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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에세이

복길리에서 일어난

by 황인갑

1950년 한국전쟁은 우리에게 많은 희생을 안겨준 사건이다. 많은 민간인 학살에서 볼 수가 있다. 이런 현상은 제주 4.3, 여순항쟁, 임자도, 영암, 복길에서 볼 수가 있다. 우리는 이런 현대사를 살면서 역사의 현장에서 일어난 사건을 마주 하게 된다. 다시 한번 이 사건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복길리는 바닷가에 접한 곳이다. 지금은 바다를 메워서 간척지를 만들어 버린 곳이 많다. 그러나 지금도 바다에서 낙지, 굴등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바닷가라 풍수 무당등 무속신앙도 있었다. 그리고 교회는 1903년에 전파되었고 1921년에 교회가 설립되었다. 복길리가 바닷가에 접하고 있기 때문에 복음이 빨리 전파되었다. 유진벨선교사에 의해 복음이 전파되고 이남규목사가 고향이기에 그를 중심으로 교회가 이루어졌다.


1950년 한국전쟁 속에 공산군이 후퇴하면서 벌어진 학살을 보게 된다. 복길리에서 살면서 감정이 안 좋은 가운데 있던 머슴, 당골과 공산당이 합작하였다. 북한군 제6사단 13 연대의 군인들이 퇴각하면서 마을 사람을 모두 바닷가로 끌고 와 사람을 묶어서 바닷가에 수장시키고 사람을 굴비 엮듯이 죽였다. 어떤 사람은 바다에서 살아 나온 사람도 있다.

복길바다가 썰물로 바뀌게 되자 시체가 드러나게 되었다. 김은심권사는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공산당이 살려주었다고 한다. 희생자가 86명이 되었다. 한가족에도 많은 사람이 희생되기도 했다. 그 당시 자치대장이던 정대성장로는 부인과 누나가 죽었는데 그들을 용서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했다. 유가족들 일부는 국가에 배상을 신청해 유공자로서 연금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전부가 그런 혜택을 받지는 못했다. 이번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박선영위원장이 복길교회를 방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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