 걷다보니, 태석은 생각보다 기분이 처지고 기운이 나지 않았다. 시간도 늦은 저녁에 가까운 시간이다. 이제 무엇을 할까 생각해보며 머리를 굴려본다. 늦은 시간이기도 하고 빌릴 책도 생각이 나지 않아서 태석이 편의점 쪽으로 발길을 돌릴 무렵, 태석은 누군가를 마주친다.


길고 차른한 머리를 넘기는 그녀를 발견하자, 귀에 꽂은 하얀색 에어팟이 보인다. 단정한 검은색 자켓과 허리춤이 좁은 무채색의 긴바지, 그리고 냉소적인 듯한 큰 눈과 따뜻한 인상의 입매. 꽤 넓은 보폭으로 걷는 그녀는 태석이 살던 아파트에서 마주치던 여자였다.


"안녕하세요"


태석은 서영의 눈치를 보며 거리감을 두고 인사를 건네본다. 서영은 태석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것을 보고, 눈이 조금 커진다. 한쪽 에어팟을 빼고 고개를 숙여서 인사해본다.


"아 안녕하세요"


"301호 사시는 분 아니세요? 고양이는 잘 있어요?"


서영은 밝게 웃으며 대답한다. 저번에 신세 많이 졌는데, 감사해요. 고양이 잘 있어요. 어디 가냐고 묻는 태석은 주변에 산책이라도 간다고 말하고 얼버무렸다.


"저는 이제 퇴근해서 집가는데 그럼 수고하세요"


서영은 태석을 그렇게 걸어서 지나쳐갔다. 그녀의 머리에서는 샴푸향이 저녁인 지금도 짙어 태석에게 닿았다. 태석은 이전에 서영을 처음 봤을 때부터 좋은 인상을 받았지만, 직장에 가는 출근복 차림으로 처음 만나보니 더욱 좋은 호감을 가지게 됐다. 아닌게 아니라, 태석은 저번에 서영의 고양이가 나가서 복도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덥썩 안아서 찾아준 적이 있다. 서영은 그때 감사하다고 보답으로 절편이나 시루떡같은 먹을 것들을 가져와서 태석에게 감사하다며 챙겨주기까지 했다. 태석은 밝고 따뜻한 기운의 서영을 마주치고 나서 걸음을 옮길 때 즈음에는 좋은 기분이 들었다.



메인 이미지 출처 : 양산신문

이전 07화3. 뜻밖의 휴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