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에 심드렁해지기

2025년. 점점 더 어려워지는 주립공원 캠핑장 예약

by 그래도 캠핑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심정일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을 떠나면서 어떤 삶의 스타일에 대한 기대치가 있었다. 특히 집 앞 공원에만 나가도 다른 사람과 어깨를 부딪힐 정도로 북적이는 서울 근교 위성도시에서 성장했던 사람으로서, 등하교 때는 만원버스, 출근 때마다 지옥철이라고 불리는 교통편을 이용하며 살았던 나로서는, 왠지 "캐나다" 하면 드넓은 대지 위에 광활한 벌판이 있고, 타인이 사방 5미터 안 내 행동반경을 침범하는 일이 없고, 고개를 쳐들지 않아도 쨍하게 파란 하늘을 쉽게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그리고 사실 다운타운을 제외한 밴쿠버 근교도시에서는 오랫동안 그래왔다. 적어도 20년 전까지는.


하지만, 그땐 또 그만큼, 주변환경이 무척 척박했었다. 한국 슈퍼에서 김치 하나 살려고 해도 무척 비싼 돈을 주고 사야 했고 (심지어 어느 슈퍼는 배추를 절이는데 락스를 쓴다는 소문도 있었다), 한식당에서는 쫄면 국수를 사용해 짜장면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 동네에서 조금 벗어난 맥도날드에 가더라도 백인들로만 가득 차 있어서 우리가 들어가면 식당 안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일제히 받기도 했다. 밴쿠버는 전반적으로 경제적으로 낙후된 도시였고, 이민자를 대상으로 한 시장은 더 작았었다. 그래서인지, 어딜 가든지 교통체증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집 주변으로는 60층 고층 아파트들이 즐비한 2025년의 밴쿠버에 그렇게까지 섭섭하지는 않은 것이다. 물론 이민 오기 전 가졌던 기대의 일부가 무너지기는 했더라도, 유동인구가 많아지고 주거시설이 확장된다는 건 그만큼 시장이 커지고 삶이 윤택해질 기회도 되는 법이니까.


해마다 더 예약이 어려워지는 주립공원 캠핑장에 대한 감정 역시 비슷하다. 매번 예약을 할 때마다, 이렇게까지 어려웠던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인구도 많이 늘었지만, 캠핑 인구의 증가율이 더 높아 보인다. 이민자의 유입을 통해 도시가 성장하는 캐나다 사회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불문율과 노하우, 기득권이나 멤버십으로 가득한 지역 사회의 사교활동에 비해, 캠핑은 무척이나 단순하고 평등한 오락행위이기 때문이다. 비씨 주립공원 홈페이지에 명시되어 있는 규칙대로 예약하고 즐기면 그뿐. 예약만 되어 있다면 내가 신규 이민자이든 유색인종이든 상관없이 인생을 즐길 수 있다. 이렇게 캠핑인구가 점점 늘어나다 보니 주립공원 측에서도 적극적으로 캠핑장 확장에 나서기는 하지만 아직도 한참 모자라만 보인다. 물론 골든이어즈 골드크릭 캠핑장이나 롤리 호수 캠핑장처럼 기존 공간에 새 사이트를 욱여넣다 보니까 예전에 비해 시끄럽고 프라이버시가 많이 줄어들었다는 느낌도 받는 경우도 생기지만, 어찌 되었든 캠핑 인구의 증가가 주립공원 캠핑장 건립의 증가로 이어지길, 그래서 좀 더 쉽게 캠핑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건,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그림일 것이다. 만일 근교 주립공원이 예전에 비해 좁고 시끄럽다면 다른 곳에서 캠핑을 하면 된다. 물론 이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는 BC 주립공원 캠핑 전문가로 알려지기도 하고 심지어 책도 썼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의 캠핑이란 무척이나 한정적인 부분이 있다. 평일에는 둘 다 풀타임으로 일을 해서 공휴일이 낀 주말을 이용해 나서지 않는다면 별도로 캠핑여행을 위한 휴가를 내야 한다는 이유가 가장 크겠다. 그러다 보니 일단 근교 혹은 교통이 편한 곳이 선호된다. 일박만 하는 거면 트레일러를 끌고 움직이는 것도 귀찮다. 그리고 고백컨데... 아침 고즈넉한 숲 속에서 모닝커피를 마시는 기쁨도 하루 이틀이지.. 이렇게 몇 가지 오락만 반복하다 보니 캠핑에 흥미가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어우 난, 도대체 캠핑을 무슨 재미로 하는지 모르겠어.."라는 캠핑 회의론자의 의견도 이해가 간다. 가만히 앉아서 불멍을 하거나 물멍, 나무 그늘 아래 책을 읽다가 꾸벅꾸벅 조는 일도 거듭하다 보면 재미없을 수 있는 것이다. 뭐.. 이렇게 장황하게 써봤지만, 간단히 말해 요즘은 캠핑장 예약도 어렵고 캠핑에 대한 열망도 시들해져서 (그리고 회사 당직 일정도 빡세져서) 올해는 캠핑을 많이 못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










