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행길

by 쿼카의 하루

영호는 동네의 야트막한 뒷산에 올랐다. 영호가 스무 살이 돼서 한 거라곤, 사회복무요원으로 행정복지센터에 1년 9개월간 근무한 게 전부였다. 그곳 근무지에서 공무원과 기간제 근로자들의 일손을 돕고 가끔씩 문서 수발을 했었다. 어릴 때는 줄곧,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을 비롯한 직장인들은 모두 과한 업무에 시달리고, 엄격하게 통제하고 지시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사회에 나가서 직접 만나보니 꼭 그렇지는 않았다는 걸 그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오히려 그들은 점심시간이면 동네형 같이 친근했고, 친누나처럼 다정하게 구는 여직원도 있었다. 업무가 없는 한가한 오후에는 같이 사무실 밖으로 나가 맞담배를 피우며,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고민상담을 해주는 것은 물론, 그들이 영호에게 남 사이에서는 나누기 어려운 이야기나 부탁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퇴근 후에 기념할 일이 있는 날이면 영호는 형, 누나 격이었던 공무원들과 서로 술자리를 가지며 편하게 터놓고 이야기하곤 했다. 언젠가, 영호는 자신보다 6살 많은 남자 공무원이 과음을 하는 바람에 술주정을 하는 것을 들어주고, 앉은자리에서 구토를 하는 바람에 고초를 겪었던 적이 있다. 그는 그 공무원 형이 쏟아낸 토사물을 휴지로 직접 닦고, 정신을 잃고 쓰러진 것을 부축해서, 택시를 태워 집에 보냈다. 그때를 기억하며 쓴 것을 맛보듯 표정을 찌푸리는 그였다.


영호는 회상하는 것을 그만두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다시금 상기했다. 취업 준비를 해야 된다. 어떻게든 취직을 해서, 어른이자 사회인으로서의 도리를 다하고, 부모님의 아들로 떳떳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의무감으로 자신을 무장한다. 또한 과거에 매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보았다. 그러나 그는 수포자(수학 포기자)였던 자신의 학창 시절이 계속 떠올랐다. 지난 세월을 헛되이 보낸 것에 후회가 깊어져 겨자를 삼키듯 가슴속 안이 아린 기분이었다. 과거를 계속해서 돌이키고 떠올리려는 그의 무의식 중의 노력이 마치 영상을 되감기하여 자꾸 뭔가를 찾아내려는 사람의 심정처럼 답답하고 갈급했다.


그가 꽤 오랜 시간 동안 작은 뒷산을 올라가자, 정상으로 보이는 꽤 넓은 공터와 그네, 운동기구가 늘어져 있는 공원으로 이어졌다. 그는 그곳에서 잠시 쉬었다 가기로 했다. 대낮이지만 인적이 드문 그곳 공터에는, 구석에 중년의 여성 두 명 정도만이 기다란 벤치에 물을 마시며 앉아 쉬고 있었다. 그는 가만히 그네에 앉았다. 그리고는 발을 구르며 지면에서 발을 떼고 몸을 그네에 맡긴 채 조금 흔들려보았다. 자신은 그곳에서 그저 흔들리는 존재였다. 은연중에 자신이 초라하고 무기력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영호는, 처져있는 어깨를 일부러 펴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고 일어섰다. 그리고는 그 산의 정상인 그곳에서 조금 색다른 시도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가끔씩 와본 그 산의 등산로가 아닌 전혀 가보지 않은 길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처음 와본 그 길은 생각보다 비좁았다. 오른쪽 측면에는 가파르고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처럼 낮은 곳으로 이어져 있다. 영호는 아무렇게나 자라나 있는 초목을 바라보며 약간의 현기증을 느꼈다. 그러나 한 번쯤은 와봐야 하는 길이 아닌가,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영호 자신도 아무렇게나 생각하는 듯싶었지만, 그 생각을 멈출 수는 없었다. 왠지 모르게 자신이 마음이 시키는 생각과 그리고 그 결정에 따를 뿐이었다.


비좁은 흙바닥은 위로, 그리고 아래로 경사가 졌다가 평지로 이어졌다. 그는 이 길이 올라가는 것인지, 아래로 내려가는 지도 판단하기 어려웠다. 새소리는 우중충하고 습한 날씨에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내가 가는 길은 어디인 것일까. 영호는 생각하면서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린다. 아버지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어서, 함께 이 산을 와볼 수 있다면 좋겠다고 내심 생각하는 그였다. 그는 자신의 생각 가운데 숨겨져 있는 아버지의 흔적을 읽어내곤 한다. 그가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아버지를 닮았다는 마음의 소리는 가끔은 부끄럽기도 하고, 또 가끔은 자랑스럽기도 하다. 아버지는 젊었을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다. 영호가 처음으로 좋아하게 됐던 음악도 아버지의 십팔번이었던 올드팝의 록음악이다. 그 안에 있는 아버지의 취향을 발견할 때 영호는 그의 핏줄이 근근이 이어져있음을 느낀다. 영호는 자신의 손을 무심한 듯 자신의 앞에 들어본다. 걷고 있는 영호는 자신의 손을 멍하니 쳐다본다. 자신이 자랑스럽고 대견스러울 때마다 하던 영호의 버릇이다. 그는 초점 없이 손을 바라보면서, 아버지의 생일이 언제였는지를 기억해 내고 곱씹었다. 그때,


영호는 발을 헛디디였다. 돌부리에 걸려서 휘청거리던 영호는 자신의 몸이 오른쪽으로 쏠리는 것을 느꼈다. 중심을 잃은 몸은 그대로 우측으로 넘어갔다. 영호가 손 쓸 틈도 없이 영호는 가파른 산길로 굴러서 떨어지고 있었다.


영호는 외마디 비명을 흘렸다. 그는 정신없이 구르고 있는 자신의 몸을 제어하고 싶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경사는 수직에 가까울 정도로 가팔랐고, 수목을 부딪히는 일 없이 그는 끝도 없이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정신없는 와중에 그는 큰 바위를 발견한다. 그는 어떻게든 그 커다란 장애물을 피하려고 몸부림을 치며 떨어졌다. 그는 땅바닥에 구르고, 부딪히고, 떨어지면서 커다란 바위를 피했으나, 경사진 곳에 심긴 커다란 나무에 머리를 '쿵'하고 부딪혔다.



정신을 잃은 그의 무의식 속에 펼쳐진 것은, 그네가 가득히 달려있는 놀이기구가 있는 장소였다.



메인이미지 출처 : 네이버 카페 - 농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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