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는 흐린 하늘 아래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의 눈 앞에는 가느다란 줄이 여러 개 달린 거대한 물체의 실루엣이 있었다. 그 물체의 높은 기둥 위에는 넓은 원형 판이 연결되어 있다. 자세히 살피자 그 판 아래 무수히 많은 줄과 함께 그네가 달려 있는 형태가 보였다. 영호는 저 그네가 회전하게 된다면 어떤 모습이고, 그 그네 위에 자신이 탄다면 어떤 기분이 들지 상상해보았다. 어렸을 적 놀이동산에 갈 때마다 느꼈던 섬찟한 기분이 다시금 떠올랐다. 영호는 어렸을 때 놀이기구 타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고 머리가 커서도 놀이동산에 가는 것 자체에 의문을 품었던 사람이다. 갑자기 펼쳐진 광경 때문에 놀랐다기보다는, 저 거대한 회전 그네를 바라보며 동심을 가졌던 어렸을 때로 돌아가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영호는 키가 작아지기라도 한듯이, 주변 것들이 모두 커 보였다. 하늘은 광활하며 높았고, 어디선가 봤던 것 같은 길은 폭이 평소보다 넓었다. 주변을 둘러본 영호는 오랜만에 보는 풍경에 생각보다는 그저 덤덤한 마음이 들었다. 솜사탕을 만드는 기계, 그곳에서 들리는 소음, 풍선을 파는 노점과 노점상들이 있었다. 그리고 동물 마스코트의 옷을 입고 과장된 몸짓으로 상체를 옆으로 꺾으며 손을 흔드는 사람이 영호에게 다가왔다가, 다시 걸어서 지나갔다. 주변의 말소리, 자전거 바퀴를 굴리는 듯한 소리, 어디선가 느껴지는 번데기일지, 팝콘일지 모를 냄새도 함께였다. 그리고 그것들은 한층 더 자극적이고 크게 느껴졌지만, 태연한 표정으로 영호는 가만히 서 있었다.
영호는 인기척이 느껴져 주변을 살폈다. 알고 보니 영호 옆에는 어머니일지 아버지일지 모를 사람이 영호와 같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영호와 그 사람은 손을 잡고 어딘가로 걸었다. 영호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지만, 잡은 손을 놓지 않고 걸었다. 그 사람은 큰 손으로 붙잡고만 있다가 이윽고 손을 풀며, 검지 손가락만을 내밀었다. 그 손을 말없이 붙잡은 영호는 점점 땅으로 꺼지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기분 탓이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 사람과 말없이 걷고 있는 영호였다.
둘은 노점상에게로 갔다. 노점상의 얼굴은 모자 때문에 그늘져 있었고, 잘 보이지 않았다. 노점상은 영호의 옆에 있는 사람과 마주 바라보며 이야기 하다가, 그가 건네 준 돈을 받는다. 거친 손을 가진 노점상은 영호에게 풍선을 건넨다. 풍선을 든 영호는 옆에 나란히 걷던 사람이 건넨 거스름돈을 반대편 손을 내밀어 받아 보았다. 짤랑, 소리와 함께 지폐와 함께 동전 몇 개를 주머니에 넣고 챙긴 영호는 풍선을 들고 한참을 걸어가다가, 거스름돈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영호는 풍선을 나란히 걷는 사람에게 맡기고, 동전과 지폐를 모두 꺼내어 세어본다. 하나 둘, 그리고 일곱개의 동전과 네 개의 지폐가 있는 것을 알아냈다. 영호는 왠지 기분이 한결 가벼워져서 한 번 다시 세보았다. 그런데, 동전의 갯수가 다르다. 의아한 영호는 다시 한번 세보았지만, 동전의 갯수가 여전히 달랐다. 영호는 자신의 머리에 혼란이 점점 짙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렇게 시간을 한참을 보내다가, 갑자기 옆에 있던 사람이 자리에 주저앉아서 영호의 얼굴을 마주보며 말을 걸었다.
"영호야, 저거 타보지 않을래?"
영호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아버지가 가리킨 곳을 바라본다. 아버지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회전그네가 있었다.
"저거 타보자. 우리 영호"
아버지는 영호의 두 손을 맞잡으며 이야기한다. 영호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영호는 이내 수긍하는 표정이 된다. 영호는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회전그네로 향했다.
회전 그네에 앉은 영호는 눈을 감는다. 눈을 감으면 모든 것이 흘러갈 것이고, 결국에는 다시 이 자리로 돌아와서 아버지와 집에 갈 수 있겠지. 영호는 잔뜩 긴장한듯이 눈을 세게 감고,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을 쥔다. 손은 아플 정도로 손잡이를 쥐어 땀이 새어나온다. 모든 것이 멈춘 듯한 시간이 흘러간다. 잠시 눈을 떠 본 영호는, 앞 자리에 앉아있는 것을 유심히 살펴봤다. 그런데 사람이 아니었다. 영호의 앞 자리에 있는 것은 거대한 털뭉치같은 어떠한 것이었다. 두 눈을 크게 뜨고 상체를 숙여서 제대로 바라보자, 영호는 얼마 가지 않아서 그것이 곧 사람처럼 큰 고양이임을 깨달았다. 좌석에 앉아 짙은 회색 뒷통수를 보이던 커다란 고양이는 영호의 시선을 간파했다는듯이, 고개를 돌려 영호 쪽을 바라봤다. 그러자 한 쪽 눈을 감고 윙크를 날린다. 이제 됐다는 듯이 몸을 돌려 손잡이를 움켜쥔 거대한 고양이를 영호는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영호는 진동하는 놀이기구에 온 몸이 반동하여 충격을 받듯 깜짝 놀라고 말았다.
진동은 점점 커지고, 놀이기구는 굉음을 내기 시작한다. 탁하고 독한 연기를 내뿜는 것 같았다. 사이렌이 울린다. 고양이는 갑자기 회전그네에서 뛰어 내린다. 순간 낙하해서 재빨리 지면에 두 발로 안착한 고양이는 가만히 서서 영호쪽을 바라봤다. 그러다 영호에게 뛰어내리라고 손짓 하는 고양이는 이윽고, 두 팔을 앞으로 뻗고, 완만한 굴곡을 만든다. 이곳으로 영호가 뛰면 된다고 말하는 것처럼 커다란 고양이는 입밖으로 뛰어 빨리 뛰어, 라고 말했다.
굉음은 점점 커지고, 독한 냄새를 뿜어낸다. 영호는 죽기 살기로 고양이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고양이는 지면으로 빠르게 낙하하는 영호를 안정감있게 받아낸다. 나이스 캐치, 고양이는 입꼬리를 올리고 수염을 살짝 떨면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