해마다 첫 캠핑은 포트코브 주립공원에서 캘리포니아 바다사자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시작했었는데, 작년 12월에 시도했던 예약이 "이런다고?"라는 한숨이 나올 정도로 가망이 없었다.

결국 2순위로 좋아하는 미션에 위치한 롤리 호수 주립공원에서 캠핑을 하게 되었다. 롤리 호수 주립공원 역시 만만치 않게 인기 있는 캠핑장이지만, 오랫동안 5월 빅토리아 데이 연휴를 시작으로 예약접수를 받았기 때문에, 올해부터 4월 부활절 연휴 예약을 할 수 있다는 게 알려지지 않아서 그나마 가능했던 게 아닐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역시 포트코브에 비해 쉬웠다는 얘기지 첫 1분 안에 예약이 동이 나긴 마찬가지였는데, 막상 캠핑장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많은 수의 사이트가 비어있어서 놀랐다. 아직 텐트로 캠핑하기엔 쌀쌀한 날씨여서 많이들 취소를 한 탓일까? 아니면 누군가가 불법전매를 목적으로 잔뜩 예약을 했다가 판매를 완료하지 못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어쨌든 그토록 예약이 힘들었던 것에 비해 이렇게 사이트가 비워져 있는 걸 보면, 마치 투자만을 목적으로 구매한 밴쿠버 부동산이 실거주자를 외면한 채 빈 집으로 버려져있는 상황을 목격하는 것만큼이나 안타깝다.


그래도 겨우내 움츠려 있던 숲이 봄 햇살을 맞으며 새싹을 틔우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잔잔한 감동에 젖어들었다. 안 그래도 겨울 동안 나름 열심히 하던 팟캐스트를 여러 이유로 접기로 결정해야 했던 시기여서 내내 울적해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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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트는 녹음 후보들




이후 5월과 7월에는 포트랭리에 위치한 포트코브 캠핑장에 머물렀고, 6월에는 역시 포트랭리에 위치한 더비리치 광역밴쿠버 공원의 에지워터바 캠핑장을 이용했다. 두 곳 모두 비교적 시내와 가까이 있어서 배달음식이 가능한 것이 나름 장점으로 꼽을 수 있는데, 특히 포트코브 캠핑장은 바로 꼬마 다리 하나 건너면 포트랭리 시내와 연결되어 있어 슈퍼에서 간편 음식을 쇼핑해 온다든지 시내에 있는 식당이나 펍을 이용한 후 느지막이 걸어서 캠핑장으로 돌아올 수도 있는 환경이다. 올해 빅토리아 데이 연휴기간 동안에도 엘비스 모창 가수가 방문했다. 2년 전과는 달리 핑크 캐딜락은 더 이상 없었고, 그 역시 공연 중간중간에 힘들어하는 기색이 보였다. 세월에는 장사가 없다.

재작년에 비해 확실히 심드렁해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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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랭리 시내 자체가 관광지여서 볼 것도 많고 살 것도 많다







더비리치 광역 밴쿠버 공원의 에지워터바 캠핑장은 포트랭리 시내에서 약 8킬로 정도 떨어진 곳으로 프레이저 강변을 따라 38개 사이트가 늘어서 있다. 말하자면 포트코브 캠핑장처럼 캠프 사이트 바로 앞에 물이 흐르고 있는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단 수세식 화장실이나 샤워실이 없고 주립공원 캠핑장에 비해 사이트 간 간격이 좁아서 프라이버시가 적은 편이라는 점에서 한동안 우리의 레이더에서 벗어나 있었다. 캠핑장이 더비리치 공원의 데이유즈(Day Use : 당일치기 피크닉만 가능하고 캠핑은 불가능한 지역) 피크닉 구역과 포트랭리 시내를 연결하는 산책로 안에 있기 때문에, 그나마 3개 있던 재래식 화장실 상태가 매우 엉망이었다는 기억도 예약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예약 없이 선착순 (FCFS : First Come First Serve)으로만 운영을 해오다가 언젠가부터 100% 예약제로 바뀌었는데, 주립공원처럼 도착일 4개월 전부터 차례로 예약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마치 국립공원처럼 한 해 전체 예약을 2월 1일부터 받기 시작하기 때문에, 맘먹고 한번 예약을 하려고 해도 웬만큼 미리 계획이 되어있지 않는 한 예약이 쉽지가 않았다.


그래도 운이 좋아서 6월 어느 주말 예약이 되었고, 올해는 6월에도 쌀쌀한 날씨가 지속된 덕분에 악명 높은 프레이즈 강 유역의 모기떼가 활동하기 전이라 제법 쾌적하게 캠핑을 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당일치기 피크닉 구역에 무척이나 번듯한 수세식 화장실과 샤워시설 (유료)이 만들어져 있는 걸 발견했다. 단지 깨끗한 화장실과 샤워시설이 새로 생겨서 좋은 것도 있지만, 이 덕분에 캠핑장 내에 있는 재래식 화장실 사용률도 낮아지기 때문에 더 깨끗한 상태가 유지된다는 장점도 있다. 오오오오. 이 정도면 2월 1일에 알람 걸고 미리 작전을 짜가면서 예약을 할 만하다. 물론 날씨가 도와줘야겠지만.


오래전 옛날부터 밴쿠버 근교의 상업 유통을 담당하던 프레이저 강은 지금도 도도하게 흐른다. 미리 알고 이미 포기한 상태였지만, 이 정도 유속이면 카약이나 패들보드를 타기 쉽지 않다. 게다가 가끔 무심하게 지나가는 상업선박들이 카야킹을 아예 시도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도 이게 어디야. 오랜만에 다시 찾은 캠핑장 녹음 아래 기대앉아 흐르는 강물을 보고 있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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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 앞에 만들어진 캠프 사이트


캠핑장에서 바라보는 노을 (프레이저 강 유속은 빠르다!!)



캠핑장에서 보는 노을 타임랩스




캠핑장에서 보는 일출 타임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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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랭리 시내와 더비리치 공원을 연결하는 산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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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1726-EDIT.jpg 당일치기 피크닉 구역과 멀리 보이는 새로 만든 샤워실



Edgewater Bar 캠핑장 투어 영상












더비 리치 공원 - 에지워터바 캠핑장 (Derby Reach Regional Park - Edgewater Bar Campsite, https://metrovancouver.org/services/regional-parks/facility/edgewater-bar-camping) : 광역 밴쿠버 서비스에서 운영하는 캠핑장으로 포트 랭리 (Fort Langley), 더비 리치 공원 (Derby Reach Regional Park)에 위치한 캠핑장이다. 매년 3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총 38개의 사이트가 각 세 군데의 재래식 화장실과 수돗가와 함께 서비스된다. 이전에는 100% 선착순 (FCFS : First Come First Serve)이었지만 몇 해 전부터 인터넷과 전화로 예약 서비스를 같이 제공한다 (전화 예약에는 5불 서비스 요금이 붙는다).

프레이저 강변을 따라 캠프 사이트들이 모여 있어서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캠핑을 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더비 리치 공원의 하이킹 코스와 맞물려 있어서 하이킹이나 자전거 라이딩을 하기 좋다는 강력한 장점이 있지만, 샤워실이나 수세식 화장실이 없다는 점, 그리고 역시 더비 리치 공원의 하이킹 코스와 맞물려 있어서 유입인구 통제가 어렵다는 점, 그래서인지 화장실 상태가 매우 극악무도하다는 점이 단점이었는데, 최근에 피크닉 구역에 생긴 화장실과 샤워실 덕분인지 캠핑장의 청결 상태가 매우 좋아졌다. 또, 강변에 위치해 있어서 강우량이 높아 프레이저 강 수위가 올라가게 되면 캠핑장을 강제로 닫아버리는 경우도 있다.



가까운 시내 : 포트 랭리

광역 밴쿠버로부터 접근성 : 5/5

이동통신 / 데이터 : 잘됨

프라이버시 : 1/5

수세식 화장실 / 샤워실 : 피크닉 구역

시설 관리 / 순찰 : 3/5

RV 정화조 : 없음

RV 급수 시설 : 없음

캠프 사이트 크기 : 2/5

나무 우거짐 : 1/5

호숫가 / 강변 / 해변 : 있음

햇볕 :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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